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가 조선시대의 상징인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지만, 쇼 이후 적절치 않은 행보로 여론이 악화하면서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는 형국이다.
19일 패션 업계에 따르면 구찌는 지난 16일 서울 경복궁에서 ‘2024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를 선보였다.
특히 조선시대 왕실의 주요 의식 및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행사가 진행되던 경복궁의 근정전을 런웨이 무대로 삼으면서 주요 외신에서도 관심을 보일만큼 주목을 받았다.
구찌는 이번 쇼를 위해 향후 3년간 경복궁의 보존 관리 및 활용을 위한 후원을 약속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경복궁은 조선 최고의 법궁이자, 궁중 예술, 건축 뿐 아니라 한글 창제와 천문학 등의 발전을 이룬 문화와 과학의 중심지”라며 “구찌와의 조우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경복궁의 진정한 매력을 전 세계인들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사 뒤 구찌의 헛발질은 브랜드 이미지 제고는 커녕 국내 여론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구찌는 지난 16일 패션쇼 종료 후 인근에서 밤 늦게까지 애프터파티(뒤풀이)를 했는데, 큰 소음과 빛공해를 유발하면서 주민들의 불편이 이어지면서 경찰까지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
경찰은 시민 불편과 관련해 계도했지만 해결되지 않자 경범죄처벌법상 인근 소란 규정을 적용해 행사 책임자에게 두 차례 통고처분을 하고 범칙금을 부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의 없는 사과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구찌 측은 홍보대행사를 통해 “패션쇼 종료 후 진행된 애프터 파티로 인해 발생한 소음 등 주민들이 느끼셨던 불편함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는 달랑 한마디 입장만 밝혔다.
외신도 구찌의 이같은 행태를 대서 특필했고, 일부 기사에 첨부된 사진에는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시민들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구찌가 ‘싸구려 매너’를 보였다”고 맹비난했다. 한 광화문 인근 거주자는 “새벽 1시까지 여기가 집인지 도로인지 콘서트현장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공간 자체에서의 소음이 엄청났다”며 “안그래도 불면증이 있는데 ‘덕분에’ 밤도 샜다. 기본적인 배려라는 게 없는 모습이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우리 왕실은 검소함과 단정함으로 본을 세우려고 했는데 우리 선조들의 문화 유산인 경복궁에서의 해외 명품 패션쇼는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며 “비주얼적으로 신선하다고 과연 그게 환호할 일인 건지, ‘그들만의 명품쇼’를열자고 궁궐과 왕조의 고유의 성격까지 버려버리는 건지 싶다”고 비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