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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또 난기류… “美법무부, 반대 소송 검토”

입력 | 2023-05-20 03:00:00

EU 이어 美도 ‘경쟁 위축’ 거론
“자국 항공사 이익 위한 것” 분석도
美-EU-日 심사만 남긴 대한항공
“예상했던 일… 상황 악화 아니다”



뉴시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을 위한 마지막 관문인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심사 통과를 위한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EU에 이어 미국에서도 독과점 우려가 거론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까다로운 심사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지만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면 자칫 ‘메가 캐리어’(초대형 항공사) 출범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18일(현지 시간) 미국 정치 전문 인터넷 매체 폴리티코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행정부가 한국 항공사의 합병을 막고자 소송에 나설 수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미 법무부(DOJ)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 인수를 발표한 2020년 11월부터 2년여 동안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항공사의 미국행 중복 노선이 합쳐지면 자국 항공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대한항공이 마이크로칩 같은 핵심 상품의 화물 운송에 대한 통제권을 많이 갖게 돼 공급망 탄력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모두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미 법무부는 이들에 대한 법적 관할권이 없다. 하지만 반독점 업무 등을 수행하는 미 법무부가 자국 항공산업의 이익을 위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미 정부가 외국 항공사 간 합병을 막기 위해 나서는 첫 번째 사례가 된다고 폴리티코는 설명했다. 폴리티코는 “반독점 사건에 대한 미 법무부의 정확한 영향력은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전문가들은 한미 간 항공자유화(오픈스카이) 협정이 미 법무부의 합병 심사를 제한하지는 못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미 법무부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 미국 내 법원에서 심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법무부는 3월 미국 저비용항공사(LCC) 제트블루의 스피릿항공 인수에 대해서는 매사추세츠주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다만 이 매체는 다른 소식통을 인용해 “소송을 제기할지 최종 결정되지 않았고, 결정이 임박한 것도 아니다”라며 “법무부가 최종적으로 아무 조치도 안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항공도 “미국 정부로부터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며, 계속 논의한다는 공식 입장을 받았다”며 “소송 여부는 전혀 확정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 정부는 지난해 11월 심사 기한을 연장한 뒤로 추가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다. 법무부가 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도 승소를 장담할 수 없는 만큼, 이것만으로 합병이 무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 EU도 17일(현지 시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에 대해 “가격 상승과 서비스 질 하락이 우려된다”는 중간심사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는 “한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을 연결하는 4개 노선에서 승객 및 화물 운송 서비스 경쟁이 위축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은 현재 미국, EU, 일본 경쟁 당국의 심사만을 남겨놓고 있다. 대한항공은 합병이 결정된 후 2년간 10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각국 경쟁 당국의 우려에 대응해 왔다. 항공업계 고위 관계자는 “미국과 EU 경쟁 당국이 까다롭게 심사할 것이란 건 합병 절차 초기부터 예상됐던 것”이라며 “상황이 악화되거나 새로운 변수가 나온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EU의 까다로운 심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보유한 슬롯(공항 이착륙 횟수)을 반납받아 자국 항공사들에 넘겨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올해 초 영국 경쟁당국은 합병 승인 조건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보유한 런던 히스로 공항 슬롯 17개 중 최대 7개를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에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결합으로 한국 국적기의 미국·유럽 노선 취항 횟수가 줄어들고, 외국 항공사에만 이익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슬롯을 외항사에 빼앗기면 한국 항공산업 경쟁력이 약해지고, 메가 캐리어 탄생을 목적으로 하는 합병의 실익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