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한강’ 계획 살펴보니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들어서는 대관람차 서울링과 한강의 상상도(왼쪽 사진). 폭이 1km에 달하는 한강은 느림과 비움의 특징을 갖고 있는 ‘도시의 정화 공간’이다. 오른쪽 사진은 영국 템스강의 명물이 된 대관람차 ‘런던아이’와 주변 풍경. 템스강의 폭은 약 250m로 한강의 4분의 1 수준이어서 두 강의 건축학적인 고려가 달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사진 출처 서울시·비짓런던 홈페이지
홍재승 플랫폼 아키텍츠 대표·연세대 건축공학과 겸임교수
서울은 외곽으로는 산이, 안으로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띤다. 북한산과 한강은 서울의 정체성이자 기틀이면서 도시 담론이다. 서울시가 최근 한강 개발 계획을 밝히며 미래 한강, 미래 서울의 모습을 두고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강폭 넓은 한강, 유럽과 차이
일각에서는 한강 개발의 롤모델로 유럽 주요 도시가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연 환경적인 차이 때문에 서울이 유럽의 도시를 그대로 벤치마킹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파리 센강과 런던의 템스강과 서울의 한강은 도시 공간의 긴밀도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한강의 폭은 약 1000m인 반면 템스강과 센강은 각각 약 250m와 100m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런던과 파리의 경우 강도 도시의 일부분인 것에 비해 한강은 규모와 생태적 측면에서도 독자적이고 자족적이다.
또한 서울 강북, 강남의 도심권은 유쾌하고 빠르다(Allegro moderato). 반면 한강은 영화 ‘헤어질 결심’에 삽입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의 고요하고 잔잔한 아다지에토(Adagietto) 같다. 느리게 흐르는 도시의 정화 공간 같다. 평일 도심의 부산함이 주말 한강에 이르러 해소된다. 런던과 파리가 가지지 못한 비움의 공간으로, 세계 어디에도 없는 서울만의 자산이다.
한강은 도시의 팽창을 생태적이며, 유구한 강물의 흐름으로 막아내고 있다. 한강 개발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올 3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한강 르네상스 버전 2.0 격인데, 2007년 발표된 것과 그 도시 철학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15년 전과 비교하면 서울은 세계적 도시로 성장했고, 시민의식과 도시의 환경은 더욱 성숙해졌다. 세빛섬의 르네상스기와는 달라져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한데 그레이트(great)란 단어에 부흥기를 지나 특별한 한강을 만들려는 의지가 담긴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도시 중심에 위치한 자연 생태계이자 미래 유산인 한강은 역사 속에서 존중과 배려의 대상으로 남아야 한다.
2000년 전후에 런던은 테이트 모던 미술관, 밀레니엄 브리지, 런던아이 등 새천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를 세웠다. 당시 사회적 기대감은 거대한 건축물로 발현됐다. 거의 4반세기가 지난 지금 당시의 분위기는 사그라진 지 오래인데, 올 3월 발표된 서울링은 20년 전 실현되지 않은 ‘천년의 문’(2000년)을 빼 박았다. 서울시는 최종 디자인 확정 전이라 밝혔지만, 발표의 성급함은 감출 수 없다. 도쿄의 오다이바 대관람차도 지난해 9월, 2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관람차는 단순 아이콘일 뿐, 서울의 특징에 부합되는 랜드마크로는 명분이 부족하다고 본다.
접근성 높이고, 친환경 건축 중요
노들 예술섬 디자인 공모작들. 영국 토머스 헤더윅의 ‘Soundscape’(위 사진)와 한국 김찬중의 ‘Nodeul(r)ing’. 사진 출처 서울시
한강의 공공성을 소비하는 방식도 생각해봐야 한다. 단순한 다중의 광장이 아닌 도심 일상의 해방구로 소비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곳곳에 숨은 비밀스러운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또 시각만이 아닌 오감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선유도공원은 최소의 건축으로 오감을 살린 좋은 사례로 들 수 있다. 선유 정수장이 2002년 생태 공간으로 탈바꿈해, 침전지의 콘크리트 수로를 그대로 살리고 그 아래에 100종이 넘는 꽃과 식물을 심었다. 사계절 환경의 변화가 건축, 그리고 조경과 어우러지도록 설계해야 한다.
한강, 보호의 관점에서 개발해야
이런 한강의 모습은 어떨지 몽상가처럼 상상해 본다. 서울의 수계를 재편성해 노들섬 주변으로 퇴적층이 쌓여 인공 콘크리트 구축섬이 자연의 섬으로 변모한다. 국회에는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선다. 국회 도서관은 아카이빙 자료실, 소통관은 박물관, 국회 의원회관은 예술가들의 레지던스로 만든다. 국회의사당의 돔은 베를린 국회의사당처럼 투명하게 만들어 일몰의 명소로 만들면 어떨까.
한강 개발은 환경과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중시하는 오늘날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 한강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다. 누구도 소유할 수 없고, 조금만 소홀히 하면 망가지는 연약한 공간이다. 미래 후손들도 공유할 이 공간을 우리 세대는 조심히 다뤄야만 한다. 보호의 관점에서 개발을 고민해야 한다.
프랑스 그랑 프로젝트는 1956년 연구와 검토를 거쳐 기획한 뒤 1980년대에 실현되었다. 이런 선례를 보면 앞서 말한 몽상을 실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문화적 향취가 가득한 서울을 위해선 조금 느리게 가도 좋다. 성급하게 개발을 추진하기보다, 후손들이 한강의 빈 공간을 채우거나 비울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겼으면 한다.
홍재승 플랫폼 아키텍츠 대표·연세대 건축공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