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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만 더 일해도 초과수당… 정확한 근로기록이 업무효율 높여”

입력 | 2023-05-25 03:00:00

[미래 일터를 찾아서]〈4〉 근로시간 기록이 가져온 변화
2년 前 포괄임금제 폐지한 컴투스
일-휴식 나눠 기록 유연근무 정착
“일 없을땐 일찍 퇴근 워라밸 즐겨”



국내 게임회사 컴투스의 인사시스템 화면에 해당 직원의 출근 시간과 누적 근무시간 등이 표시돼 있다. 이 회사는 2년 전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정교한 근태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초과 근로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고, 유연근무를 확대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국내 게임회사 컴투스에서 일하는 유수연 씨(32)는 퇴근할 때마다 사내 인사시스템에서 ‘퇴근’ 설정을 한다. 출근과 퇴근에 해당하는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시간이 기록된다. 퇴근 때는 그날 자리를 비운(이석·離席) 시간과 횟수도 자동으로 측정된다. 20분 이상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석’으로 기록된다. 유 씨는 매일 ‘회의 참석’ ‘개인 휴식’ 등의 이석 사유를 작성한 뒤 퇴근한다. 이렇게 누적된 출퇴근 기록을 토대로 하루 평균 8시간을 넘겨 일한 달에는, 단 1분 초과 근로에 해당하는 수당도 받을 수 있다. 유 씨는 “야근을 해도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일하게 된다. 불필요한 야근도 줄었다”며 웃었다.

컴투스는 2021년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근로시간을 정확히 기록할 수 있는 근태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포괄임금제는 일정한 시간의 연장·휴일·야간 근로를 한다고 가정해 정해진 금액의 수당을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임금 지급 방식이다. 이른바 ‘공짜 야근’의 주범으로 꼽히는 포괄임금제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실제 일한 시간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선 컴투스 사례처럼 철저한 근로시간 기록,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동아일보는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와 공동 기획으로 포괄임금 오남용을 방지하고 근로시간 제도를 개선할 해법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 일한 만큼 수당 받고 출퇴근도 더 자유롭게

“직원들의 이번 달 총 근로시간과 연장, 휴일 근로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어요.”

16일 서울 금천구 컴투스 사무실에서 만난 서효진 인사운영팀 대리는 인사시스템의 관리자 화면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설명했다. 이렇게 누적된 직원들의 근무 기록을 통해 월 단위로 초과 근무 수당이 지급된다.

컴투스가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이 시스템을 도입한 뒤 달라진 건 수당뿐만이 아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던 필수 근무시간 ‘코어(core)타임’이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3시로 줄었다. 기존에도 유연근무를 통해 하루 평균 8시간을 일했다. 하지만 협업 등으로 사무실에 있어야 하는 코어타임을 지키려면 출퇴근 시간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었다.

코어타임이 짧아지면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더 자유롭게 유연근무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 대리는 “자리를 비운 기록을 포함해 더 정교해진 출퇴근 관리로 업무 집중도를 높인 덕분에 코어타임을 과감하게 줄일 수 있었다”며 “일이 없을 때는 일찍 퇴근할 수 있어 직원들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유 씨도 “업무 성격상 월초에 일이 몰리는 편인데 그때 야근을 많이 하는 대신 월말에는 일찍 퇴근해서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다른 직원인 김지인 씨(34)는 “출근이 30분 늦어지면서 오전에 은행이나 병원도 들를 수 있고, 덜 바쁠 때 일찍 퇴근할 수 있어 편하다”고 했다. 서 대리는 “아침에 10분 일찍 출근하거나 점심시간을 10분만 쓰고 계속 일할 때도 모두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서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컴투스뿐만 아니라 카카오, NHN,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IT·게임업계 중심으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는 추세다.

● ‘공짜 노동, 장시간 근로’ 악용되는 포괄임금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울 때 법원 판례를 통해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관행적 제도지만 산업 현장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2020년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10인 이상 사업체의 37.7%가 ‘고정 OT(연장 근로·overtime)’를 포함한 포괄임금제를 적용했다.

포괄임금 계약을 하더라도 미리 약정한 초과 근로시간보다 더 일하면 그만큼 추가 수당을 줘야 하지만 기업들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임금 체불, 장시간 근로 등의 오남용 문제가 제기됐다. 정부가 3월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유연화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내놨을 때도 노동계는 “포괄임금제가 만연한 현실에서 근로시간이 길어지면 ‘공짜 노동’만 늘어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포괄임금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포괄임금 계약을 법으로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포괄임금제를 폐지할 경우 근로시간 측정을 둘러싼 노사 분쟁이 빈발하고,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직무에 대한 예외 적용이 불가능해 혼란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해진 시간보다 덜 일하는 근로자의 실질임금이 감소할 수 있어 근로자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부도 포괄임금을 전면 금지하는 것보다는 제도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용부는 지난해 말부터 포괄임금 오남용이 의심되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기획 감독을 진행 중이고, 다음 달 오남용 방지 대책도 발표할 계획이다.

● 정확한 근로시간 기록, 관리가 근본 해법

전문가들은 포괄임금이 아닌 ‘철저한 근로시간 관리’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매달 고정 수당을 주더라도 실제 근로시간을 측정해 근로자와 기업이 애초 정한 것보다 더 일했을 때는 추가 수당을 지급하면 된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결국 근로시간 기록, 관리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이를 토대로 정부가 포괄임금 오남용이나 장시간 근로를 제대로 감독하고, 포괄임금제를 쓰는 기업은 직원들에게 제대로 추가 보상을 해주면 된다”고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시행령에는 사용자가 임금 대장에 ‘근로시간’만 기록하게 돼 있다. 그 외에는 기록해야 할 출퇴근 시간 등 자세한 내용과 방식을 규정하지 않아 허술하게, 혹은 허위로 기록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근로시간 기록을 법으로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근로시간 기록, 관리를 강화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에도 부합한다. 2019년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사용자에게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정확한 근로시간 기록 시스템 구축은 정부가 추진 중인 근로시간 제도 유연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김기선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말한 대로 연장 근로를 총량으로 관리하거나 초과 근로시간을 적립해 장기 휴가로 쓰는 방안 모두 근로시간 기록, 관리와 병행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괄임금제

연장, 야간, 휴일 등 초과근로에 대해 일일이 근로시간을 계산해 상응하는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합의한 ‘정해진 금액’으로 지급하는 방식. 대법원 판례를 통해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 등 예외적으로 이를 인정하고 있다. 기업에서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하지만 계산 편의 등을 이유로 활용하는 고정 수당 방식인 ‘고정 OT(연장 근로·overtime)’ 계약도 넓은 의미의 포괄임금이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