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과 갈등속 대만 의존도 낮추기 日은 “반도체 산업 재건” 2조 지원 기시다, 주요 기업에 투자 요청 삼성 3000억-TSMC 10조 계획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 만난 日 기시다 총리 18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가 도쿄 총리관저에서 글로벌 반도체 생산 업체 및 연구기관 7개사 대표와 면담하기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사장), 패트릭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마크 류 TSMC 회장, 기시다 총리,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CEO, 프라부 라자 AMAT 수석부사장. 도쿄=AP 뉴시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5조 원을 들여 일본에서 차세대 D램을 생산한다. 막대한 보조금 혜택을 내걸며 반도체 산업 재건에 나선 일본과 반도체 공급망의 대만 집중으로 인한 리스크를 분산시키려는 서방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과의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대만에서 반도체 공급망을 일부 분리시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도 일본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18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삼성전자와 TSMC, 마이크론, 인텔 등 글로벌 최대 반도체 기업들과 만나 투자 확대를 요청했다.
이날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사장), 마크 류 TSMC 회장, 패트릭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CEO 등 반도체 업계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례 없는 회동”이라며 “중국과 서방의 갈등 속에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3곳이 일본 투자를 약속했다”고 전했다.
● 마이크론, 대만 의존도 낮추려는 목적도
FT가 언급한 일본 투자 기업은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TSMC다. 이날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성 장관은 삼성이 요코하마에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를 짓는다고 밝혔다. 투자 규모는 300억 엔(약 3000억 원)으로 알려졌다. TSMC 류 회장도 일본 투자 확대를 시사했다. 올 2월엔 TSMC가 일본에 1조 엔(약 9조7000억 원)을 들여 두 번째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나오기도 했다.이날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 계획을 발표한 곳은 미국의 유일한 D램 업체인 마이크론이다. 마이크론은 5000억 엔(약 5조 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기업인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로 1감마(차세대 10나노미터 이하 노드) D램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EUV 장비의 일본 상륙은 이번이 처음으로, 일본 내 첨단 반도체 생산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최첨단 미세공정에 쓰이는 EUV 장비는 미국이 중국에 반입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금하는 장비다. 일본은 마이크론 투자를 유치하려 보조금으로 2000억 엔(약 2조 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의 일본 차세대 D램 투자는 대만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지정학적 고려도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 대만 D램 업체를 인수하며 덩치를 키워 온 마이크론은 총 생산량의 60% 이상이 대만 공장에 집중돼 있다.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마이크론과 일본의 협력은 동맹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서로 협력할 때 경제적 기회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 영국도 일본과 ‘반도체 동맹’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에 보란 듯이 일본과의 첨단기술 동맹을 과시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18일 일본과의 ‘반도체 파트너십’을 발표한다고 FT가 보도했다. 이번 발표는 영국이 19일 발표하는 10억 파운드(약 1조6600억 원) 규모 신(新)반도체 전략을 하루 앞두고 나왔다. 중국 등의 위협에 대비해 대만에 대한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는 게 주요 골자다.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에 투자를 확대하고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특화된 일본의 지리적 이점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제조 공급망 전반이 한국, 대만 등에서 일본으로 무게중심을 옮긴다기보다는 선택적인 협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반도체의 주력 생산거점으로까지 발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