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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월동보다 버거운 월하준비… “전기-가스료 감당 안돼”

입력 | 2023-05-23 03:00:00

이른 무더위에 “올여름 폭염” 예보
에너지값 줄줄이 올라 시름 늘어
“에어컨 줄이면 손님 끊길 우려
차라리 영업시간-직원 줄일 것”




서울 영등포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A 씨는 최근 직원들에게 휴대용 ‘손풍기’를 하나씩 지급했다. 냉방비를 아끼기 위해 손님을 안 받는 브레이크 타임에 에어컨을 끄는데,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다. 지난해 여름 전기료는 한 달에 약 120만 원 나왔다. 그는 “올해 최대한 전기요금을 절약해 전년 대비 10∼15% 오른 정도에서 선방하는 게 목표”라며 “가스비, 인건비, 식자재값이 일제히 오른 상황이라 더 부담된다”고 말했다.

이른 무더위에 올여름 폭염 예보까지 겹치면서 자영업자들은 이미 혹독한 여름 나기에 돌입했다. 특히 올해는 1분기(1∼3월) 가정 전기·가스요금이 1년 전보다 30% 넘게 오른 데다 이달 들어 한 차례 더 올라 부담이 크다. 더 길고 더 빨라진 여름에 월동 준비보다 ‘월하(越夏) 준비’가 더 버겁다는 말이 나온다.

● 자영업자들 ‘월하(越夏) 준비’ 비상

국내에서 가장 더운 지역으로 꼽히는 대구에서 일식집을 하는 B 씨는 손님이 적을 땐 에어컨을 끄고 붐빌 때 다시 켜는 고육책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업장은 시원해야 한다’며 손님이 없을 때도 에어컨을 켜놨었지만 올해는 다르다.

실내 헬스장은 여름 나기가 더 고역이다. 서울 성동구에서 골프연습장과 헬스장을 하는 C 씨는 에어컨 7대를 다 가동하자니 냉방비가 너무 많이 나와 웬만하면 문을 열어놓고 운영한다. 회원료를 올리자니 단골 발길 끊길까 엄두를 못 낸다. 지난주엔 리모컨을 들고 다니며 에어컨을 켜는 회원과 끄러 다니는 직원 간에 실랑이까지 벌어졌다. 그는 “손님은 에어컨 켜고 다니고 직원은 몰래 따라가 꺼놓는 게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영업시간 내내 불을 켜놔야 하고 전자레인지, 치킨 튀김기 등 전기 쓰는 부대시설이 많은 편의점들도 여름이 부담스럽다. 경기 성남시의 편의점주 D 씨는 일찌감치 24시간 영업을 접고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있다. 하지만 영업시간을 줄여도 아이스크림과 유제품 냉방은 밤새 유지해야 한다. 그는 “인건비라도 줄이려 한동안 혼자 18시간 일하다가 너무 힘들어 다시 아르바이트생을 쓰는데, 운영비가 불어나면 대안이 없어 또 혼자 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예 직원을 줄이려는 자영업자도 적지 않다. 자영업자 E 씨는 “날이 더 더워져 전기료를 못 아끼면 다른 곳에서 고정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더우면 손님들이 아예 안 찾으니 차라리 직원을 줄일까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 전기료 걱정 커지며 에어컨 대체재 인기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은 16일부터 기존 대비 모두 5.3% 올랐다. 이번 인상으로 각 가정(4인 가구 평균 기준)이 매달 7000원가량을 추가 부담하게 된다. 전기료 걱정이 커지면서 가정에선 고효율 가전에 눈 돌리고 있다. 롯데하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1∼4월 에너지소비효율 1, 2등급의 고효율 가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냉장고 2.4배 △공기청정기 2배 △세탁기 1.8배 늘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도 전 제품에 에너지소비효율 1, 2등급의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에어컨 대신 전기료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오는 선풍기, 서큘레이터(공기순환기) 등 대체재를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달 1∼14일 롯데하이마트에서 판매된 선풍기는 직전 2주보다 1.5배 늘었다. 특히 강한 바람으로 공기 순환을 도와 냉방 효과를 주는 서큘레이터 매출은 1.7배 늘었다. 아웃도어 의류에 주로 쓰이던 통기성 높은 기능성 냉감 소재는 일반 옷에도 확대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올여름 폭염 예보로 가정마다 냉방비 걱정이 커지면서 가전부터 의류까지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제품을 찾는 등 가치소비, 실속소비 수요가 늘고 있다”고 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