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건설업계]〈상〉 이자도 버거운 건설사 자금난 건설사들… 부채비율 300% 넘는 기업 1년새 2배로 ‘재무위험’ 회사 1년새 10개→22개 10곳중 6곳꼴 전년보다 부채비율↑ “지방 미분양 심각… 줄도산 우려
시공능력평가 100위권 후반대의 A건설사 대표는 이자 납부일이 다가오는 월말만 되면 잠을 못 이룬다. A사 부채는 기존에도 있었지만 2021년까지는 그나마 회사가 버는 돈으로 이자는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공사 미수금이 200억 원으로 1년 새 2배로 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분양까지 대거 발생해 분양 미수금만 300억 원에 이르게 됐다. A사 대표는 “부동산 경기가 고꾸라지며 영업으로 번 돈을 모두 은행 이자로 내도 다른 곳에서 돈을 마련해 이자로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 여파로 자금난에 시달리며 휘청이는 건설사가 늘고 있다. 재무적으로 위험한 수준에 놓인 건설사는 1년 전보다 두 배로 많아졌고, 이 중 60% 이상의 건설사는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하반기(7∼12월) 분양 시장이 본격적으로 되살아나지 않으면 지방 중소형 건설사의 줄도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23일 도급순위 300위권 건설사의 지난해 감사보고서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부채비율 300%를 넘는 건설사가 22곳으로 전년(10곳)의 두 배 이상으로 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감사보고서 미작성 15개 건설사는 제외한 수치다. 건설 기업은 금융사의 레버리지(부채)를 활용해 사업하는 경우가 많아 통상 300%를 초과하면 위험하다고 본다.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건설사들… 올해 826곳 폐업
6곳은 영업이익 아예 마이너스… 건설사들 PF이자 급등에 자금난
3월 기준 미분양 전국 7만2104채
10대 건설사조차 분양 일정 미뤄… “자구노력 전제속 정부 대응 필요”
#1. B시행사는 경남에서 대단지 아파트 개발 사업을 벌이려 최근 1300억 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일으키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연대 보증과 책임 준공에 나서겠다는 시공사를 못 찾았기 때문이다. 이미 사업 초기 자금을 댈 금융사를 구한 상황이라 타격은 더 컸다. B시행사 관계자는 “중견 건설사부터 대형 건설사까지 다 만났지만 죄다 기존 사업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신규 사업은 엄두를 못 낸다며 거절했다”면서 “토지 매입과 인허가 과정에서 브리지론으로 자금을 마련했는데, 생돈으로 이자를 내며 버텨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3월 기준 미분양 전국 7만2104채
10대 건설사조차 분양 일정 미뤄… “자구노력 전제속 정부 대응 필요”
#2. 올해 4월 전북에서 350채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C사가 부도났다. 충남에서 시공능력 70위권의 중견 건설사로 통하지만 자금 사정 악화로 ‘흑자 부도’가 났다. 지난해 매출액 373억 원, 영업이익 25억 원을 올렸지만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유동부채)만 210억 원으로 전년(84억 원) 대비 2배 넘게 불었다. 이 기간 부채비율도 352.3%에서 718.1%로 치솟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방에서 이름 있는 종합 건설사도 부도났다”며 “영세한 중소 건설사들은 사정이 더 어려워 부도 회사가 더 나올 수 있다”고 했다.
● 분양 침체에 재무건전성 ‘위험’ 건설사 늘어
23일 동아일보가 도급순위 300위권 건설사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부채비율이 300%를 넘는 22개 건설사 중에서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비율)이 1 미만인 건설사는 14곳으로 집계됐다. 이들 건설사는 회사를 운영하며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중 6개 건설사는 지난해 영업손실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사의 자금난은 분양 경기 침체의 영향이 크다. 건설사들은 분양 경기가 나쁘면 통상 경기 회복을 기다리며 분양 일정을 미루는데, 부동산 PF 대출 이자가 급등하며 이자 비용이 커지자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 올해 폐업 건설사, 전년 대비 30% 증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4월 금융결제원이 공시하는 당좌거래 정지로 부도 처리된 건설업체는 총 5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곳)보다 많았다. 폐업한 건설사 역시 급증했다. 올해 1∼4월 폐업한 건설사(종합·전문)는 826곳으로 전년 동기(642곳)보다 28.7% 늘었다. 특히 종합건설사 폐업(111곳)이 전년 동기(66곳) 대비 70% 가까이 대폭 늘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건설업 폐업 관련 상세 현황 분석’ 보고서에서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가 아니면 일정 수준을 유지하던 폐업 수치가 지난해 4분기(10∼12월) 이후 증가했다”며 “건설업 폐업에 선제 대응을 해야 한다”고 했다.
● 산업 파급 효과 높은 건설업 침체 막아야
건설업계 자금난은 부동산 호황기를 타고 진행된 무분별한 투자가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시장이 좋을 때 건설사들이 무리한 투자를 벌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현 위기는 투자 실패에 따른 측면이 분명히 있는 만큼 분양가를 할인하는 등 건설사의 자구 노력이 필수”라고 지적했다.건설업계의 자구 노력을 전제로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막기 위한 선제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건설업이 흔들리면 기업은 물론이고 근로자, 금융권, 지역사회 등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업은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5.4%를 차지할 정도로 산업 파급 효과가 크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사업부 부동산팀장은 “건설사는 미분양 주택을 분양가보다 훨씬 낮춰 시장에 내놓고, 정부는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무주택자에게 취득세나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주는 등의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