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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링, 노들섬 개발… 한강 정체성과 생태 회복이 중심돼야[건축이 만드는 공간/홍재승]

입력 | 2023-05-19 03:00:00

‘그레이트 한강’ 계획 살펴보니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들어서는 대관람차 서울링과 한강의 상상도(왼쪽 사진). 폭이 1km에 달하는 한강은 느림과 비움의 특징을 갖고 있는 ‘도시의 정화 공간’이다. 오른쪽 사진은 영국 템스강의 명물이 된 대관람차 ‘런던아이’와 주변 풍경. 템스강의 폭은 약 250m로 한강의 4분의 1 수준이어서 두 강의 건축학적인 고려가 달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사진 출처 서울시·비짓런던 홈페이지


홍재승 플랫폼 아키텍츠 대표·연세대 건축공학과 겸임교수

《오른손은 멜로디와 고음을, 왼손은 저음 반주를 담당한다. 각각의 역할로 피아노 반주는 음악적 구조와 안정성을 얻는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우리는 감동하고 갈채를 보낸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멜로디에 해당하는 도심의 구축적 요소와 반주 격인 자연은 다른 소임을 수행하고 상생한다.

서울은 외곽으로는 산이, 안으로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띤다. 북한산과 한강은 서울의 정체성이자 기틀이면서 도시 담론이다. 서울시가 최근 한강 개발 계획을 밝히며 미래 한강, 미래 서울의 모습을 두고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강폭 넓은 한강, 유럽과 차이

일각에서는 한강 개발의 롤모델로 유럽 주요 도시가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연 환경적인 차이 때문에 서울이 유럽의 도시를 그대로 벤치마킹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파리 센강과 런던의 템스강과 서울의 한강은 도시 공간의 긴밀도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한강의 폭은 약 1000m인 반면 템스강과 센강은 각각 약 250m와 100m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런던과 파리의 경우 강도 도시의 일부분인 것에 비해 한강은 규모와 생태적 측면에서도 독자적이고 자족적이다.

또한 서울 강북, 강남의 도심권은 유쾌하고 빠르다(Allegro moderato). 반면 한강은 영화 ‘헤어질 결심’에 삽입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의 고요하고 잔잔한 아다지에토(Adagietto) 같다. 느리게 흐르는 도시의 정화 공간 같다. 평일 도심의 부산함이 주말 한강에 이르러 해소된다. 런던과 파리가 가지지 못한 비움의 공간으로, 세계 어디에도 없는 서울만의 자산이다.

한강은 도시의 팽창을 생태적이며, 유구한 강물의 흐름으로 막아내고 있다. 한강 개발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올 3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한강 르네상스 버전 2.0 격인데, 2007년 발표된 것과 그 도시 철학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15년 전과 비교하면 서울은 세계적 도시로 성장했고, 시민의식과 도시의 환경은 더욱 성숙해졌다. 세빛섬의 르네상스기와는 달라져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한데 그레이트(great)란 단어에 부흥기를 지나 특별한 한강을 만들려는 의지가 담긴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도시 중심에 위치한 자연 생태계이자 미래 유산인 한강은 역사 속에서 존중과 배려의 대상으로 남아야 한다.

‘그레이트 한강’ 핵심 전략 중 하나인 ‘자연과 공존하는 한강’의 목표는 총길이 약 41km, 면적 3212m㎡의 한강공원에 걸쳐, 콘크리트 등 인공 호안을 2025년까지 흙, 자갈, 돌 등 자연 소재로 교체하는 것이다. 또한, 2025년까지 약 21만 그루의 나무를 추가로 심어 총 371만 그루 식재로 한강의 자연성을 회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작이 좋다. 다만 서울링, 노들 글로벌 예술섬 등 핵심적인 민간 투자 사업은 의문점이 남는다.

2000년 전후에 런던은 테이트 모던 미술관, 밀레니엄 브리지, 런던아이 등 새천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를 세웠다. 당시 사회적 기대감은 거대한 건축물로 발현됐다. 거의 4반세기가 지난 지금 당시의 분위기는 사그라진 지 오래인데, 올 3월 발표된 서울링은 20년 전 실현되지 않은 ‘천년의 문’(2000년)을 빼 박았다. 서울시는 최종 디자인 확정 전이라 밝혔지만, 발표의 성급함은 감출 수 없다. 도쿄의 오다이바 대관람차도 지난해 9월, 2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관람차는 단순 아이콘일 뿐, 서울의 특징에 부합되는 랜드마크로는 명분이 부족하다고 본다.



접근성 높이고, 친환경 건축 중요

노들 예술섬 디자인 공모작들. 영국 토머스 헤더윅의 ‘Soundscape’(위 사진)와 한국 김찬중의 ‘Nodeul(r)ing’. 사진 출처 서울시

또 하나의 상징적 프로젝트인 ‘노들 글로벌 예술섬 디자인 공모 대시민 포럼’은 올 4월 20일 유튜브로 중계되었다. 초청된 국내외 건축가가 각자 준비한 디자인을 발표했다. 아이디어 공모 형식이긴 했지만, 현란한 디자인들 간의 경합장과 다름없었다. 도출된 대안이 미래에 대한 다양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시민 포럼이라지만 충분한 토론도 질문도 없었다. 남은 것은 조감도뿐이다. 이런 이벤트 이전에 건축가, 도시 전문가, 조경가, 생태학자, 도시 기반시설 전문가가 모여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서울, 나아가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좌우할 한강의 정체성과 개발안을 놓고 시민들과 진지하게 토론할 필요가 있다. 공론화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한강의 공공성을 소비하는 방식도 생각해봐야 한다. 단순한 다중의 광장이 아닌 도심 일상의 해방구로 소비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곳곳에 숨은 비밀스러운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또 시각만이 아닌 오감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선유도공원은 최소의 건축으로 오감을 살린 좋은 사례로 들 수 있다. 선유 정수장이 2002년 생태 공간으로 탈바꿈해, 침전지의 콘크리트 수로를 그대로 살리고 그 아래에 100종이 넘는 꽃과 식물을 심었다. 사계절 환경의 변화가 건축, 그리고 조경과 어우러지도록 설계해야 한다.

도시이론가 케빈 린치는 도시 이미지를 통로(Path), 가장자리(Edge), 결절점(Node), 지구(District), 지표물(Landmark) 등 5가지 관점으로 설명했다. 이 가운데 한강은 접근성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 접근성 해소 없이는 리버버스도 2007년 실패한 수상택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한강의 랜드마크를 만들더라도 교통이 편해야 빛을 발할 수 있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부분적 또는 전면적으로 지하화하는 것만큼 접근성을 본질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은 없다.




한강, 보호의 관점에서 개발해야

이런 한강의 모습은 어떨지 몽상가처럼 상상해 본다. 서울의 수계를 재편성해 노들섬 주변으로 퇴적층이 쌓여 인공 콘크리트 구축섬이 자연의 섬으로 변모한다. 국회에는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선다. 국회 도서관은 아카이빙 자료실, 소통관은 박물관, 국회 의원회관은 예술가들의 레지던스로 만든다. 국회의사당의 돔은 베를린 국회의사당처럼 투명하게 만들어 일몰의 명소로 만들면 어떨까.

한강 개발은 환경과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중시하는 오늘날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 한강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다. 누구도 소유할 수 없고, 조금만 소홀히 하면 망가지는 연약한 공간이다. 미래 후손들도 공유할 이 공간을 우리 세대는 조심히 다뤄야만 한다. 보호의 관점에서 개발을 고민해야 한다.

프랑스 그랑 프로젝트는 1956년 연구와 검토를 거쳐 기획한 뒤 1980년대에 실현되었다. 이런 선례를 보면 앞서 말한 몽상을 실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문화적 향취가 가득한 서울을 위해선 조금 느리게 가도 좋다. 성급하게 개발을 추진하기보다, 후손들이 한강의 빈 공간을 채우거나 비울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겼으면 한다.



홍재승 플랫폼 아키텍츠 대표·연세대 건축공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