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
최근 한 커피믹스 제품에서 실리콘 성분이 검출돼 제조사가 리콜을 결정했다. 많은 국민이 즐겨 마시므로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검출됐다면 만약을 대비해 리콜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커피믹스만큼 많은 국민이 애용하는 담배는 리콜이 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담배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안전한 제품일까.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담배 연기 속 발암물질은 70여 가지, 화학물질은 7000여 가지이다. 심지어 그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담배 연기 속 모든 발암물질과 독성물질의 종류와 양을 알 수 없을뿐더러 제조 과정에서 어떤 물질이 첨가되는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담배 포장지에는 성분의 일부만 공개되고 있어서다. 현행법상 담배 연기 속에 포함된 니코틴, 타르 함량, 그리고 70여 가지 발암물질 중 고작 6가지의 정보만 공개하면 된다.
반면 유럽연합(EU), 캐나다, 미국 등은 담배 제조사 및 수입업자로부터 담배 연기 혹은 배출물뿐만 아니라 담배 제조 시 첨가되는 물질의 종류에 대해서도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모두 국민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다행히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 담배 유해성 관리가 포함됐고, 3월 24일 담배 유해성 관리에 관한 제정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안건소위원회를 통과해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다. 이 법의 골자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협력해 담배 유해성 관리 체계를 수립하고 제조사가 담배 성분을 공개하도록 해 국민의 건강을 지키자는 것이다. 법이 시행되면 담배에 포함된 각종 유해성분 정보에 접근 가능해지고 흡연자의 금연 의지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흡연으로 인해 연간 5만8000명이 생명을 잃는다. 의료비용과 같은 사회경제적 비용은 12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우리는 그동안 담배에 대해 너무 관대했다. 비흡연자는 궁금하지 않아서, 흡연자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그 누구도 정부와 담배 제조사를 향해서 담배 성분을 공개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담배의 위해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흡연을 선택하는 상황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이는 제조사가 국내 소비자를 차별하는 것일뿐더러 정부가 국민 건강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번 21대 국회와 정부가 담배 유해성 관리에 관한 제정법을 통과시켜 금연정책에 큰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