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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덫[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입력 | 2023-05-24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탐욕(貪慾)은 욕심이 지나친 상태입니다. 널리 퍼져 있어서 흔히 접합니다. 탐욕은 성장 과정, 사회의 특성, 전통 가치관, 문화적 배경, 경제 상황과 뿌리 깊게 연결이 되어 있는 큰 주제이나 짧은 글에 담아보겠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나 철학이 탐욕을 부정적으로 정의해 온 것은 탐욕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의 입장과는 달리 경제적 관점에서는 탐욕을 긍정적이고 중심적인 요인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탐욕의 끝은 비극입니다. 때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스캔들로 등장해서 본인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마무리됩니다. 물질 숭상 시대에 탐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탐욕의 부당함을 교육한다고 해도 없애기는 불가능합니다. 본능적 욕구에 숨어서 은밀하게 움직이기에 찾아내기부터 어렵습니다. 탐욕을 부끄러운 가치가 아닌 당당하게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서 살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게 보유한 자산에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합니다. 그 사람에게 대인관계는 자산과 자산 사이의 상대적 관계일 뿐입니다. 탐욕이 축적한 결과가 혼자서 쓸 수 있는 한도를 훌쩍 넘어도 개의치 않습니다. 처음부터 실용성보다는 안전함, 부러움, 힘 있음과 같은 상징성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탐욕의 뿌리는 어디일까요?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는데 개략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젖을 먹고 자라는, 입에서 본능적 만족을 찾는 구강기에 제대로 젖을 먹지 못하고 고생했던 경험에서 유래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젖 달라고 보채면서 겪은 불안, 좌절로 인해 마음의 발달이 구강기에 고착되어 탐욕스러운 어른으로 자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젖을 떼는 시기에 느낀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과 엄마와 떨어지면서 느낀 불안이 탐욕으로 연결된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좀 과격하게 들리지만 어린 시절 충족되지 않았던 배고픔에 대한 심리적인 복수로 탐욕스러움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멈출 수 있다면 탐욕이 아닙니다. 탐욕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로 달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이때 함께 움직이는 마음의 에너지는 버림받거나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얻고자 하는 물건, 지위, 소속 집단에 대한 욕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두 손에 힘을 꽉 주고 잡고 있으려 합니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정체성과 집단 내 존재감을 지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다가 탐욕에 눈이 멀면 현실판단력이 너무 떨어져서 실수를 하게 되고 애써 잡고 있던 것을 결국 놓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탐욕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악순환의 고리를 돕니다. 돈과 같은 자산의 손실이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허물어진 손상과 같다는 환상에 빠집니다. 이를 회복하려고 물질을 탐하게 되면 다시 탐욕의 늪에 더 깊이 빠집니다.

탐욕은 편식과 같아서 불균형을 초래합니다. 돈으로 행복을 추구하면서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스스로 버리게 됩니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람이 아닌 목적을 성취할 수단이자 도구로 봅니다. 그 사람의 대인관계 공간은 사람들과 같이 모여 즐기는 잔치 장소가 아닌 살벌한 사냥터입니다. 사냥감을 자신이 잡으려고 하면서 어울림의 기쁨을 외면합니다. 다른 사냥꾼들은 동료가 아닌 경계의 대상일 뿐입니다. 빼앗기거나 총에 맞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 세계의 법은 정글의 법입니다. 사냥감을 최종적으로 가지는 사람만이 승자입니다.

확보한 사냥감만이 자신을 위기에서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가져야 하고 절대 지켜야 합니다. 사람과 달리 두둑한 주머니는 배신하지 않습니다. 부러움, 인정, 존중, 권력을 넉넉하게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값을 치러야 합니다. 탐욕이 치르는 비싼 값은 사회적 비판입니다. 공정이라는 엄정한 사회적 가치를 흔들었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사회적 적응장애입니다. 장애를 겪으면서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주변과 사회에 상처를 줍니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니 탐욕을 버릴 수 없다면 공적인 직업을 피해야 합니다. 겉치레에 그치는 사무적인 관계로 자신의 욕망만을 충족시킨다면 공공의 적이 되는 겁니다. 근검절약 흉내로 끝내 탐욕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탐욕스러움을 부인하고 합리화할 의도로 다른 사람을 근거 없이 비난한다면 자신 속에 숨긴 ‘나쁜 사람’을 엉뚱한 사람에게 투사한 것이니 소용없는 짓입니다.

혼탁해진 마음의 문제를 물질을 탐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을 다스려서 정리해야 합니다. 탐욕에 휘둘리지 않으면 자존감이 올라가고 대인관계가 향상되어서 진정성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물질로 얻는 위안은 한 줄기 바람처럼 지나갑니다. 탐욕은 결승점 없는 달리기 경기와 같아 쓰러질 일만이 남은 허망한 움직임입니다. 쓰러지기 전에 애써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