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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 美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 경고… “부채 벼랑끝 대치 탓”

입력 | 2023-05-25 10:52:00


24일(현지시간) 케빈 매카시 미 공화당 하원의장이 부채 한도 상한 협상에 대해 기자들에게 “협상에 진전이 있다”면서도 여전히 지출 삭감을 두고 대치중이라고 말했다. 워싱턴=AP뉴시스 





미국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 협상이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자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 국가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했다. 협상 타결 상황에 따라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의 신용등급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야당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은 협상에 일부 진전이 있다고 밝혔지만 미 국내정치 대립 격화라는 ‘정치 리스크’만으로도 글로벌 금융시장 상황이 영향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예고한 ‘X-데이트’, 즉 재무부 현금이 바닥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시작되는 예정일은 6월 1일이다.






● 피치 “정치 대립이 디폴트 리스크 높여”

매카시 하원의장은 24일(현지 시간) 백악관과 공화당 실무 협상이 끝난 후 기자들과 약 13분간 만나 “우리는 일부 진전을 이뤘고 합의를 향해 가고 있다”며 “우리는 디폴트를 피할 것을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권) 민주당은 (급진 좌파 성향) ‘버니 샌더스 당’이 되고 있다”며 민주당 비판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협상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매카시 하원의장의 발언에도 피치는 이날 실무 협상 직후 미 신용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 장기 외화표시채권 신용등급을 현재 최고 등급 AAA로 유지는 하되 부정적 관찰 대상에 올린 것이다.

부정적 관찰 대상에 올린 이유로는 미국의 정치 갈등을 꼽았다. 피치는 “부정적 관찰 대상 지정은 미 부채한도 상향 합의를 방해하는 정치 대립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며 “여전히 부채 한도가 X-데이트 이전에 상향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미 정부가 실질적으로 일부 (부채) 지불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올 1월 19일 부채 한도 31조4000억 달러(4경1514조 원)에 도달한 미국은 23일 현재 재무부 긴급 자금 보유액이 765억 달러(101조4000억 원)까지 떨어진 상태다. 피치는 부채 한도를 높이기 전에 X-데이트가 닥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도 경고했다. 다음달 1, 2일에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를 비롯해 상당 규모 정부 지출이 집중돼 있어 돈이 언제 바닥을 드러낼지 모른다는 얘기다. JP모건도 미국이 X-데이트를 맞이할 확률을 25%까지 올렸다.

피치는 “부채한도를 둘러싼 벼랑 끝 대치로 미 당국이 중기 재정 문제를 의미 있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미국 신용에 대한 하방 위험을 나타낸다”며 불안한 거버넌스, 재정건전성 악화가 미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 2011년 글로벌 증시 출렁, ‘악몽’ 떠올려


이번 주가 사실상 합의의 마지노선이 될지 모른다는 전망에 전 세계 금융시장의 긴장감은 높아진 상태다. 피치가 미국을 부정적 관찰 대상으로 지정하자마자 달러에 이어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일본 엔화 가치가 급등하고 6월 초 만기 미 국채 금리가 7%까지 치솟는 등 금융시장은 출렁였다.

이를 두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 디폴트 직전 부채한도 상향에 합의했음에도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푸어스(S&P)가 미 신용등급을 강등시켜 글로벌 증시에 충격을 준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시에도 민주당 정권과 야당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한 미 하원 등 현재와 정치 상황이 같다.

미 재무부는 피치의 부정적 관찰 대상 지정에 대해 “양당의 벼랑 끝 대치가 미국 기업과 가계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백악관과 공화당이 24일 4차 협상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미국 현충일인 메모리얼데이(29일) 연휴를 맞아 양당 많은 의원은 워싱턴을 떠나 자신의 지역구로 향하고 있다. 양당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24시간 내에 부채상한 상향 표결을 할 수 있도록 대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