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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이시군요, 앱 처방해드릴게요” 약 대신 앱 받아 집에서 치료

입력 | 2023-05-24 03:00:00

국내 디지털 치료 기기 도입
의사가 진료 후 헬스케어 앱 처방… 환자가 수면일지 쓰면 개선책 제시
불면증-인지치료 SW 식약처 허가… 상용화 위해 복지부 심사 앞둬
ADHD 등 치료 앱 줄줄이 개발
사용자 편의성-접근성 높지만 촘촘한 데이터 보안 규정 필요




교통사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를 위해 개발된 디지털 치료 기기를 체험하는 모습. 동아일보DB

디지털 치료 기기(DTx)는 약과 주사 등 전통적인 의약품은 아니지만 디지털 기술을 통해 장애나 질병을 예방·치료·관리하는 소프트웨어다. 의사 처방 뒤 사용해야 하고 치료 효과가 검증됐다는 점에서 단순히 건강을 관리해주는 헬스케어 어플리케이션(앱)과 다르다. 인체 전기자극 등을 통해 정신계나 면역계, 대사질환을 치료하는 전자 약과도 다르다.


의사 진료 후 앱을 처방받아 사용
소프트웨어가 의료기기로 인정받아 병·의원 치료 등에 쓰이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에임메드가 개발한 불면증 치료 소프트웨어 솜즈가 올해 2월 국내 첫 디지털 치료 기기 허가를 받은 데 이어 4월 웰트가 개발한 인지 치료 소프트웨어 ‘WELT-I’가 두 번째 국내 디지털 치료 기기 허가를 받았다. 현재 전 세계 14국이 이런 소프트웨어 디지털 치료 기기를 허가했으며 불면증 치료 기기 허가는 미국·영국·독일에 이어 한국이 네 번째다.

솜즈와 웰트 모두 병원에서 의사의 진료를 받은 뒤 약 대신 앱을 처방받는다. 의사가 병·의원을 방문한 환자에게 앱을 처방하면 환자는 내려받아 사용하게 된다. 환자가 수면 시간과 환경 등을 기록하는 수면 일지를 작성하면 앱이 수면의 질과 불면증 정도 등을 평가하고 이에 맞춰 카페인·알코올 섭취 제한, 수면 공간의 자극 조절 등 개선책을 제시한다. 불면증을 과도하게 걱정하는 등 심리를 교정하기도 한다. 이런 인지 행동 치료법은 6∼9주 동안 제공된다.

식약처가 국내 시험 기관 3곳에서 6개월간 임상 시험을 한 결과 솜즈를 사용한 환자의 46%가 불면증이 개선돼 수면 일지만 쓴 대조군(12%)에 견줘 개선 비율이 높았다. 오유경 식약처 처장은 “인지 행동 치료법은 불면증 증상 개선 치료 초기 단계의 비약물적 치료법인데 솜즈와 웰트의 앱은 이런 치료법으로 허가를 받은 것”이라며 “인지 행동 치료가 효과가 없을 경우 약물 치료법으로 이행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식약처 품목 허가를 받았다고 바로 상용화되는 건 아니다. 우선 보건복지부의 의료 기기 고시, 건보 적용 여부 심사 등을 거쳐야 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을 경우 환자가 부담해야 할 기기 사용료가 다른 치료법에 비해 비싸 자주 처방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디지털 치료 기기에 대해서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의사의 진료 행위마다 가격을 매겨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와 다른 방식의 건보 수가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병원 방문, 약 처방 횟수와 달리 건강보험공단이 환자의 앱 사용 빈도 등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는 “디지털 치료 기기가 쓰일 경우 처방된 앱에 대해서가 아닌 전체 치료 과정에 대해 수가를 지급해야 한다”라며 “그래야 디지털 치료 기기가 다른 치료 수단과 함께 완결적인 의료 체계로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치료 기기 품목 허가 신청 늘어
정부는 디지털 치료 기기의 의료기기 품목 허가 신청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불면증 개선 용도의 다른 제품이 심사를 받는 중이고 30개 이상의 앱이 신청을 앞두고 있다는 게 식약처 설명이다. 특히 불면증·중독 증상 완화 목적의 앱들이 주로 개발되던 것과 달리 지난해부터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장애(ADHD)나 발달장애, 경도인지장애 등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는 앱들도 출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1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제6회 규제과학혁신포럼에서 밝힌 혁신 의료 기기 통합심사·평가 현황을 보면 디지털 치료 기기,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 등 혁신 의료기기가 품목 허가 획득과 동시에 의료 현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혁신 의료기기 통합심사·평가’가 현재 총 13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혁신 의료기기 통합 심사·평가는 혁신 의료기기의 신속한 의료 현장 진입을 지원하고자 지난해 10월 도입된 제도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혁신 의료기기 지정’,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 대상·비급여 대상 여부 확인’,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혁신 의료 기술평가’가 동시에 진행된다. 남후희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진흥과 팀장은 “의료기기가 허가받고 사용되기까지의 기간을 기존 280일에서 80일 이내로 단축하고자 했으며 허가 단계에서 안전성·유효성을 인정받았는데 추후에 보험 등재 과정에서 또 다른 평가를 받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쌓이는 의료 데이터, 안전한 관리도 관건

디지털 치료 기기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자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여준다는 점이다. 환자는 병원이나 의료기관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디지털 치료 기기를 통해 치료받을 수 있다.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의료진에게 환자의 정보가 제공돼 의사는 환자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치료 기기는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개인의 건강을 예측하고 예방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개인정보 보호와 방대하게 쌓이는 의료 데이터 보안 문제는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사용자의 건강 정보와 개인 식별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철저한 보안 시스템과 규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의료 데이터를 개방해 달라는 산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2020년 데이터 3법을 개정했다. 의료 데이터를 더 많은 기관이 제공, 수집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이는 민간 기관이 제도로 가로막혔던 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토대가 됐다. 개인정보를 비식별화하면 동의 없이도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 의료 데이터는 오랜 기간 오용과 악용 우려로 사용이 제한돼 왔다. 개인의 생활, 건강 정보는 물론 신체적, 생리적 특징이 담긴 민감 정보이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를 비식별화했어도 여러 정보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정보 주체를 특정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민감 정보인 만큼 유출되면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된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