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100세 생일을 맞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금까지 중국 방문 횟수가 50회를 넘는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 성사를 위한 잠행 등 역사적 행보가 포함된 기록이다. 그는 마오쩌둥이 현안 질문에 대해 “나는 철학자여서 그런 주제는 안 다룬다”며 피하다가도 대만에 대해서는 단호한 화법을 구사하던 순간을 아직 기억한다. 저우언라이와 함께 ‘상하이 공동성명’의 마지막 한 줄을 놓고 밤을 꼴딱 새우며 끙끙대던 때도 잊지 않고 있다.
▷키신저는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며 강 대 강 충돌로 치닫는 미중 갈등을 진단했다. 3차 세계대전 가능성을 경고하며 “이를 막을 시한이 5∼10년에 불과하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역대 최고령 내각 고위 인사로 한 세기 동안 미중 관계를 지켜봐온 그의 분석은 군사 전문가들이 전쟁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과는 다른 무게감을 갖는다. 역사의 산증인인 그가 1차 세계대전 상황을 근거로 대는 것에 토를 달 수 있는 이도 많지 않을 것이다.
▷키신저가 보는 미중 관계의 뇌관은 역시나 대만이다. 대만을 우크라이나처럼 다루다간 결국 전 세계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그의 지적은 매섭다. 양국 간 충돌이 이르면 5년 안에 벌어질 수 있다고 보는 근거는 인공지능(AI)이다. 지리적, (타격)정확성 한계 등으로 적군을 궤멸할 능력이 없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AI가 모든 군사적 한계를 빠르게 없애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중 양국이 참여하는 ‘AI 군축’ 논의를 제언한다. 고령에도 ‘AI의 시대’라는 책을 쓰며 첨단기술 공부를 지속해온 키신저다.
▷이번 인터뷰는 이틀에 걸쳐 총 8시간 동안 진행됐다고 한다. 키신저는 앞서 CBS방송과도 ‘100세 기념 인터뷰’를 하고 포럼 연사로 나서는 등 대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중 충돌 외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가져올 악영향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이젠 거동이 불편하고 말조차 어눌하지만 시대와 영역을 넘나드는 그의 통찰은 울림이 있다. “파괴적 충돌을 막을 방법은 단호한 외교뿐”이라는 키신저의 고언에 백악관과 중난하이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