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학 해법을 찾아서]〈상〉 무너지는 지방대
전남 광양시 한려대 정문 앞에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한 철제 펜스가 세워져 있다. 경영난이 계속되던 한려대는 버티지 못하고 지난해 문을 닫았고, 이로 인해 지역 경제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광양=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6일 전남 광양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순천 방향으로 10분쯤 달리자 산 중턱에 자리 잡은 6동짜리 대학 캠퍼스가 나타났다. 광양에서 유일하게 남은 대학인 광양보건대다.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은 벤치가 부서진 채로 방치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낡은 농구대가 서 있는 농구장은 이용하는 학생이 없어 주차장으로 쓰고 있었다.
대학 본부가 있는 건물은 보건행정과, 항만물류과, 안경광학과 등이 있지만 수업 중인 강의실은 한 곳도 없었다. 재학생이 없어 사실상 폐과된 학과들이다. 건물 3층 안경광학과 강의실엔 2016학년도 기말고사 시험 문제지가 교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실습용으로 사용한 낡은 안경테 위로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광양보건대는 신입생 감소 등으로 인해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된 이른바 ‘한계대학’이다. 이런 대학은 정부 재정지원 사업 등에 참여할 수 없고,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지원도 못 받거나 일부 제한된다. 광양보건대와 같은 올해 재정지원 제한 대학은 4년제 일반대 9곳, 전문대 12곳 등 총 21곳이다.
대학 문닫자 “카페 손님 10분의 1로 뚝, 원룸 텅텅”… 지방소멸 가속
무너지는 지방대
광양 2개교, 1곳 문닫고 1곳 위기
동해선 인구 감소폭 3배로 늘고… 폐교 캠퍼스 주변은 슬럼화 우려
“대학-지자체 공동 발전전략 필요”
광양 2개교, 1곳 문닫고 1곳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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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지자체 공동 발전전략 필요”
2021학년도부터 입학성적이 가장 높았던 간호학과마저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면서 학교는 더 위축됐다. 간호학과가 간호교육기관 인증을 받지 못하면서 사실상 폐과된 것이다. 2018년 358명이던 총 신입생 수는 지난해 33명, 올해는 30명까지 급감했다. 한때 3000여 명에 달했던 학교 구성원은 약 200명으로 줄었다. 수년째 임금이 체불되면서 현재는 교수 25명, 교직원 8명만 남아 학교를 지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다양한 학내 활동이나 낙후된 시설 개선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페인트칠이 다 벗겨지고 금이 간 복도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물리치료과 3학년생 학생은 “장학금 지원이 안 되니 학생들의 부담이 크다”며 “실습 기구가 낡아 못 쓰는 장비도 많고, 동아리 활동 등 선후배 간 교류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 폐교 후 인근 상권도 타격
두 학교의 폐교와 신입생 감소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인근 상권이다. 순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 지역은 학교 설립 전에는 거의 다 논밭이었다. 학교가 들어선 뒤 인근에 주거지와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원룸촌의 건물만 약 170개 동에 이른다. 치킨집과 카페, 당구장 등 상점 30곳도 학생 장사를 위해 터를 잡았다.
하지만 학생이 사라지면서 이들 상권도 타격을 입었다. 7년째 카페를 운영 중인 곽모 씨는 “시험 기간에는 학생이 꽉 차 손님을 받기도 어려웠는데, 이젠 학생 손님이 많을 때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를 하는 양재훈 씨는 “한려대가 문을 닫으면서 공실이 30∼40%쯤 생겼다”며 “지금은 인근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중년들만 있고, 학생 입주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 폐교→인구 감소→슬럼화 악순환
대학이 사라지면 지역소멸도 빨라진다. 1991년 강원 동해시에서 개교한 한중대도 부실 운영으로 2018년 폐교했다. 학생 2000여 명이 빠져나가자 지역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학교에 내는 등록금뿐 아니라 지역에서 월세, 식비 등으로 쓰는 돈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2017년 9만2851명이었던 동해시 인구는 이듬해 9만1272명으로 1579명이 줄었다. 직전 3년간 연평균 570명가량이던 인구 감소 폭이 갑자기 3배로 늘어난 것이다. 동해시 인구는 지난해 8만9426명으로 9만 명대가 무너졌다. 폐교 후 캠퍼스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면 주변이 슬럼화될 우려도 있다. 한중대는 대학 부지가 23만 ㎡에 이른다. 현재 일부 건물을 동해시 창업보육센터로 운영 중이지만, 나머지 건물과 부지는 활용처를 찾지 못해 마치 폐가처럼 방치돼 있다. 동해시는 종합병원이나 대기업 연수원 유치를 통해 침체된 지역을 되살린다는 계획이지만 5년째 이렇다 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 ‘대학도시’ 전략도 필요
2021년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재무구조가 부실하거나 학생 모집이 어려워 이른바 ‘한계대학’으로 분류된 대학은 전국 84곳에 이른다. 개발원은 2010∼2020년 정부의 대학평가에서 한 번이라도 부실대학에 포함돼 재정 지원과 학자금 대출 등이 제한된 적 있는 대학을 한계대학으로 정의했다. 지역별로는 비수도권대가 62곳(73.8%), 유형별로는 사립대가 79곳(94%)을 차지했다. 비리가 심각하고 경쟁력을 잃은 대학은 솎아내야 하지만 지금같은 대학의 위기를 방치한다면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은 “지방대들이 백화점식 학과 운영으로 수도권 대학과의 차별화에 실패한 경우가 많다”며 “지역 기반 산업에 맞춰 특성화 전략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학이 지역 문제에 더 적극 참여해 존재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한 충청권 대학 총장은 “지방의 작은 도시들이 모두 산업 기반을 갖춰 자생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학 중심의 ‘대학도시’로 성장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며 “대학이 지자체와 함께 지역 발전 전략을 세우는 모델을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취업 후 다시 대학에 오는 성인 학습자나, 중장년 평생교육 수요를 통해 교육 대상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광양=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