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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5개월 앞두고 내홍… 위기의 부산국제영화제[광화문에서/김정은]

입력 | 2023-05-21 21:30:00

김정은 문화부 차장


“부산국제영화제 문제는 어떻게 돼 가는 겁니까?”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최근 칸영화제에 참석한 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을 보자마자 건넨 첫마디다. 현재 칸영화제 참석차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박 위원장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칸에서 만난 해외 영화 관계자들마다 부산국제영화제 사태를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어본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도 관심이 된 부산국제영화제(BIFF) 논란. 올해 28회째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 5개월을 앞두고 허문영 집행위원장과 이용관 이사장의 잇단 사의 표명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내홍의 도화선이 된 건 조직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문제는 9일 부산국제영화제 임시총회에서 운영위원장 직제를 새로 만든 데서 시작됐다. 예산, 행정 등의 권한을 가진 운영위원장에는 이 이사장이 스스로 “30년을 알고 지낸 사람”이라 말한 조종국 전 영진위 사무국장이 위촉됐다. 사실상 허 집행위원장과 이사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신임 운영위원장의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로 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영화계 안팎에서 나왔다. 그에 더해 공동위원장 체제 전환이 허 위원장의 힘을 빼고 이 이사장이 내부 장악력을 키우기 위한 ‘조직 사유화’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왜일까. 이 이사장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창설 멤버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995년 경성대 교수였던 이 이사장, 김지석 부산문화예술대 교수, 영화평론가 전양준, 영화사 ‘열린판’ 김유경 대표 등이 기획해 문화부 차관을 지낸 김동호 전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 사장이 집행위원장을 맡으며 1996년 9월 13일 개막했다. 이번 사태는 이 이사장이 오랫동안 영화제 운영에 관여하면서 곪아온 전횡 논란 등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란 분석이 많다. 실제로 이번 논란 이후 기존 BIFF 직원 인사도 사실상 이 이사장이 좌우했다는 내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독 조 운영위원장이 이 이사장의 측근으로 분류돼 ‘인사 잡음’을 일으킨 이유는 뭘까. 조 운영위원장은 다큐멘터리 ‘다이빙벨’(2014년) 상영 이후 부산시와 갈등을 빚던 이용관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시에 의해 해촉되자 표적 감사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 김동호 이사장이 이 집행위원장의 명예 회복에 힘쓰지 않는다며 영화잡지에 칼럼을 기고한 데 이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김 이사장의 퇴진을 강하게 촉구했다. 그런 배경이 있다 보니 이번 사태를 두고 이 이사장이 자기 사람을 조직에 심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당장 영화제는 초청작 및 개·폐막작 선정, 게스트 섭외 등 주요 업무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의 해결보단 ‘사퇴’ 카드를 선택한 이 이사장, 허 집행위원장 모두 무책임해 보인다. 특히 이 이사장은 영화제 ‘개국 공신’으로서 쇄신을 통해 ‘이용관 사조직’ 프레임을 걷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공신력 있는 한국판 국제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한 27년 전 순수했던 ‘초심(初心)’을 부디 잃지 않길 바란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