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59〉개구리가 맛있다고?
영화 ‘매그놀리아’에선 개구리가 비처럼 쏟아져 등장인물들을 놀라게 만든다. 뉴라인시네마 제공
그들이 개구리를 먹은 것은 미식(美食)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당나라 한유(768∼824)는 벗 유종원이 남방으로 좌천된 뒤 개구리를 먹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썼다.
‘하마(蝦蟆)’는 개구리의 일종으로 두꺼비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이 무렵 시인 역시 조주(潮州)로 좌천돼 낯선 풍토에 적응하느라 힘겨웠다. 뱀과 개구리를 먹는 것은 중국 영남(오령 아래 남쪽 지방)의 음식 문화였지만 북방 출신의 시인에겐 잘 맞지 않았다(‘初南食貽元十八協律’). 특히 개구리는 시끄럽게 울어 잠도 방해하고 우둘투둘한 피부로 거부감을 줬다.
시에서도 개구리 먹는 얘길 주제로 삼은 이유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영화나 시 모두 하나의 메타포로 개구리를 활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개구리가 비처럼 내릴 때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죄와 고통을 씻어냈다면, 황제의 불교 숭상을 비판했다가(‘論佛骨表’) 죽을 뻔했던 시인에겐 개구리를 먹는 행위가 잘못된 세상에 타협하는 일로 여겨져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시인이 같은 처지의 벗 유종원을 놀린 배경에는 신념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는 자신들에 대한 경각심이 자리 잡고 있다. 끝내 황제의 용서를 받지 못할지라도 개구리 먹는 일 같은 현실 타협은 하고 싶지 않다는 소신일까.
영화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우화처럼 펼쳐냈듯, 시도 유머러스하지만 동시에 현실의 어두운 면을 암시한 희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