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켜지고 손 흔들며 / 다시 음악이 시작되면 / 서로가 마주 보고 있어도 / 똑같이 느낀다는 걸 알아 / 눈 감고 노래하고 있지만 / 춤추고 웃고 있는 게 보여 /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 있는 그대로 아름다웠던 / 그때로 돌아온 기분이야.”(마이 앤트 메리 ‘다시 여기에’)
국내 인디 1세대인 모던 록밴드 ‘마이 앤트 메리(My Aunt Mary)’가 15년 만인 최근 발매한 새 EP ‘라이트 나우(RIGHT NOW)’는 ‘지금 당장’이라는 ‘현재 시제’의 만족을 넘어 ‘미래 완료 시제’로까지 나아간다.
‘다시 여기에’라고 노래하는 건, 추억을 박제하며 먼 풍경을 만드는 게 아니다. 여전히 좋은 노래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얼어붙었던 시간을 청량하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그건 마이 앤트 메리의 지향점이기도 한 ‘저스트 팝’, 즉 그냥 좋은 팝이 새삼 증명하는 가치다.
고교 시절부터 함께 지낸 정순용(보컬·기타), 한진영(베이스), 이제윤(드럼)이 결성했다. 1995년 서울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셀프 타이틀 앨범으로 데뷔했고 2004년 지금도 명반으로 회자되는 정규 3집 ‘저스트 팝(Just Pop)’으로 거물급 밴드가 됐다. 이 음반으로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앨범’과 ‘최우수 모던록’ 부문을 받았다. 정규 2집(2001) 발매 뒤 이제윤이 유학을 떠난 대신 박정준(드럼)이 합류해서 만든 음반이다. 싱글로 먼저 발표됐다, 이 앨범에 실린 밴드의 대표곡 ‘공항 가는 길’은 이제윤을 배웅하는 곡이기도 하다.
그러다 2008년 정규 5집 ‘서클’ 이후 활동을 멈췄다. 작년에 다시 뭉쳐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연말 단독 공연으로 서서히 예열하더니 ‘서클’ 이후 첫 음반 ‘라이트 나우’까지 발매하게 됐다. 네 곡이 실렸는데 마이 앤트 메리가 현재 진행형의 밴드임을 충분히 증명하는 노래들이다.
마이 앤트 메리가 신곡 작업을 시작하면서 싱글 컷을 준비했었던 ‘런(RUN)’은 지난날의 회상과 함께 설렘이 가득하고, ‘세상 속으로’는 마이앤트메리의 청량하면서 아련한 감성이 스며든 팝 록이다. 타이틀곡인 ‘여름밤’은 마이 앤트 메리표 ‘서머송’으로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애틋함이 청랭하게 표현됐다. ‘다시 여기에’는 멤버들과 팬들 그리고 누군가에게나 있는 꼭 지켜내고 싶은 순간들을 노래한다. 다음은 ‘다시 여기에’ 뭉쳐 노래하고 있는 세 멤버들과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일단 재결성을 하게 된 계기를 묻고 싶습니다. 작년 대중음악 신(scene)에서 크게 짚어야 할 건으로 밴드 ‘송골매’와 마이 앤트 메리 재결합을 꼽는 분들이 상당수였습니다. 재결성 이후 재결성으로 기대했던 것들을 얻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생활이 계속 정체돼 있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순용이랑 연락이 됐고 마침 페스티벌 제의도 있어서 셋이서 상의 끝에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재결성 이후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기다려 주셨다는 걸 알게 됐습다. 무엇보다 큰 힘이 됐습니다.”(한진영)
“지난해 10여 년 만에 활동에 들어가서 단독 공연, 페스티벌 등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 아직 활동에 대해 평가하고, 돌아보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팬들을 만나는 장소, 순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박정준)
-재결성 타이밍이 왜 지난해였는지 궁금합니다. 그 사이 멤버들이 가장 변한 건, 가장 변하지 않은 건 무엇인지요?
“코로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대로입니다. 전반적으로 팀 분위기가 부드러워졌습니다.”(정순용)
“오랜 시간 함께 해서인지 특별히 달라진 것 없다고 느꼈습니다. 서로의 스타일과 좋아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박정준)
-무려 15년 만에 새 음반입니다. 마이 앤트 메리의 명반인 ‘저스트 팝’처럼 현재성을 강조한 음반 제목이 눈길을 끕니다. 이 음반엔 어떤 의미가 담겼나요?
“지금 현재의 우리 사운드가 스스로 궁금했습니다. 지난 곡들에 담겨있는 우리가 아닌 지금의 호흡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정순용)
“저희 대부분의 곡이 새로운 느낌보다는 익숙한 느낌이 많습니다. ‘라이트 나우’ 또한 그냥 지금의 저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한진영)
“순용이가 지금의 ‘우리 모습’이라는 화두를 던졌고, 모두가 공감해 자연스레 앨범 타이틀이 됐습니다.”(박정준)
-이번 음반은 향후 활동의 신호탄 혹은 새 정규 음반의 전초전입니까?
“‘라이트 나우’는 다시 만난 팬분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의 선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나 목표점은 없습니다. 순간순간들의 모습과 생각을 담는 일만 하고 싶습니다.”(정순용)
“지금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 추후의 앨범 스케줄은 잘 모르겠습니다. 음악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곡을 쓰진 않습니다. 앨범 작업을 할 때, 그때쯤의 저희의 감정이 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네요.”(한진영)
“긴 공백에도 꾸준히 저희 음악을 들어주시고, 사랑해 주신 팬들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으로 즐겁게 작업했습니다.”(박정준)
-그 사이 밴드 신(scene)이 많이 변했습니다. 각자 다른 결로 음악에 계속 몸담고 계셨지만 또 마이 앤트 메리로서 직접 경험하는 밴드 신은 다를 거 같은데요. 한창 활동하시던 2000년대와 2020년대 지금 가장 무엇이 변했나요?
“높은 수준의 연주와 다양한 스타일에 놀랄 뿐입니다.”(정순용)
“밴드가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사라졌다는 거. 중소 규모의 공연장과 작은 클럽들이 많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신에 있는 팀들은 더 경쟁이 치열하다고 생각됩니다.”(한진영)
“최근 밴드 신은 더 다양한 주제, 장르와 연주로 리스너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박정준)
-한국 인디 음악신의 전성기를 보낸 세 분이 정의하는 한국 인디 음악 신의 정의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K 팝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고 K 팝의 범주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음악에 담겨있는 애티튜드가 곧 인디를 정한다고 생각합니다. k팝의 범주는 리스너들의 욕구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정순용)
“인디음악은 자유로움과 솔직함을 가지고 있는 장르라고 생각됩니다. k팝은 정말 거대한 파도 같아서 경외감이 들 정도입니다.”(한진영)
“한 개인이 갖고 있는 예민하고, 감성적인 부분을 인디음악이 더 잘 이해하고, 소통하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인디 신도 K팝처럼 지경이 더 넓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박정준)
-밴드는 매력적인 구성이지만 영원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밴드의 매력은 무엇이며 밴드를 유지하기 위해선 무엇이 중요할까요?
“밴드는 함께하고 있는 혼자인 사람들 같습니다. 서로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정순용)
“제가 생각하는 밴드의 매력은 각자의 몫이 확실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커다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게 아닐까 싶네요.”(한진영)
“밴드의 매력은 단연 합주입니다. 같은 곡이라도 무대에 따라 그루브나 무드가 달라지는 것도 매력이죠. 멤버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박정준)
-최근 밴드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밴드 사운드도 1인 혼자서 만들어내는 형태의 팀, 작업물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밴드 후배들이 밴드 형태나 앞날에 대한 고민을 물어온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함께하고 있는 순간만 나올 수 있는 소리와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정순용)
“각자의 몫이 아닐까요? 혼자서 하는 게 좋은 사람은 그렇게 하고 팀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과 공유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게 편한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게 맞겠죠. 뭐가 좋고 나쁘고는 없는 거 같아요. 중요한 건 밴드의 형태보다는 밴드의 음악이 아닐까 싶네요.”(한진영)
“1인 밴드, 멋집니다. 어느 시대나 밴드는 있어왔고, 그 모습 또한 항상 새롭고, 진화해왔다고 생각합니다.”(박정준)
-각자 솔로 혹은 팀 활동도 계속 병행을 하시면서 마이 앤트 메리를 꾸려나가실 거 같은데요. 각자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지금부터가 마이 앤트 메리 2기라고 봐도 무방한가요?
“각자 하고 있는 일들이 있어서, 시간적인 여유는 없는 편입니다. 토마스 쿡 솔로 무대도 올해 안에 한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정순용)
“저는 TAE:A(태아)라는 팀을 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 첫 EP를 발매했고 2022년에 두 번째 EP를 발매했습니다. 우선 지금은 태아와 마이앤트메리를 병행하고 있는데요. 두 팀에 누가 되지 않도록 스케줄 조절과 체력 조절을 잘하고 싶습니다.”(한진영)
“좋은 무대에서 관객들과 최대한 많이 음악으로 소통하고 만나 뵙고 싶습니다.”(박정준)
-굵직한 페스티벌에 잇따라 출연이 예정됐는데 세트리스트는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가요? 서울재즈페스티벌(26~28일 올림픽공원),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8월 4~6일 송도달빛축제공원),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9월 2~3일 강원 철원 고석정) 등 색깔이 달라 고심하는 게 다를 거 같은데요. 단독 공연(6월 17~18일 홍대 앞 무신사 개러지)도 앞두고 계시죠. 그 가운데 제일 목전에 둔 서울재즈페스티벌(서재페)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서울재즈페스티벌은 글로벌한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하는 페스티벌로 알고 있습니다. 초대받은 것만으로도 용기가 되고 기쁩니다. 도심 속 여유를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정순용)
“딱히 페스티벌 세트리스트가 정해져 있진 않습니다. 아마 신곡들이 추가되는 셋 리스트가 될 것 같습니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은 이번에 처음 서보는 겁니다. 예전에 그냥 보러 간 적은 있었는데 굉장히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게 풍경이나 무대가 화려하다는 것보다 ‘그냥 작고 세세한 부분부터 디테일이 조금 다르구나’였습니다.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쓴 페스티벌이라 감동을 받고 온 적이 있습니다.”(한진영)
“서재페는 특히, 에너지가 다를 듯합니다. 저희 멤버들도 모두 재즈를 좋아합니다. 이렇게 초대돼 감사합니다. 서재페는 재즈라는 장르 안에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모여, 공연하는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박정준)
-‘저스트 팝’은 지금까지도 명반으로 통합니다. 이 음반이 세 분에게 어떤 의미가 됐고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마이앤트메리를 가장 많이 알려주었던 앨범이라 잊을 수가 없습니다.”(정순용)
“‘저스트 팝’은 저희 마이앤트메리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준 효자 같은 앨범이었습니다. 지금도 세트리스트에는 ‘저스트 팝’의 노래들이 들어가고 또 많은 분들이 들어주셔서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한진영)
“때도 성공이라기보다, 많이 들어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응원 덕분에 이번 작업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박정준)
-한국대중음악상 등을 비롯해 작품성 위주로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평단의 평이 여전히 유효한 시대라고 믿으시나요?
“개인적으로 무엇에 관해 평가하는 것들에 관심이 갈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에 대해서 궁금해질 때 특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정순용)
“유효하다고 봅니다만 힘은 많이 약해진 게 아닌가 싶네요. 이건 시상식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한진영)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가는 다 다르겠지만, 저희 음악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라고 생각합니다.”(박정준)
-‘좋은 팝’이 팀 활동의 지향성으로 알고 있어요. 멤버분들이 생각하는 좋은 팝, 즉 좋은 노래는 무엇인지요?
“생각나서 흥얼거리거나 잊기 싫어 표시해두는 곡이라고 생각이 듭니다.”(정순용)
“저는 우선 1번이 멜로디입니다. 그리고 2번은 팀이 낼 수 있는 최선의 사운드입니다.”(한진영)
“편안하게 들을 수 있고,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닐까요?”(박정준)
-마지막 질문입니다. 미래는 단언할 수 없지만, 팀 활동은 오래갈까요?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봐도 잘 모르겠는 부분이 참 많습니다. 함께하고 있는 지금에 감사하는 마음이니까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정순용)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오랫동안 유지가 될 수 있겠지만 일이라는 게 뜻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 최대한 서로 노력하고 있다고만 말씀드리고 싶네요.”(한진영)
“언제까지라기보다는… ‘라이트 나우(Right NOW)’입니다.”(박정준)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