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감독이 2019년 한국으로 전지훈련을 하러 왔을 때 김해공항에서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박 감독은 베트남 23세 이하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모두 지휘하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부산=뉴스1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박항서의 추억.’
최근 끝난 2023 동남아시아(SEA)경기대회 축구대회 결승은 여러모로 박항서 감독(66)과 베트남 대표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필리프 트루시에 감독(68)이 이끄는 베트남은 16일 이 대회 3, 4위 결정전에서 미얀마를 3-1로 물리치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결승에서는 인도네시아가 연장 접전 끝에 태국을 5-2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랬던 이 대회에서 박항서 감독이 없는 상태에서의 베트남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팬들은 궁금해했다. 베트남은 올해 초 박 감독과 계약을 종료했다. 트루시에 감독으로 새 체제를 꾸린 베트남은 이 대회 3연속 우승을 노렸으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베트남은 인도네시아와의 준결승에서 2-3으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박 감독 시절 뜨거운 환호를 이끌었던 대회였지만 이번에는 그때만큼 강렬한 기쁨의 표현은 없었다. 박 감독이 이끌던 베트남 대표팀과 그 이후는 이 대회를 통해 뚜렷한 대비를 보였다.
물론 베트남이 일군 3위의 성적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베트남이 박 감독 체제 이후 더 높은 도약을 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는 것도 당연하다. 베트남은 대회 내용을 분석하면서 더 나은 성적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분주하다. 베트남 축구계는 대회에 참가한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경험과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대회 정상에 올랐던 경험과 기억은 베트남에 계속해서 그 수준을 유지하거나 넘어설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의 도약에 있어서 넘어서야 할 도전의 대상이자 기준점을 남기고 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트루시에 감독이든 누구든 당분간 베트남 대표팀 감독을 맡은 이들은 박 감독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이를 통해 그들 또한 성장할 것이다. 이것이 박 감독이 베트남에 남겨 두고 온 소중한 유산일 수 있다. 말하자면 박 감독은 베트남에 혁신의 씨앗을 남겨 놓고 온 셈이다.
그 자신은 은퇴가 가까운 나이에 아무런 연고도 없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국에 가서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일구었으니 스스로의 인생 자체에서도 도전과 혁신을 통한 열매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부 베트남 팬들이 박 감독 퇴임 즈음 지나치게 수비 위주의 전술을 펼친다는 등 박 감독에 대한 비방을 표현했다는 뉴스가 있기도 했지만 이는 베트남 팬들이 더 나은 성적을 염원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일 뿐 베트남 팬 전체의 뜻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기에는 베트남에서 일군 박 감독의 업적과 그동안 베트남 팬들이 보여준 그에 대한 감사와 환호는 너무나 크고 뚜렷했다.
베트남과 한국이 이만큼 우호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데에는 박 감독의 역할이 컸다. 박 감독의 베트남 전성기 시절을 일구었던 대회를 바라보면서 새삼 그의 활약과 업적이 겹쳐 떠오른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