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충격 이후 주요국 AI 열전 본격화 ‘포털 주권’ 지켜낸 한국, ‘AI 주권’도 확보해야 소비자 배려하되 규제강화에만 매달려선 안 돼
정상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챗GPT’가 세계대전의 방아쇠를 당겼다. 챗GPT의 충격적인 등장으로 미소 간 냉전 대신에 이제 인공지능(AI)을 둘러싼 미중 간 열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소 간 냉전은 국가 간의 경쟁이었지만 미중 간 열전은 첨단기업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즉시 챗GPT를 검색엔진에 장착하고 추가로 10억 달러(약 13조3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구글도 자체 개발한 AI 챗봇 ‘바드’를 공개하면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용성이 높은 한국의 언어를 먼저 지원하기로 했다. 태평양 건너 삼성 휴대전화와 네이버 플랫폼을 의식한 미국 기업들의 세계전략을 볼 수 있다.
중국의 알리바바와 바이두도 AI 개발로 기술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데이터 보호는 느슨하고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라 중국 기업들은 AI 기술 개발에 앞설 수 있었다. 특히 중국 정부의 막대한 수요와 재정 지원에 힘입어 중국 기업들의 얼굴인식 알고리즘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중국은 AI 기반 데이터 수집으로 전체 인민을 평가하고 점수화해 ‘사회 신용 시스템’(social credit system)을 구축했다. 중국의 AI 정책은 심각한 인권 침해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인터넷 검열은 오히려 챗봇과 같은 AI의 개발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AI는 기업 간 경쟁뿐만 아니라 국가 간 전쟁도 좌우한다. 러시아는 AI를 활용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항복을 권유하는 가짜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하는 사이버 전쟁을 병행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투기와 미사일에 있어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미국 첨단기업들의 AI 기술 지원으로 오히려 최근 잃어버린 영토의 회복까지 시도하고 있다. ‘스페이스X’와 ‘팔란티어’를 비롯한 미국의 첨단기업들은 위성사진과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분석해 러시아군의 위치와 장비까지 파악한 뒤 이를 우크라이나군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전쟁의 판세를 바꾸고 있다.
챗GPT가 방아쇠를 당긴 AI 세계대전은 각국의 경제와 안보가 AI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실감케 하고 있다. 이제 AI에 관한 법제도가 그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삶을 좌우할 것이다. AI는 데이터의 수집과 학습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각국의 개인정보와 저작물을 비롯한 데이터 법제도는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나라의 제도를 보면 개인정보에 있어서는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고, 데이터의 보호에 관한 저작권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은 미국의 법제도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국내 기업들이 AI 기술 개발에 있어 중국이나 미국 기업들에 비해 뒤질 수밖에 없는 법제도 환경 속에 있는 셈이다.
이제까지 자국의 포털 플랫폼을 통해 포털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 각국은 자국 고유의 AI를 통해 AI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구글과 중국의 바이두에 점령당하지 않고 포털 주권을 지킨 국가였다. 이제 AI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우리가 AI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지 기로에 놓였고 우리의 법제도가 시험대에 올랐다.
유럽은 미국 플랫폼에 수조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다양한 규제를 강화해 왔지만 포털 주권을 지킬 수 없었다. 미국은 플랫폼 규제에 극히 신중한 입장을 취해 왔지만 AI 규제에 있어서도 기업들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AI 규제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규제 강화의 포퓰리즘에 매달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AI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직접적인 국가 개입보다 AI 세계대전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기업들의 의견과 소비자 후생을 최대한 배려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