[법조일원화 10년 흔들리는 사법부]〈하〉 끝모를 재판 민사합의 1심 평균 364일 걸려… ‘웰빙 문화’에 지체 심해져 재판 기다리다 지친 소송인들 기일지정 요청해도 감감무소식
40대 여성 A 씨는 지난해 8월 변호사를 선임하고 가정 파탄의 책임을 물어 이혼 상대방에 대해 위자료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그런데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법정에 서지 못했다. A 씨가 “얼른 재판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다”고 하자 변호사는 지난해 말 재판부에 ‘재판 날짜를 빨리 잡아 달라’며 기일지정 신청을 냈다. 그럼에도 재판이 언제 시작될지조차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A 씨는 “언제까지 잊고 싶은 기억을 되새겨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B 씨는 온라인 예약 사이트에 악성 리뷰를 남겼다며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지 1년 7개월 만인 최근에야 무죄를 선고받았다. B 씨는 “리뷰 하나 남겼다가 1년 반 동안 고생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시비가 명확한 단순 사건이었지만 재판부 사정으로 재판 기일이 몇 차례 연기되면서, B 씨는 언제 어떤 형이 선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마음 한편에 둔 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재판이 지연되는 것은 사건이 복잡해지면서 검토해야 할 기록이 늘어난 반면 판사 인력은 크게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부에서 사건당 평균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자료 분량은 2014년 248.5쪽에서 2019년 343.6쪽으로 38.3% 늘었다. 반면 휴직 등을 제외한 판사 근무 인원은 2017년 2599명에서 2022년 4월 2751명으로 5.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여기에 판사들이 매달 판결문을 주 3건씩, 3주 동안 총 9건을 작성하고 마지막 한 주는 쉬어가는 이른바 ‘3·3·3 캡’ 등 ‘웰빙 문화’까지 더해지면서 재판 지연이 더 심해지고 있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재판 지연 문제를 단순히 과중한 업무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며 “가장 큰 문제는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사법행정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민사합의부 1심 252일→364일… ‘5개월내 선고’ 규정 유명무실
‘민사 5개월내 선고’ 안 지키면
판사에 주의 주던 문화도 사라져
판사 정원 확대법안 국회 못넘어
고질적 인력 부족 해결도 요원
판사에 주의 주던 문화도 사라져
판사 정원 확대법안 국회 못넘어
고질적 인력 부족 해결도 요원
● 접수해도 ‘감감무소식’…늘어나는 재판 지연
미지급 용역비 3000만 원을 받기 위해 2021년 6월 민사소송을 제기한 C 씨는 지난해 6월 1심 선고 이후 불복해 항소했다. 하지만 6개월이 넘어가도록 재판 기일이 잡히지 않자 올 1월 재판부에 기일지정 신청을 냈다. 하지만 다시 6개월이 지났음에도 변론기일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C 씨는 “미지급된 용역비를 받아 사용해야 할 곳이 많지만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쉬운 사건 위주로 처리…장기 미제 사건 늘어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 정원을 늘림과 동시에 현재 훈시규정으로 돼 있는 소송 기한에 대해 강제성 있는 법을 만드는 방안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장하얀 기자 jwhit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