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취임한 독일 수도 베를린 시장 카이 웨그너(가운데). 22년 만에 처음으로 베를린에서 중도우파 성향의 시장이 탄생했다. 베를린=AP뉴시스
독일 수도 베를린 시장이 최근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싶다”며 ‘성중립 언어(gender neutral language)’ 사용을 거부해 논란이 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은 최근 독일 매체 블리드와의 인터뷰에서 성중립적 언어로 적힌 행정서류에 서명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서명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며 “누구나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말할 수 있지만, 나는 학교에서 배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독일어를 말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취임한 베그너 시장은 중도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 소속이다. 좌파 지지 성향 강한 베를린에서 기독민주당 소속 시장이 탄생한 것은 22년 만이다.
이에 따라 하노버시 등 독일의 일부 지역에서는 ‘성중립 언어 사용 정책’을 도입해 행정과 관련된 모든 문서를 성중립 언어를 사용해 작성하도록 했다. 직업, 지위 등을 표시할 때 성별 구분이 있는 명사 대신 중성적 명사를 사용하는 식이다.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는 승객들을 맞을 때 “신사 숙녀 여러분”을 사용하는 대신 “손님”이라는 단어로 대체하기도 했다.
성중립 언어 사용 지지자로, 성중립 언어로 적힌 온라인 사전을 발간한 독일 언어학자 조하나 씨는 “우리의 사고는 언어를 통해 영향을 받는다”며 “성중립 언어는 성별과 관계 없이 모든 사람에 대한 감사를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가디언에 전했다.
논란이 일자 베그너 시장은 성중립 언어가 독일로 이주한 이민자들이 독일어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우리는 독일에 오는 사람들이 독일어를 배우길 기대한다”며 “독일 당국이 (이민자가) 독일어를 배우는 것을 불필요하게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독일 내에서 성중립 언어에 대한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기독민주당은 이번 논란에 대해 “남성형 명사 사용에도 불구하고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독일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총리가 됐다”며 성중립 언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채완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