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곡물가격 등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제품 가격을 크게 올렸던 기업들이 최근 원자재값 하락세는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있어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원가 부담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호소했지만, 비용 상승분을 상쇄하는 수준을 넘어 오히려 영업이익이 늘어난 기업도 적잖다. 기업들이 인플레이션의 충격을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하는 현상에 대해 ‘그리드플레이션’(탐욕+물가 상승)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매출 3조 원 이상 식품 상장기업 8곳 중 6곳은 1년 전보다 영업이익이 증가했고, 그중 3곳은 30% 이상 늘었다. 원가 부담을 이유로 가격을 올린 자동차, 의류, 음료, 항공 등 여러 업종도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밀은 1년 전보다 40% 이상, 옥수수와 대두 등도 20%가량 내렸지만 한번 오른 식품 가격은 내리지 않고 있다. 여객 수요 회복에도 항공권 가격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시멘트 업계는 올해 들어 유연탄 가격이 떨어지자 이번엔 전기요금 인상을 내세워 가격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기업들이 인상 요인은 빨리 반영하고 인하 요인은 늦게 반영하면서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4개월 만에 3%대로 내려왔지만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7.9%로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기·가스요금 인상, 교통요금 인상, 무역수지 적자에 따른 환율 상승 등 하반기 물가를 자극할 요인이 산적한 상황이다. 가계가 체감하는 물가가 내려가지 않으면 내수 부진으로 경기 회복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