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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골드러시 시대, K-무기가 ‘반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딥다이브]

입력 | 2023-05-24 08:00:00


올해는 한국이 무기를 만들기 시작한 지 50주년 되는 해입니다. 1973년에야 국산 소총이 처음 생산됐기 때문인데요. 그런 한국이 이젠 무기 수출로 세계 9위권 국가가 됐습니다. 특히 최근 2년 동안 유례 없는 속도로 빠르게 무기 수출을 늘려가면서 전 세계가 ‘K-방산’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세계 평화를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K-방산엔 기회로 작용한 게 사실입니다. 아울러 자칫 지금의 호황이 ‘반짝’하고 지나가버릴 가능성도 없진 않은데요. 기회를 잘 살려서 K-방산이 한단계 도약할 수 있을까요. 산업연구원에서 방위산업 연구를 담당하는 장원준 연구위원을 인터뷰했습니다.

현대로템의 폴란드 K2 전차 출고식. 현대로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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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골드러시와 러시아의 추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각국이 매우 빠르게 국방예산을 늘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이 늘어났나요?

“말 그대로 앞다퉈서 주요국들이 국방 예산을 증액하고 있습니다. ‘방산 골드러시 시대’라고 할 수 있죠. 미국 에비에이션 위크(Aviation Week)가 10년 뒤 전 세계 국방 예산이 2조5000억 달러(약 3296조원)까지 증가할 거라고 전망했었는데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작년 실제 국방예산을 집계한 게 2조2400억 달러(2953조원)였습니다. 예측보다 이미 더 빠르게 증가한 겁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 대만 문제까지 있어서 국방예산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방위산업청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는 “한국 방위산업의 수출을 시작한 게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K-방산’으로 불릴 정도로 수출이 빠르게 늘어난 게 고무적”이라고 말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집계한 1988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 국방 지출 규모. 지난해 특히 많이 늘어났다. 자료: SIPR

-국방 예산이 그렇게 많이 늘었다는 건 무기 수입을 엄청나게 늘린다는 얘기인데요. 원래는 러시아가 무기 수출의 강국이었죠.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엔 러시아산 무기 도입을 꺼리는 국가들이 많다고요?

러시아 무기 수출은 추락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요인인데요. 첫 번째는 아시다시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무기가 형편없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전차나 그런 게 파괴도 많이 됐으니까요. 기존 무기 구매국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두 번째로 전쟁 때문에 미국과 나토(NATO) 회원국들이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습니다. 특히 방위산업 부품의 수입을 막았는데요. 이 때문에 러시아가 무기를 독자 개발, 생산하는 데 제약이 많습니다.

또 기존에 러시아산 무기를 많이 구입한 국가가 인도, 베트남, 이집트인데요. 그 나라들이 미국과 나토 회원국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는 무기 수출이 어렵습니다. 전쟁 상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최근 SIPRI 보고서를 보면 과거 5년과 비교해 최근 무기 시장 점유율이 22%에서 16%로 급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벨리카 디메르카 마을 밭에서 한 주민이 방치된 러시아 전차 잔해 주변에 해바라기를 심고 있다. AP 뉴시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집계한 무기 수출국 순위. 미국이 압도적 1위를 지키는 가운데 한국은 9위에 올랐다. 특히 과거(2013~2017년)보다 최근(2018~2022년) 들어 한국의 점유율이 크게 높아진 게 눈에 띈다. 러시아는 시장 점유율이 크게 하락했다. 자료: SIPRI



압도적 1위 미국, 전통의 강자 유럽
-무기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늘 미국이었고 지금도 세계 1위는 미국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미국 무기를 사고 싶어 하는 그 이유를 뭐라고 봐야 할까요. 미국 무기가 성능 면에서 가장 뛰어나서일까요. 아니면 국가 간 관계 때문일까요.

“지난해 미국 무기 수출이 계약 기준으로 2000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173억 달러였으니까 10배가 넘는 수준이죠.

그 이유는 일단 미국 무기가 워낙 성능이 좋은 건 사실이거든요.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성능을 발휘하고 있는 재블린 미사일(적외선 유도 방식 대전차 미사일), 스위치블레이드(소형 자폭 무인기), 하이마스(HIMARS·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가 있고요. M1A2 전차도 우크라이나에 지원됐고, 최근엔 그리고 F16 전투기까지 지원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죠. 역시 성능이 매우 뛰어난 게 가장 중요하고요.

두 번째는 미국이란 국가의 영향력입니다. 미국은 나토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이고 많은 무기 구매국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기본적으로 깔려있고요.

마지막으로는 러시아의 무기 수출이 주춤하면서 반사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이집트, 인도, 베트남이 제재 때문에 러시아 무기 대신 미국이나 유럽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요. 미국의 무기 수출 역시 방산 골드러시 시대에 맞춰 계속 증가할 겁니다.”

5월 15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공군 기지에서 폴란드 국방부 장관 마리우스 블라슈차크(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미국산 하이마스 로켓 발사기의 첫 선적을 받은 후 기념식에서 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한 안보 우려 속에서 국방력 강화의 일환으로 미국산 하이마스를 수입했다. AP 뉴시스

-러시아와 미국 다음으로는 유럽 국가들이 방위산업의 전통적인 강자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탈냉전 이후 평화 시대가 길어지면서 예전보다 방위산업의 능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도 나오더라고요.

“유럽의 군사비가 줄어든 건 맞습니다. 군사력 규모가 줄어드니까 경쟁력에서도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인데요.

지금 워낙 무기 수요가 시급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유럽 국가들은 우리나라처럼 계속 무기를 양산해오질 않았거든요. 그렇다 보니 납품 시기는 맞추는 능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바로 그 부분이 지금은 특히 중요한데요.

예를 들어서 폴란드가 우리나라 K2 전차를 구매했는데요. 우리는 3년 만에 180대를 공급할 수 있다고 했는데, 독일은 10년이 걸려도 180대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 것 때문에 안보 위협이 시급한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같은 나라는 독일 같은 기존 무기 수출 강국만을 바라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무기 수요가 한국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우리는 빨리 만든다. 게다가 가성비까지

지난 2일 경기도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외교단을 초청해 육군 8기동사단 K2전차 와 K21장갑차가 기동 및 사격 시범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역시 한국 방산기업이 빨리 잘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군요. 납기를 잘 맞추는 게 K-방산의 경쟁력이라는 얘기는 많이 하는데요. 저는 제품력 면에선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어느 수준인지가 궁금합니다.

“지난해 산업연구원에서 무기체계별 경쟁력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70여 개 품목 중 30여 개는 선진국 수준이었습니다. 선진국을 100으로 봤을 때 우리가 90 이상이었던 거죠. 잘 아시는 K2전차나 K9자주포, 천무, FA50 경공격기처럼 수출이 잘 되는 품목의 경우엔 선진국 대비 95, 그러니까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제품으로 평가됐습니다. 그 외에도 탄약이나 천궁, 현궁 같은 무기체계의 경쟁력도 거의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 K9 자주포나 K2 전차가 폴란드에 대량 수출될 수 있었던 건 성능과 제조 능력, 이 두 가지 때문이라고 보면 될까요.

“우선 가성비가 뛰어납니다. 선진국의 동일급 전차나 자주포 대비 가격이 일부 제품은 심지어 30~40% 정도 되니까요. 그다음이 신속한 납기 능력인데, 그걸 충족시킬 나라는 아마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봅니다. 그런 게 수출이 지금 잘 되는 이유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그런데 가성비를 별로 따질 필요 없는 선진국은 비싼 값을 주더라도 아직은 한국산보다 미국산을 사려고 할 거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K-방산이 아직은 틈새시장에서 먹히는 단계라고도 볼 수 있을까요?

“많은 분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방산 수출이 반짝하고 끝나지 않겠냐는 생각을 많이들 하는데요. 이게 사실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일단 최소한 올해까지는 (방산 수출이) 괜찮을 걸로 봅니다. 폴란드가 지난해 124억 달러 계약을 했듯이, 올해 2차 3차 수출 계약이 또 남아있습니다. 한 200억~300억 달러까지 가능한 거죠.

그래서 올해까지는 괜찮은데, 내년부터는 이 정도 규모의 다른 계약이 체결돼야 하니까 그게 숙제입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데요. 호주 장갑차, 캐나다 잠수함 같은 기회가 올 때마다 정부와 기업이 노력해서 수주해야 합니다.”

-방위산업은 무기를 한번 팔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유지보수, 관리로 장기간 매출이 이어진다고 하던데요. 실제 그런가요.

“방위산업 수출의 특성이 ‘락인(Lock-in) 효과’입니다. 무기는 화장지처럼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계속 사용을 해야 합니다. 고장 나면 부품이 필요하고 정비도 해야 하죠. 통상 30~40년 이상 써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이윤이 좀 적더라도 규모의 경제 확보를 위해 일단 납품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애프터마켓 시장을 공략하는 거죠.”


방산수출 4대 강국은 꿈일까

장원준 연구위원은 방산 수출을 위한 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이나 프랑스, 러시아처럼 방산 비서관 직제를 만들어 주요 무기 개발과 수출 사업, 주요국과 공동개발에 대해 대통령에 수시 보고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원전과 방산, 건설의 패키지 딜도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일단 물이 들어와서 K-방산이 기회를 잡아 수출을 확대했는데요.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이라 볼 수 있겠군요.

“그렇죠. 무기 수출 실적이 거의 10년간 한해 20억~30억 달러 정도로 유지되다가 2021년부터 점프했습니다. 2021년엔 70억 달러, 2022년엔 170억 달러로요. 그래서 정부 목표는 앞으로 200억 달러를 꾸준히 4~5년 동안 해야 한다는 건데요. 그래서 방위산업 발전 기본 계획을 통해 정부도 노력할 거고요. 기업도 세계 최고로 커갈 수 있도록 국민들의 지지도 필요합니다. 예컨대 한화가 한국의 록히드 마틴처럼 커가야 하는 거죠.”

-연간 수출 200억 달러 정도를 4~5년 동안 한다는 건 목표가 너무 높은 것 아닌가요?

“목표라는 게 말 그대로 목표이지 않습니까? 좀 어렵지만 힘을 결집하자는 거죠. 진짜 10여 년 만에 우리나라 방산 수출이 이렇게 급성장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방위산업이 우리나라의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처럼 2030년대엔 국가 주력 산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저력이 있는 나라이고, 힘을 합치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쉽진 않지만 역랑을 집중해서 ‘2027년 방산 수출 4대 강국’을 위해 노력해 봐야죠.”

-지금은 한국이 몇위인가요?

“지금은 세계 9위권입니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독일이 톱 5이고요. 그 아래에 영국, 이탈리아, 스웨덴인데 시장 점유율을 봤을 땐 이 나라들과는 한번 경쟁해볼 만합니다. 우리가 지금 추세대로 연간 100억~200억 달러를 계속 수출한다면 5년 뒤 충분히 4~5위권이 가능하죠.”

-우리가 무기 수출에서 독일이나 중국과 맞먹는 수준으로 뛰어오른다고요?

“시장 점유율은 중국이 우리의 두 배 수준이긴 한데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연간 30억 달러쯤 하다가 2021년 70억 달러, 지난해 170억 달러를 했으니 두배씩 증가하지 않습니까. 증가율로는 무기 수출 톱 10 국가 중 1위입니다. 그렇게 보면 뭐 불가능한 건 아니죠.”

-방위산업에 관심이 큰 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신다면?

“K-방산은 지금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CNN에서도 ‘한국 방위산업이 메이저리그에 이미 진입했고, 자유민주주의의 무기고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평가했죠. 자유민주주의 무기고라는 게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했던 역할입니다. 그걸 우리나라가 지금 하는 거죠.

그래서 정부가 방산 수출 4대 강국이란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고, 여러 전망을 봤을 땐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세요.” By.딥다이브

50년 전 간신히 소총을 만들었던 나라가 이젠 ‘무기 수출 4대 강국’을 목표로 삼다니. 격세지감입니다. 비록 오랜 남북대치로 길러온 무기 제조역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안보위협 고조 영향이란 점은 다소 씁쓸하지만요. 전 세계의 평화를 바라며, 인터뷰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각 국이 앞다퉈 국방예산을 늘려잡으면서 ‘방산 골드러시 시대’가 열렸습니다. 러시아의 무기수출 시장 위상이 떨어진 대신 미국을 포함한 다른 주요국 방위산업이 호황을 맞았습니다.
-무기 수출 시장에서 한국은 가성비와 납기 능력으로 두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10여 년 동안 연 20억~30억 달러 수준에 머물던 방산 수출 규모가 지난해 170억 달러까지 늘어났습니다.
-K-방산이 ‘틈새시장용’이고, 반짝하다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많습니다. 실제 과연 내년 이후에 얼마나 더 수주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고요. 하지만 목표는 높게 잡았습니다. 2027년 글로벌 방산 수출 4대 강국을 목표로 합니다.
-목표를 이루려면 정부는 지원을 늘리고 기업은 글로벌 대기업으로 커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지지도 뒷받침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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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