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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렌즈가 없던 시절, 야구 경기 장면을 어떻게 사진 찍었을까?[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3-05-20 11:00:00

백년 사진 No. 19




▶ 백 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으로 요즘 사진에 대해 생각해보는 백년 사진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봐왔던 이미지에 대해 한번 되돌아보고 K-이미지(한국의 사진)의 원형을 찾아 가보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고등학교 야구 대회 사진을 골라봤습니다.

지난주 광화문에 있는 신문박물관에서 신문편집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고 해서 오랜 만에 가봤는데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전시물과 안내문이 보였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나 봅니다. 하나는 지난 주 토요일 [백년 사진 No. 18]에서 소개했던, ‘1천 명 어린이 얼굴 콜라주’ 지면이 예전부터 전시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고,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신문에 사진이 본격적으로 실리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부터라는 점이었습니다. 사진을 처리해 지면에 게재할 수 있는 ‘제판 기술’이 그 때부터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백 년 전 인 1923년 신문의 pdf 파일을 전체 다 둘러봐도 1주일 치 신문에 실리는 사진의 개수는 총 10장을 넘지 않습니다.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이번 주에 고른 신문 사진은 ‘야구 경기’ 모습입니다. 제가 속해 있는 동아일보사에서 지금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서 고른 사진은 아닙니다. 요행히 겹쳤습니다. 100년 전에도 이 맘 때 고교 야구 토너먼트가 있었다는 게 신기할 뿐입니다. 목동야구장과 신월 야구장에서 이번 주 전국에서 모인 고등학교 야구팀들이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며 승부를 겨루고 있습니다. 저의 고교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인기가 높았던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는 1947년부터 동아일보사 주최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00년 전 고교 야구 경기 사진은 어떤 모습일까요? 카메라맨들은 선수들에게 얼마만큼 접근할 수 있었을까요? 기사를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 (제가 읽기 쉽게 한자는 한글로, 옛날 말은 오늘 말로 최대한 고친 내용의 기사입니다)

[제 4회 전(全) 조선 야구대회 제 2일
오전 11시부터 두 시간 동안 배재와 휘문 간의 격렬한 싸움
4대 0으로 휘문 대승]

제 4회 전 조선 야구대회의 둘째 날인 작일 오전 11시부터 학생 예선전을 개시하였는데 벽두에 작년 우승단인 배재군(培材軍)과 강팀으로 이름이 있는 휘문군의 싸움이 열리게 되매, 두 학교에서는 각각 천여명의 학생을 전부 출장 응원케하여 기술의 정보다도 의기의 경정이 더욱 격렬하게 되었다. 전의용씨 심판 하에 배재 선공으로 개전이나 양편 응원군의 함성은 장내를 흔드는 듯하였으며 이번 싸움이 비록 학생단의 제 1회 예선전이나 관중은 임의 결승전과 같이 긴장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일회에 배재는 소득이 없고 휘문은 한점을 얻으니 원래 휘문은 작년에 분패한 복수전이라 더욱 힘을 다하여 싸운 결과 7회 초에 넉 점 알파 대령점으로 휘문이 대승하니 복수전에 성공한 군사들은 물론이고, 천여명 응원군의 광희하는 양은 실로 장관이었다.

▶ 휘문고등학교와 배재고등학교는 100년 전에도 야구부가 있었군요. 바로 전년도에 배재고가 이겼는데 이 해에는 휘문이 크게 이겼네요. 고등학교 야구부의 대결인데 군대라는 표현을 쓴 점이 눈에 띕니다. 배재군(軍) vs 휘문군. 응원단도 응원군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복수전에 성공한 군사들은 물론이고 응원군의 환호하는 모습도 장관이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동아일보는 지금은 황금사자기 전국 고교 야구를 합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도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한 적이 있는데 저는 입시를 앞둔 고 3 수험생이었지만, 지하철을 타고 전교생 전체와 함께 동대문야구장으로 응원을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평일 일과 시간인데 동문 선배들 10여 명이 외야석에서 응원을 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했었습니다. 학교의 이름과 깃발을 걸고 우승을 다투는 스포츠경기는 언제나 동문들에겐 가슴 떨리는 경험인 것 같습니다. 사진에는 표현되지 않지만 응원 온 학생과 시민들이 천여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백 년 전에 천여 명의 관중이 경기를 관람했다고 하니 엄청난 이벤트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위 왼쪽 사진 =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들.  위 오른쪽 사진 = 응원 모습. 아래 사진 = 경기모습 

▶ 총 3장의 사진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위의 두 장은 관중석 모습이고 아래 동그랗게 오려서 편집한 사진이 경기 모습입니다. 경기 모습 설명을 보면,
“구름 같은 먼지를 일으키며 빼스(베이스)를 훔치는 광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자가 홈스틸 하는 것을 지금도 베이스를 훔친다고 표현하는데 거의 비슷하네요.

구름 같은 먼지를 일으키며 빼스(베이스)를 훔치는 광경

사진의 내용도 지금의 사진과 비슷합니다. 야구 경기를 신문에서 뉴스를 다룰 때 가장 많이 쓰는 장면이 ‘도루’ 장면입니다. 타자나 투수 등 그날의 MVP 선수의 경기 모습을 쓸 수도 있지만, 한 장의 사진만 쓰게 되는 신문 지면의 특성상 ‘외로워 보이거나’ ‘맥락이 없어 보이는’ 사진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도루 장면은 주자와 수비수 등 최소 2명이 부딪히는 장면이라 신문 편집자와 사진기자들이 선호하는 편입니다. 플레이트를 밟으려는 선수와 태그하는 선수의 경쟁이 보이는 순간이 뉴스 사진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걸 겁니다. 가끔 심판 모습 또는 타석의 선수까지 포함되면 경기 분위기를 훨씬 잘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사진기자들은 경기 중에 그라운드 안에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덕 아웃 또는 심판 쪽 그물 뒤에서 망원렌즈를 이용해 야구 사진을 찍습니다. 1920년대 망원렌즈가 없던 시절, 홈스틸 사진은 어떻게 찍었을까요? 망원렌즈도 없었지만 사진기자도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사진기자들이 경기장 안에 들어가서 심판 옆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 관행은 1970년대 사진기자들이 현장을 뛰던 시절까지 이어졌다고 선배들에게 들었습니다. 백 년 전 먼지를 일으키며 홈으로 쇄도하는 학생 선수의 모습 역시 심판 바로 옆에 서 있었던 사진기자에 의해 포착되었을 겁니다.

▶백 년 전 야구장 사진을 함께 봤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