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명소 ‘곰배령’ 854종 자생하는 곰배령 점봉산…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입산 제한 한계령휴게소에서 약차 마시고, 백담사 계곡서 물소리 들으며 명상
설악산 남쪽 점봉산(해발 1424m)에 있는 곰배령은 봄, 여름, 가을까지 수많은 야생화가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누워 있는 모양의 곰배령은 사전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다.
《‘바람마저 길을 잃으면 하늘에 닿는다 점봉산 마루 산새들도 쉬어가는 곳… 하늘고개 곰배령아∼.’(곰배령)
강원 인제군 설악산의 오월은 생명력 넘치는 푸른 신록의 잔치다. 곰배령과 백담사 계곡에는 도시에서는 벌써 진 야생화와 철쭉이 아직도 그대로 피어 있어 가장 늦게까지 봄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 채널A가 개국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만든 드라마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었다. 아버지(최불암)와 딸(유호정)을 중심으로 서울과 곰배령을 오가며 펼쳐지는 사랑과 갈등, 오해, 미움, 화해로 이어지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착한 드라마였다. 만일 시즌제로 계속 방영됐다면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같이 농촌이나 전원생활의 향수를 담은 드라마로 장수했을지도 모른다.
● 하얀 별처럼 흐드러지게 핀 바람꽃
붉은병꽃
쥐오줌풀
미나리아재비(버터컵)
이날 함께 산행을 한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 이호 운영관리부장은 “곰배령이 야생화의 명소가 된 이유는 계곡 골짜기마다 작은 물골 수백, 수천 개가 흐르며 연결돼 있는 풍부한 수량 덕분”이라고 말했다. 물가와 습지에서 잘 자라는 야생화가 어떤 곳보다도 다양한 종을 이루게 됐다는 설명이다. 또한 무분별하게 희귀식물을 채취하는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도 생물종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얼레지(오른쪽)와 홀아비바람꽃
산괴불주머니
● 옥빛 백담계곡에서 ‘Love Yourself’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한계령휴게소.
눈잣나무가 새겨진 친환경 나무조각을 이용한 소원등.
설악산 백담사 인근 계곡에서 물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명상하는 사람들.
5월의 신록이 상큼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백담사에서 수렴동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을 광일 스님과 함께 걸었다. 산책로에서 살짝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가니 조용한 모래톱이 나온다. 이곳의 바위에 앉아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한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온몸을 자연에 맡긴다. 명상이 끝난 후 광일 스님은 한 명씩 일으켜 세워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자기 이름을 부르며 ‘○○야 사랑해!’라고 외쳐 보라고 했다. 배에 힘을 주고 내 이름을 외치니, 저 멀리 봉우리에 부딪친 메아리가 다시 ‘승훈아, 사랑해!’라는 말을 되돌려 준다. 누군가에게 ‘사랑해’라는 소리를 들어본 지가 얼마나 됐던가. 비록 내가 혼자 스스로 소리를 지르고, 메아리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지만 ‘사랑해’란 말에 감동을 먹고 말았다. BTS의 ‘Love yourself’처럼 스스로를 사랑하고 위로해주는 것. 참 고마운 메아리다.
광일 스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비관적이고, 소극적이고, 의욕이 없고, 아프기 때문에 남도 사랑할 수 없다”며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볼 만한 곳=인제와 양양을 잇는 국도44호선을 넘어가는 고개 정상에 있는 ‘한계령 휴게소’는 드라이브 하다가 꼭 한 번 들를 만한 곳이다. 뾰족한 기암괴석이 이어지는 설악산 칠형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유리창의 뷰를 즐기며 먹는 황태해장국이 별미다. 또 16가지 한약재를 달여 만드는 약차는 한계령휴게소에서만 마실 수 있는 명물. 이 휴게소는 ‘올림픽 주경기장’ ‘공간사옥’ ‘남산 타워호텔’을 설계한 한국 현대 건축 1세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1981년에 지은 건축물이다. 설악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진 지붕선이 자연의 풍경에 그대로 녹아들고, 철골조의 구조체에 목재로 마감해 폭설과 강풍,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했다. 내부에서는 단차를 이용해 카페와 식당, 기념품숍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구획하고, 외부의 넓은 테라스는 한계령의 장엄한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된다.
글·사진 인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