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창헌 평전’ 펴낸 장석흥 교수 “상하이서 병원 운영 재정 뒷받침 좌우 막론하고 존경받던 독립지사”
나창헌 지사(왼쪽 사진)가 1924년 6월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흥사단에 입단할 때 제출한 이력서. 그의 출생과 학력, 직업 등 정보가 담겨 있다. 역사공간 제공
1926년 중국 상하이에서 항일운동단체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를 결성한 나창헌(1896∼1936)은 죽음을 불사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켜냈다. 밀정을 처단했고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해 철혈(鐵血)로 일제에 맞섰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학생 대표로 3·1운동에 나선 그는 1922년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경무국장 등을 지냈다. 독립지사이자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로 활동하며 임시정부의 무력과 재정을 뒷받침했다.
상하이로 망명해 활동한 나창헌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어 사료를 모으는 데 4년이 걸렸다. 장 교수는 “나창헌에 대한 정보를 담은 사료는 여럿 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라며 “나는 이미 축적된 사료 속에서 그와 관련된 정보를 모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 임시의정원 자료에 따르면 나창헌은 상하이에서 세웅의원을 운영하던 1926년 임시정부에 303원을 기부했다. 당시 개인 평균 기부액은 5원가량이었다는 점에서 나창헌의 기부액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장 교수는 “나창헌은 무장투쟁뿐 아니라 막대한 재정으로도 임시정부의 근간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다. ‘한민족독립운동사 자료집’ 속의 한 신문조서에는 그가 1936년 위암으로 서거했을 때 우파 한국국민당뿐 아니라 좌파 민족혁명당 인사까지 조문했다고 나와 있다. 장 교수는 “흔히 ‘반공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나창헌은 좌우를 막론하고 존경받던 독립지사였다”며 “우리는 나창헌에 관해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 더 많은 사료를 찾아내 개정증보판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