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우리 동네 치안 지키는 ‘반려견 순찰대’

입력 | 2023-05-23 03:00:00

견주-반려견, 산책하며 동네 순찰
실종 장애인 발견해 경찰에 신고
산에서 잃어버린 어린이 찾기도
서울시 자치경찰위, 전용 앱 제작



15일 오후 11시경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전형준 씨와 반려견 ‘쿠로’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 반려견 순찰대 소속인 이들은 이달 7일 오전 1시경 실종 신고된 장애인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해 강동경찰서 표창을 받았다. 전형준 씨 제공


“새벽 순찰 중 ‘쿠로’가 도로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엔 흔한 취객인 줄 알았는데 쿠로의 반응이 좀 이상했어요.”

지난해부터 서울 강동구에서 ‘반려견 순찰대’ 활동을 하고 있는 전형준 씨(35)는 7일 밤 12시경 부인과 함께 반려견 쿠로(시바견)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강풍으로 쌀쌀한 날씨였는데 지하철 8호선 강동구청역 인근을 지나던 쿠로가 뭔가를 발견한 듯 고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쿠로의 시선을 따라가니 한 남성이 길바닥에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처음엔 취객인 줄 알았지만, 미동이 없는 점이 이상하다는 생각에 전 씨는 즉각 112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남성은 전날 실종 신고된 발달장애인 임모 씨였다. 길거리를 배회하다 다리를 다쳤는데 가족에게 연락할 수단이 없어 쓰러져 있었던 것. 임 씨의 형은 “동생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데 밖에 나간 뒤 들어오지 않아 신고했다. 순찰대에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전 씨와 쿠로는 18일 강동경찰서에서 표창을 받았다. 전 씨는 “실종자를 가족 품으로 돌아가게 해드려 뿌듯하다”고 말했다.

● 실종 장애인·어린이 찾는 맹활약

시 자치경찰위원회 주도로 지난해 출범한 반려견 순찰대가 서울 곳곳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견주와 반려견이 한 팀을 이루는 순찰대는 산책 중 범죄 정황이나 안전에 취약한 상황을 발견할 경우 112 또는 120(다산콜센터)으로 신고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지난해 284개 팀이 활동한 데 이어 올해 2기는 1503팀이 신청해 719팀이 선발됐으며 지난달 30일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래브라도리트리버종 반려견 ‘오이지’는 21일 금천구 호암산 산책길에서 할머니를 잃어버린 아이를 찾았다. 견주 김경덕 씨(62)는 이날 산책 중 한 할머니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사정을 물으니 할머니는 “초등학생 손자가 숲으로 들어갔는데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김 씨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과 약 30분간 수색한 끝에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김 씨는 “오이지가 계속 돌아보는 걸 보고 할머니에게 다가가 도움을 줄 수 있었다”며 “대형견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반려견 순찰대 활동을 시작했는데 의미 있는 일까지 하게 돼 뿌듯하다”고 했다.

● “순찰대 전용 앱도 상용화”

반려견 순찰대 활동을 통해 주변을 관찰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견주가 생명을 구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달 영등포구에서 순찰대 활동을 시작한 이호철 씨(41)는 16일 오후 4시 48분경 자동차를 타고 서강대교를 지나다 20대 여성의 투신 장면을 목격했다. 이 씨는 바로 경찰과 소방에 신고했고, 구조된 여성은 목숨을 구했다.

이 씨는 “가족들과 나들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리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걸 보고 즉각 신고했다”며 “순찰대 활동을 시작하며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게 됐고 112 신고 매뉴얼도 익혀 곧바로 대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 자치경찰위는 신고사항 기록 등이 가능한 순찰대 전용 애플리케이션(앱)도 만들기로 했다. 시 자치경찰위 관계자는 “곧 상용화를 앞둔 앱은 안전 신고 및 범죄 예방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반려견 순찰대가 반려인과 비반려인 간 공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에도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