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고 커피 내기 스타 한 판 어때?’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대학가나 직장에서 ‘스타크래프트’로 커피 내기를 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리그 오브 레전드’가 더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그전까지 ‘스타크래프트’는 한국 게임의 역사를 바꿨다고 할 만큼 인기를 누리던 ‘원조 국민 게임’이었습니다. 20년 넘게 인기가 이어지다 보니 이젠 ‘게임’이 아니라 ‘민속놀이’로 부를 정도입니다.
게임을 스포츠로 변모시킨 e-스포츠의 태동도 이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했습니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의 군대 문제가 대두되자, 역으로 군대에 프로게임단이 창설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 ‘원조 국민 게임’이라고 불리는 ‘스타크래프트’를 개발한 블리자드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만 유명한 게 아닙니다. ‘디아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오버워치’ 등 세계를 호령하는 게임이 연이어 출시됐습니다. 이렇게 20년간 승승장구하면서 수많은 팬을 만들어냈고, ‘PC 플랫폼’에서는 적수가 없어서 ‘PC 게임의 제왕’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습니다.
국내에서 ‘원조 국민 게임’이라고 불리우는 ‘스타크래프트’를 개발한 블리자드
때는 지난 2021년 7월 22일(북미 현지 시간 기준). CNN 방송과 AFP 통신, 뉴욕타임스 등의 주요 외신들은 캘리포니아주 공정고용주택국(DFEH)이 LA 고등법원에 블리자드를 대상으로 하는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이 고소장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블리자드의 직원 중 20%를 차지하는 여성 직원들이 지난 2년 동안 보수, 승진, 해고 등의 인사 전반에 걸쳐 불이익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또 남성 직원들은 여성 직원들에게 일을 떠넘긴 뒤 게임을 즐겼으며, 음담패설과 성폭행 관련 농담도 회사 내에서 공공연히 주고받은 걸로 확인됐다고 하네요.
세계 최고의 PC 게임 개발사인 블리자드가 보여준 엄청난 성추행 스캔들. 전 세계의 게이머들은 이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블리자드 측은 이에 즉각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블리자드 측은 공식 성명을 통해 “이는 블리자드의 과거를 왜곡하고 있으며 대부분 거짓”이라고 발표했고, 특히 “DFEH가 주장하는 내용은 오늘날의 액티비전 블리자드와 다르다”라고 공식 반박했습니다.
심각한 유감의 뜻을 나타낸 마이크 모하임 전 블리자드 대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500여 명의 사원들이 항의 농성을 이어가면서 결국 제이 알렌 브렉 블리자드 대표가 사퇴를 결정했습니다. 그의 메인 부서였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 팀이 이번 성차별 논란의 주역이었기에, 그의 경질은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 경질 후에도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자 블리자드는 여성 임원인 젠 오닐 개발 부문 총괄 부사장과 마이크 이바라 기술 담당 총괄 부사장을 새로운 공동 대표로 임명하면서 수습에 나섰습니다. 또한 보비 코틱 블리자드 최고경영자(CEO)도 성희롱과 차별 문제에 연관된 “사람들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며 직장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죠.
블리자드와 비슷한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북미 게임사 라이엇 게임즈와 유비소프트
또 ‘어쌔신 크리드’, ‘저스트 댄스’ 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둔 유비소프트도 지난 2020년 7월에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세르쥬 아스코에 CCO, 막심 벨런드 편집 부사장, 야니 말럿 전무 등 남성 임원 3명을 퇴출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블리자드를 포함한 북미 주요 게임사들의 연이은 미투 사건에 대해 여전히 많은 게임 팬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이 해외 게임사들은 물론 국내 게임사에게도 성차별 없는 업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