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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내부자, 돈줄, 행동대원”… 푸틴 제국의 핵심인물들

입력 | 2023-05-20 03:00:00

러시아서 16년간 머무른 기자… 최측근 20여 명 역할별로 분류
민간회사 차지해 경제 장악하고, 누구든 꾸며낸 혐의로 감옥 보내
충성도 따라 재산권 인정받기도
◇푸틴의 사람들/캐서린 벨턴 지음·박중서 옮김/880쪽·4만8000원·열린책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5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군사기지를 제공하는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적극 지원하면서 서방의 제재 대상이 됐다. 모스크바=AP 뉴시스

진정한 ‘좌표 찍기’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들이 암살은 물론이고 전쟁도 서슴지 않는 거악(巨惡)을 구성하는 사람들!’이라고 외친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러시아에 체류하며 파이낸셜타임스(FT), 로이터 등 유수의 언론사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저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과 ‘맞짱’을 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정치·경제적 여파는 전 세계에 미치고 있다. 국제사회의 비판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에 의한 성폭력, 아동 납치, 민간인 학살도 여전하다.

저자는 16년간 러시아에 있으면서 구축한 폭넓은 인맥과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이 모든 악행의 원인자가 푸틴 대통령과 그를 떠받치는 내부 조직이라며 세상에 공개했다. 크렘린 행정 부실장으로 국가의 석유 장악을 지휘한 이고리 세친, 전 연방보안부(FSB·KGB 후신) 대표이자 현 연방안보회의 서기인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밤의 지배자’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쿠마린 등 20여 명을 ‘이너 서클’(실로비키)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 ‘범죄 조직’(전 KGB 행동대원)으로 나눠 분류했다.

“법원의 판결은 사실 판결이 아니었고, 단지 크렘린의 지시일 뿐이었다.… 의회도, 선거도, 올리가르히 집단도 마찬가지였다. 푸틴의 KGB 사람들은 그 모두를 통제했다.… 푸틴의 심기를 거스른 사람은 언제든지, 누구든지 조작되거나 꾸며낸 혐의에 따라 교도소에 갈 수 있었다. 재산권도 크렘린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조건부로 인정됐다.… 푸틴의 사람들이 권좌에 오르도록 길을 열어 주었던 옐친 시대의 배후 실력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권좌에서 내려올 때, 푸틴이 당신네 돈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떻게 푸틴이 20년 넘게 장기집권을 할 수 있게 됐는지부터 푸틴과 푸틴의 사람들이 민간 회사를 석연치 않은 방법으로 차지하는 과정, 경제를 장악하고 정적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사실,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 서방으로 영향력을 뻗치는 과정까지 치밀하게 추적한다. 왜 이 책이 2020년 더 타임스, 이코노미스트, FT 등이 선정한 올해의 책에 올랐는지 알 만하다. 책 내용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최소한 50회 분량은 나올 것 같다. ‘주(註)’만 111쪽에 달하니 말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등 푸틴과 그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은 멈춰질 수 있을까. 저자는 푸틴 정권이 옛 소련의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진단한다. 단, 이것이 실현되려면 러시아 국민의 각성이 필수적인데, 안타깝게도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는 압도적이다. 노화와 건강 문제 등으로 언젠가는 푸틴이 물러나겠지만 그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설사 그날이 오더라도 그 뒤는? 저자는 옐친이 공산당 집권을 막기 위해 그 당시 만만해 보였던 푸틴을 발탁했지만, 더 나쁜 결과를 맞았다고 지적했다.

푸틴이 스스로 때를 알고 물러날 것이라 보기는 힘들다. 그가 상식적이고 민주적인 인물을 후계자로 세울 것 같지도 않다.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러시아는 물론이고 세계도 엄청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더 타임스가 ‘러시아에 관한 최고의 책이자 동시에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부제 ‘러시아를 장악한 KGB 마피아와 대통령의 조직범죄’.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