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명 연세대 의대 감염내과 명예교수(전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김준명 연세대 의대 감염내과 명예교수(전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작년에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갑작스레 유행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던 엠폭스(원숭이두창)가 최근 국내에서 갑자기 증가함에 따라 많은 사람의 우려와 불안을 자아내고 있다.
엠폭스는 본래 원숭이, 쥐와 같은 동물에서 발생하다가 1970년에 중서부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사람에게 감염이 보고됐다. 그 후에는 아프리카 내에서 풍토병화되면서 산발적으로 발생했다. 감염 경로는 주로 감염된 동물이나 사람의 체액이 피부와 접촉하거나 오염된 물건에 접촉할 때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작년 5월 이후 유럽과 북미에서 갑작스레 유행하면서 111개국에서 8만7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결국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 공중보건 위기 상황’을 선언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작년 6월 첫 번째 환자가 나타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그 사례도 유럽을 방문하고 입국한 양성애자로 밝혀졌다. 그 후 다행스럽게도 올해 3월까지 산발적으로 발생하며 누적 확진자 수는 5명에 그쳤다.
그런데 4월부터 예기치 않게 엠폭스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달 19일 기준 누적 확진자 수가 80명이다. 환자의 96%는 남성이며 대부분 내국인으로서 해외 여행력이 없어 국내 전파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질병청 발표에 따르면 주요 증상으로 주로 항문이나 생식기 부위에 궤양이나 발진과 같은 피부 병변이 나타났다. 그리고 환자들은 익명의 모바일 앱을 이용해서 익명의 사람들과 클럽이나 목욕 및 숙박 시설에서 만나 성 접촉을 가진 바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질병청은 최근 국내에서의 엠폭스의 감염 경로는 성 접촉이라고 발표했다.
누가 보더라도 유럽에서의 조사 결과와 같이 남성 간 성 접촉이 주된 감염 경로라는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질병청은 감염 경로가 단지 성 접촉이라고 모호하게 발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국민들은 보건 당국의 분명치 못한 발표로 인해 남성 간의 성 접촉의 위험성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에서 질병에 노출되고 있다.
질병청은 국내 확산세를 고려해 위기 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한 단계 높은 ‘주의’로 유지하면서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접종과 감시를 지속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전국 33개 의료기관과 보건소에서 신청을 통해 예방접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국민들에게 정확한 감염 경로도 알려 주지 않으면서, 그에 따라 누가 고위험군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과연 누가 예방접종을 신청해야 할지 답답할 따름이다. 이제라도 보건 당국은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서 남성 간의 성 접촉이 엠폭스의 주된 감염 경로임을 분명히 알려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그에 따라 경각심을 갖고 위험 행위를 피하게 하며, 나아가서 고위험군 예방접종이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김준명 연세대 의대 감염내과 명예교수(전 대한감염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