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미국 투어 마치고 돌아온 악단광칠
지난해 말 폴란드의 한 공연장에서 한바탕 ‘굿판’이 벌어졌다. 국악밴드 ‘악단광칠’이 대금, 피리, 아쟁, 가야금 등 한국의 전통악기와 황해도민요 가락으로 편곡한 우크라이나의 행진곡 ‘오, 초원의 붉은 가막살 나무여’를 부르자, 관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구슬피 우는 듯한 대금과 아쟁 소리에 맞춰 두 손을 높이 든 채 좌우로 몸을 맡긴 관객들의 몸짓이 마치 파도치듯 객석을 가득 메웠다. 한바탕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왔을 때, 한 외국인 관객이 그들에게 다가와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딸이 지금 우크라이나에 있어요. 당신들의 음악이 나를 울렸습니다.”
지난해의 절반을 북미, 유럽, 중동 등 해외 투어 일정으로 분주하게 보냈던 악단광칠이 올해 아랍에미리트와 미국 투어를 마치고 7일 귀국했다. 김약대(대금), 이만월(피리·생황), 그레이스 박(아쟁), 원먼동마루(가야금), 전궁달(타악), 선우바라바라밤(타악) 등 국악기 연주자 6명과 3명의 소리꾼(홍옥, 유월, 명월)으로 꾸려진 악단광칠은 기타나 드럼 등 서양 악기 없이 오직 전통악기를 고수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뭉쳐 ‘광칠’이란 이름을 붙였다.
16일 서울 용산구 연습실에 모인 국악밴드 악단광칠. 왼쪽부터 김최종병기활(아쟁), 홍옥(보컬), 전궁달(타악), 유월(보컬), 김약대(대금), 선우바라바라바라밤(타악), 원먼동마루(가야금), 이만월(생황).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2021년과 지난해에 이은 세 번째 미국 투어에 나선 이들은 “관객의 반응이 달라졌다”며 놀라워했다. 선우바라바라바라밤은 “이전까지는 우리 음악을 알리러 갔다면 올해에는 우리를 알아봐주고 우리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한 판 굿을 벌이고 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너희 밴드 이름을 들어 봤다’며 먼저 와 반겨주고, 악단광칠의 무대 의상을 그대로 따라 입은 관객들도 곳곳에 보였어요. 공연이 끝나고 나면 ‘너희들의 음악에 마음을 위로 받았다’며 식사를 대접한 관객도 있었죠.”(선우바라바라바라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서 펼쳐진 이들의 공연 영상이 지난해 1월 19일 유튜브에 공개된 것이 계기였다. 콜드플레이, 아델, 방탄소년단(BTS)과 같은 세계적인 팝스타가 거쳐 간 이 프로그램에서 펼친 무대를 통해 악단광칠의 음악이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
2019년 7월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공연장에서 무대에 오른 악단광칠의 모습. 악단광칠 제공 ⓒ 박다울
“음악뿐 아니라 언어로도 외국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기 전 숙소에서 만난 현지인들에게 그 나라 말을 배우고 익혀요. 굿판을 벌이는 무당이 계속 말을 걸 듯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계속 말을 걸고 싶어서요. 관객을 무대로 이끌어 같이 한 판을 벌이려는 ‘굿 스피릿’이야말로 해외에서도 먹히는 우리의 매력 아닐까요.”(홍옥)
요즘 한국보다 해외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이들은 20일 전북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열리는 개원 10주년 개막 공연 피날레 무대에 오른다. 전통 국악을 전공한 이들에게 이 무대는 더욱 각별하다. 유월은 “해외 공연보다 국내 공연이 더 반갑다. 우리에게 돌아올 자리가 있다는 안도감이 들어서”라고 말했다. 서도민요를 전공한 유월은 “내 전공은 국악 중에서도 비주류라 설 수 있는 무대가 거의 없었다. 노래를 너무 하고 싶어 악단광칠에 합류한 덕분에 이제 한국에서도 내 소리를 낼 수 있는 무대와 기회가 생겼다”며 웃었다.
2019년 7월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공연장에서 객석에 내려와 춤판을 벌이는 악단광칠의 모습. 악단광칠 제공 ⓒ 박다울
이번 무대에선 지난해 말 만든 신곡 ‘MOON 굿’을 포함해 총 3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동해안지방의 무당들이 춤을 추며 벌이는 ‘문굿’에서 영감을 받은 이 곡은 해외 투어 일정으로 멤버 모두가 지치고 힘들 무렵 만들었다. 홍옥은 “신곡을 작업하는데 멤버 모두 춤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출 때 가장 순수해졌던 그 느낌을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노래는 현실에서 도피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춤을 추면서 원래의 ‘나’를, 가장 순수한 우리를 되찾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해외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우리가 기획한 무대에 관객들을 초청해보고 싶어요. 우리만의 음악을 듣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온 관객들로 가득 채워진 그런 무대를 꿈꿉니다.”(김약대)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