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지털 치료 기기 도입 의사가 진료 후 헬스케어 앱 처방… 환자가 수면일지 쓰면 개선책 제시 불면증-인지치료 SW 식약처 허가… 상용화 위해 복지부 심사 앞둬 ADHD 등 치료 앱 줄줄이 개발 사용자 편의성-접근성 높지만 촘촘한 데이터 보안 규정 필요
교통사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를 위해 개발된 디지털 치료 기기를 체험하는 모습. 동아일보DB
의사 진료 후 앱을 처방받아 사용
소프트웨어가 의료기기로 인정받아 병·의원 치료 등에 쓰이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에임메드가 개발한 불면증 치료 소프트웨어 솜즈가 올해 2월 국내 첫 디지털 치료 기기 허가를 받은 데 이어 4월 웰트가 개발한 인지 치료 소프트웨어 ‘WELT-I’가 두 번째 국내 디지털 치료 기기 허가를 받았다. 현재 전 세계 14국이 이런 소프트웨어 디지털 치료 기기를 허가했으며 불면증 치료 기기 허가는 미국·영국·독일에 이어 한국이 네 번째다.솜즈와 웰트 모두 병원에서 의사의 진료를 받은 뒤 약 대신 앱을 처방받는다. 의사가 병·의원을 방문한 환자에게 앱을 처방하면 환자는 내려받아 사용하게 된다. 환자가 수면 시간과 환경 등을 기록하는 수면 일지를 작성하면 앱이 수면의 질과 불면증 정도 등을 평가하고 이에 맞춰 카페인·알코올 섭취 제한, 수면 공간의 자극 조절 등 개선책을 제시한다. 불면증을 과도하게 걱정하는 등 심리를 교정하기도 한다. 이런 인지 행동 치료법은 6∼9주 동안 제공된다.
디지털 치료 기기에 대해서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의사의 진료 행위마다 가격을 매겨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와 다른 방식의 건보 수가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병원 방문, 약 처방 횟수와 달리 건강보험공단이 환자의 앱 사용 빈도 등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는 “디지털 치료 기기가 쓰일 경우 처방된 앱에 대해서가 아닌 전체 치료 과정에 대해 수가를 지급해야 한다”라며 “그래야 디지털 치료 기기가 다른 치료 수단과 함께 완결적인 의료 체계로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치료 기기 품목 허가 신청 늘어
정부는 디지털 치료 기기의 의료기기 품목 허가 신청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불면증 개선 용도의 다른 제품이 심사를 받는 중이고 30개 이상의 앱이 신청을 앞두고 있다는 게 식약처 설명이다. 특히 불면증·중독 증상 완화 목적의 앱들이 주로 개발되던 것과 달리 지난해부터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장애(ADHD)나 발달장애, 경도인지장애 등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는 앱들도 출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혁신 의료기기 통합 심사·평가는 혁신 의료기기의 신속한 의료 현장 진입을 지원하고자 지난해 10월 도입된 제도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혁신 의료기기 지정’,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 대상·비급여 대상 여부 확인’,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혁신 의료 기술평가’가 동시에 진행된다. 남후희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진흥과 팀장은 “의료기기가 허가받고 사용되기까지의 기간을 기존 280일에서 80일 이내로 단축하고자 했으며 허가 단계에서 안전성·유효성을 인정받았는데 추후에 보험 등재 과정에서 또 다른 평가를 받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쌓이는 의료 데이터, 안전한 관리도 관건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개인정보 보호와 방대하게 쌓이는 의료 데이터 보안 문제는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사용자의 건강 정보와 개인 식별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철저한 보안 시스템과 규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의료 데이터를 개방해 달라는 산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2020년 데이터 3법을 개정했다. 의료 데이터를 더 많은 기관이 제공, 수집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이는 민간 기관이 제도로 가로막혔던 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토대가 됐다. 개인정보를 비식별화하면 동의 없이도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