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서 16년간 머무른 기자… 최측근 20여 명 역할별로 분류 민간회사 차지해 경제 장악하고, 누구든 꾸며낸 혐의로 감옥 보내 충성도 따라 재산권 인정받기도 ◇푸틴의 사람들/캐서린 벨턴 지음·박중서 옮김/880쪽·4만8000원·열린책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5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군사기지를 제공하는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적극 지원하면서 서방의 제재 대상이 됐다. 모스크바=AP 뉴시스
러시아에 체류하며 파이낸셜타임스(FT), 로이터 등 유수의 언론사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저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과 ‘맞짱’을 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정치·경제적 여파는 전 세계에 미치고 있다. 국제사회의 비판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에 의한 성폭력, 아동 납치, 민간인 학살도 여전하다.
저자는 16년간 러시아에 있으면서 구축한 폭넓은 인맥과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이 모든 악행의 원인자가 푸틴 대통령과 그를 떠받치는 내부 조직이라며 세상에 공개했다. 크렘린 행정 부실장으로 국가의 석유 장악을 지휘한 이고리 세친, 전 연방보안부(FSB·KGB 후신) 대표이자 현 연방안보회의 서기인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밤의 지배자’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쿠마린 등 20여 명을 ‘이너 서클’(실로비키)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 ‘범죄 조직’(전 KGB 행동대원)으로 나눠 분류했다.
저자는 어떻게 푸틴이 20년 넘게 장기집권을 할 수 있게 됐는지부터 푸틴과 푸틴의 사람들이 민간 회사를 석연치 않은 방법으로 차지하는 과정, 경제를 장악하고 정적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사실,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 서방으로 영향력을 뻗치는 과정까지 치밀하게 추적한다. 왜 이 책이 2020년 더 타임스, 이코노미스트, FT 등이 선정한 올해의 책에 올랐는지 알 만하다. 책 내용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최소한 50회 분량은 나올 것 같다. ‘주(註)’만 111쪽에 달하니 말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등 푸틴과 그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은 멈춰질 수 있을까. 저자는 푸틴 정권이 옛 소련의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진단한다. 단, 이것이 실현되려면 러시아 국민의 각성이 필수적인데, 안타깝게도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는 압도적이다. 노화와 건강 문제 등으로 언젠가는 푸틴이 물러나겠지만 그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설사 그날이 오더라도 그 뒤는? 저자는 옐친이 공산당 집권을 막기 위해 그 당시 만만해 보였던 푸틴을 발탁했지만, 더 나쁜 결과를 맞았다고 지적했다.
푸틴이 스스로 때를 알고 물러날 것이라 보기는 힘들다. 그가 상식적이고 민주적인 인물을 후계자로 세울 것 같지도 않다.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러시아는 물론이고 세계도 엄청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더 타임스가 ‘러시아에 관한 최고의 책이자 동시에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부제 ‘러시아를 장악한 KGB 마피아와 대통령의 조직범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