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37)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인간 세상 다시 등장한 에리얼
“사람들은 이미 본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의 임무는 기존 공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신선하고 새로운 스토리를 발굴해내는 것이다.”카젠버그 전 회장의 ‘재탕 금지’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일까. 디즈니는 수년간 다수의 고전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했는데, 매번 기존 작품에 새로움을 더했다. 절묘한 배역과 신선한 음악, 실감 나는 화면 구성이 영화들을 흥행으로 이끌었다. 신데렐라(2015), 정글북(2016), 미녀와 야수(2017), 알라딘(2019) 등 대부분이 그랬다.
2016년, 디즈니가 ‘인어공주’를 실사화한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기대를 모았다. 디즈니와 관객, 모두에게 인어공주의 의미가 남달라서다.
디즈니가 1989년 선보인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바다 왕국의 딸인 인어 에리얼이 인간인 에릭 왕자와 사랑에 빠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스토리는 모르더라도 주제곡은 한 번쯤 들어봤을 가능성이 크다. ‘언더 더 씨(under the sea)~’
인어공주는 크게 흥행했고, 디즈니는 전 세계에서 2억3500만 달러(3120억여 원)의 이익을 거뒀다. 창업자 월트 디즈니가 사망하고 침체에 빠졌던 디즈니는 이 애니메이션으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인어공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주 캐릭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블룸버그는 “인어공주는 디즈니를 애니메이션 강국으로 만든 중요한 작품”이라면서 “에리얼이 없었다면 겨울왕국의 ‘엘사’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했다.
우여곡절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 인어공주가 개봉하기까지 디즈니가 정말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디즈니 100년 역사상 이 정도로 높은 파도는 없었을 듯하다.
디즈니 100년 역사가 궁금하다면, 신비월드 31화(디즈니는 돈 안 되는 디즈니플러스를 왜 할까) 참고.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224/118062328/1
1989년 개봉한 인어공주 속 에리얼. 영화 인어공주 페이스북 캡처
● 인어공주 탄생 30주년에 논란의 캐스팅
논란은 인어공주 탄생 30주년을 맞은 2019년 시작됐다. 디즈니가 실사 영화의 에리얼 역할에 가수 겸 배우인 할리 베일리를 택했다고 발표하면서다. 흑인 여배우가 인어공주의 주인공 역할을 하게 됐다는 소식에 일부 사람들은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일부는 “어릴 적 꿈이 왜곡됐다”며 좌절했고, “원작을 해치는 무리한 설정”이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온라인에선 “#나의 에리얼이 아니야”라는 반대 해시태그 운동까지 벌어졌었다. 반대 움직임도 있었다. 지난해 티저 영상이 나오고 미국의 흑인 부모들은 소셜미디어에 동영상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흑인 인어공주를 본 딸들의 반응을 카메라에 담아낸 것.
“디즈니 공주 캐릭터에 감정 이입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흑인 엄마들이 적극적으로 동영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프레셔스 에이버리(33)는 “TV에서 흑인 캐릭터(아마, 공주 캐릭터)를 보는 것이 얼마나 드물었는지 알기 때문에, 딸이 인어공주를 보는 순간을 찍고 싶었다”고 했다. 에이버리가 찍은 동영상에서 딸 에메리(3)는 베일리(여주인공 배우)를 보고 “(그녀는) 브라운인 것 같아요. 브라운 에리얼!”이라고 외쳤다.
그럴 만하다. 디즈니 100년 역사에서 흑인 공주는 ‘공주와 개구리(2009년)’의 티아나 공주 한 명뿐이었으니까. 원작을 깨고 흑인 여배우가 공주 역할을 맡은 것은 인어공주가 처음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엄마들이 올린 동영상은 조회수 수백만 회씩을 기록했으며, 디즈니는 마케팅 대박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영화 인어공주 페이스북 캡처
● ‘PC’ 논란의 확산
인어공주 논란은 2010년대 들어서며 거세진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논란의 연장선에 있다. ‘정치적 올바름’은 미국 정치권에서 등장했다. 정치인들이 인종이나 성별, 성, 종교, 이민자 등 소수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언어나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현재는 미 국민의 삶에도 뿌리내렸다.흑인 등 소수자를 전면에 배치하는 작품이 늘면서, 일부 관객들은 작품에 불만을 드러냈다. 인종 차별이나 정치적 올바름(PC) 문제를 의식해 꼭 필요하지 않은 설정임에도 억지로 흑인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어공주와 같은 리메이크 작품들에서 원작과 배치되는 캐스팅이 이어지면서 논란이 확산했다. “다양성은 새로운 작품에서 추구하지, 왜 원작을 바꾸냐”는 의견이 나왔다.
디즈니가 지난해 9월 공개한 영화 ‘피노키오’에서 요정 역으로 흑인 여배우가 등장했고, 지난달 개봉한 ‘피터팬&웬디’의 요정 팅커벨 역할도 흑인 여배우가 연기했다. 실사 영화로 제작 중인 ‘백설공주’의 주인공 역시 원작과 다르게 라틴계 배우가 맡았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HBO맥스는 영화 ‘해리포터’를 TV시리즈로 계획 중인데, 주연 중 한명인 헤르미온느 역할에 흑인 배우를 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창작물이 아닌 실존 인물을 다루는 다큐나 시대극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넷플릭스는 최근 역사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를 공개했는데, 고대 이집트의 전설적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기원전 69년~30년)를 흑인 배우 아델 제임스가 연기했다.
곧바로 “그리스 혈통 백인으로 알려진 클레오파트라를 흑인으로 묘사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집트 고대유물부 장관을 지낸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는 “완전히 가짜”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넷플릭스는 흑인 여성주의 학자인 셸리 헤일리 미 해밀턴대 교수의 조언을 기반으로 흑인 배우에게 역을 맡겼다고 해명했다. 헤일리 교수는 “클레오파트라는 신체적 특성과 별개로 문화적으로 흑인이었다”는 오묘한 주장을 펼쳤다. 클레오파트라의 일생이 흑인 여성에 대한 억압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다큐 캐스팅까지…? (참고로, 영화 제작사인 웨스트브룩스튜디오는 흑인 배우 부부인 윌 스미스와 제이다 핑킷 스미스가 설립했다)
PC 논쟁은 ‘블랙워싱(blackwashing·흑인화)’ 지적으로 이어졌다. 과거 비(非)백인 역할을 백인이 연기했던 관행을 ‘화이트 워싱’이라고 비판했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넷플릭스 최근 공개한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 공식 포스터. 넷플릭스 캡처
● 백인 오바마, 흑인 홍길동까지 등장
해외에서는 “백인 중심 콘텐츠 업계가 권력을 재분배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블랙워싱 같은 “선을 넘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PC 논쟁을 수면 위로 꺼내 올린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트럼프는 2015년 대통령 출마 선언 당시 “엘리트 계층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인식을 거부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까지 했다.
심지어 ‘PC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는 2016년 모든 여론 조사 기관의 예상을 깨고 제45대 미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 WP는 여론조사 결과가 뒤집힌 이유로 ‘PC’를 꼽았다. 백인 유권자들이 여론 조사에선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지 못했지만, 투표장에선 트럼프를 찍었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한 사례에서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꾹 참고 있었는데,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미국 사회가 ‘할 말은 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미 정책연구기관인 케이토(CATO)연구소는 미국인의 4분의 3이 ‘정치적 올바름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토론을 침묵시켰다’고 생각한다는 통계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이어지는 블랙워싱 조롱 현상도 이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최근 소셜미디어에는 가상의 전기(傳記) 영화 포스터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대부분 흑인 유명 인사에 백인 배우들의 얼굴을 합성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포스터에는 영화 ‘라라랜드’의 주인공 라이언 고슬링이 등장한다. 위대한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가상 전기 영화 포스터에는 마크 월버그를 합성했다. 사람들이 일종의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을 만들어 블랙워싱을 비꼰 것이다.
‘홍길동’을 연상하게 만드는 포스터도 있었다. 홍길동 패랭이를 쓴 할리우드 흑인 배우 웨슬리 스나입스가 나온다. 이는 국내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단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었다’는 설명이 눈길을 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에 흑인 배우의 얼굴을 합성한 그림도 있었다.
그렇다면, 디즈니는 이처럼 격렬한 PC 논쟁 분위기에도 왜 흑인 인어공주를 택했을까.
블랙워싱을 풍자한 합성 사진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 과거의 할리우드에 작별 인사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고민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미국의 콘텐츠 업계는 철저하게 ‘남성’, ‘백인’ 중심이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따르면, 미 영화 산업 경영진의 92%가 백인(TV 업계에선 87%)이다.
2017년 앤젤리나 졸리, 기네스 펠트로 등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들이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게 성추행, 성희롱을 당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고백하면서 업계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전 세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2020년에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하면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불길처럼 번졌다. 콘텐츠 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업계는 흑인 배우에게 주연을 맡기는 등 소수자에게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특히 넷플릭스가 적극적이었다.
넷플릭스는 외부 기관에 연구비를 내면서까지 자사 콘텐츠의 다양성을 점검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지난달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넷플릭스 미국 영화, TV시리즈에서 주인공(공동 주연 포함)의 47.5%가 비백인이었다. 2018년 28.4%에서 껑충 뛰었다.
‘PC 경쟁’을 하듯 디즈니도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은 로맨스보다 자매애에 초점을 맞췄고, ‘모아나’에는 당차고 씩씩한 여주인공을 등장시켰다. 멕시코의 명절인 ‘망자의 날’을 배경으로 하는 ‘코코’는 섬세한 고증으로 히스패닉계 미국인과 이민자들에게 호평받기도 했다. 흑인 히어로를 등장시킨 ‘블랙 팬서’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담긴 디즈니의 고전 작품들이 소환되기도 했다. 디즈니는 2021년 고전 애니메이션인 ‘피터팬(1953년)’과 ‘덤보(1941년)’에 ‘7금(7세 이하 어린이 관람 금지) 딱지’를 붙였다.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일부 포함됐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디즈니가 ‘흑인 인어공주’를 택한 것이 이 같은 ‘흑역사’를 덮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NYT는 디즈니가 인어공주 캐스팅을 발표한 2019년 “디즈니는 리메이크로 ‘문제가 있는 유산’을 수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과거를 다시 쓰는 것이 디즈니를 더 진보적으로 만들지 못한다”고 평했다. “과거 작품을 본 사람들이 가진 강렬한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모아나, 코코처럼 새로운 작품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영화 인어공주 페이스북 캡처
● 흑인 인어공주와 오징어 게임
사람들의 영화 관람이 영화관에서 OTT로 이동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해외에서는 영화관 관객 수가 팬데믹(대유행)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OTT 때문이다. OTT 등장 이후 사람들의 콘텐츠 이용이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비싼 돈을 내고 영화관을 찾아가 신중하게 볼 영화를 골랐다면, 지금은 보고 싶은 시간에 소파에 앉아 시청하고 싶은 만큼 콘텐츠를 본다. 몇 편을 보든 지급하는 돈은 똑같다. 월 구독료만 내면 된다. 생각해보니, 영화 관람이 TV 시청과 여러모로 비슷해졌다.
문제는 고객들이 매달 꼬박꼬박 구독료를 내도록 묶어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물량 공세와 제각각인 취향을 만족시킬 만큼의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마블 영웅들’만으로 관객을 붙잡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통계를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OTT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미국 호주 등 영어권 국가의 인기 순위에서 북미 콘텐츠는 80~8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콜롬비아에서는 이 비중이 절반밖에 안 된다. 한국과 일본에선 35%에 그쳤다. 기존 백인 중심의 할리우드 프로그램만으로 남미, 아시아 관객을 OTT에 묶어 두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최근 콘텐츠 기업들이 다양한 인종을 캐스팅하거나, 소수자를 기존보다 많이 등장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콘텐츠 다양성 자체가 하나의 전략이 됐다.
‘오징어 게임’ 같은 비(非)영어권 프로그램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 끈 것도 포인트다. 제작비를 적게 들이고도(블록버스터급 영화에 비해) 대박을 터뜨리는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아시아 콘텐츠가.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OTT 등장으로) 업계에 과거보다 많은 문화가 생겨났고, 국적은 훨씬 덜 중요해졌다”면서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K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프로그램에 오르고 나서야 다들 이를 깨달았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영화관 개봉과 OTT 공개 시점을 다양하게 조합해 보면서 성공 방정식을 열심히 찾고 있다.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가는 영화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게 됐다. 블룸버그는 “트렌드 변화(PC 등 다양성 증가)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일부 관객이 이를 불편하게 여겨 흥행을 저조하게 만든다고 해도 기업들은 OTT 등에서 수익을 만회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밥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콘텐츠 다양성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회사의 핵심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일러스트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PC’가 돈이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 다양성을 반영하면 수익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온라인 미디어 기업인 웨베디아의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15~24세 여성 영화 관람객은 200만 명 수준(1주일 기준)으로 같은 나이의 남성 관객(170만 명)보다 많았다. 미 블룸버그는 “할리우드는 남성 캐릭터가 지배하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대량 생산하지만, 젊은 여성이 성공의 ‘키’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흑인 관객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미국 영화협회에 따르면, 한 달에 한 번 이상 영화를 보러 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숫자가 2012년 이후 27% 늘었다. 같은 기간 백인 관객은 21% 감소했다. 맥킨지에 따르면, 흑인 배우가 많이 등장하거나 역할 비중이 클수록 더 많은 흑인 관람객이 영화관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개봉한 ‘블랙 팬서’의 속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이를 증명했다. 흑인 영웅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블랙 팬서 시리즈는 개봉 전부터 흑인 사회에서 기대를 모았다. 영국 여론조사 회사 유고브의 조사에서 흑인 응답자의 약 4분의 3이 블랙팬서를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백인은 절반 미만이었다.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4억3500만 달러(약 5800억 원)의 역대급 수익을 기록했다.
넷플릭스가 PC 논란을 정면 돌파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넷플릭스는 2020년 말, 1800년대 영국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브리저튼’을 선보였는데, 흑인 귀족을 등장시켜 비판받았다. 그러자, 최근에는 아예 흑인 영국 왕비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샬럿 왕비: 브리저튼 외전)을 내놓았다. 이 작품은 글로벌 인기 순위 1위에 올랐다.
맥킨지는 2021년 보고서에서 “영화 업계는 흑인 배우가 출연하는 콘텐츠가 미국 밖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서 “흑인이 주연으로 나오는 ‘맨 인 블랙’ 시리즈의 수입 중 3분의 2가 해외에서 나왔다”고 평했다.
맥킨지는 콘텐츠 산업에서 인종 불평등을 해소하면 연 100억 달러(약 13조3700억 원)의 추가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디즈니의 흑인 인어공주 인형이 최근 미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아마존에서 인형 부문 판매 1위에 올랐다. 아마존 캡처
● 디즈니의 네버엔딩 스토리
디즈니는 다른 콘텐츠 기업보다 인구 통계에 관심이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디즈니가 영화만 판매하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비즈니스 모델은 신비월드 31화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실사 영화 인어공주는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과 그림책, 인형 등 장난감, 놀이공원, 리조트까지 다양한 비즈니스와 얽혀 홍보될 것이다. 캐스팅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화 관련 상품이 벌써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최근 흑인 인어공주가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아마존에서 인형 부문에서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아마존에 등록된 인어공주 인형은 14.99달러(약 2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눈썹 위 점까지 영화 속 할리 베일리와 똑 닮았다.
만약, 디즈니가 백인 인어공주를 택했다면,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부터 인형이 이만큼 팔렸을까. 기대감이 덜할 수 있는 리메이크 작품을 몇 년 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한 것만으로도 성공한 마케팅 같다.
디즈니는 그동안 고전 만화를 영화화해 꽤 재미를 봤다. 디즈니는 9500만 달러(약 1270억 원)의 예산으로 신데렐라를 영화화했는데 5억3500만 달러(약 7140억 원)를 벌었다. 9억6300만 달러(약 1조2800억 원)의 이익을 거둔 영화 정글북의 예산은 1억7500만 달러(약 2300억 원)에 불과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미녀와 야수의 예산은 3억 달러(약 4000억 원)로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12억 달러(약 1조6000억 원)나 벌어들였다.
이코노미스트는 “관객들이 이미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리메이크하는 것은 영화판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혁신 중 하나”라며 “디즈니의 ‘네버 엔딩 스토리’”라고 평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인어공주 시사회에선 평론가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과연, 흑인 인어공주는 개봉 전 실망한 관객들의 마음도 되돌릴 수 있을까. 결과가 궁금하다.
김성모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