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201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 십수 년 전에 본 이 연극을 떠올린 건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신성한 관객에게 물을 뿌리고 말을 걸어도, 그가 연극의 기존 문법과 질서에 저항했든, 허위를 깨려 했든, 모독(冒瀆)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10년 넘게 국회와 청와대, 법원·검찰, 경찰 등을 취재했습니다. 이 코너의 문패에는 법조계(法)와 정치권(政)의 이야기를 모아(募) 맥락과 흐름을 읽어(讀) 보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가끔 모독도 하겠습니다.
2017년 1월 퇴임식을 마친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손을 흔들며 헌재를 떠나고 있다. 동아일보DB
“나는 훌륭한 헌법재판이란 직선과 곡선, 그리고 색채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음악과 같다고 생각한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국가와 사회의 지속성을 의미하는 직선, 공동체의 발전에 필요한 창의성을 뜻하는 곡선, 그리고 의견과 가치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색채가 어우러져 고된 현실에 부대끼는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희망을 주는 선율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 소장(70)은 지난해 9월 발간한 저서 ‘헌법의 자리’에서 헌법재판의 의미와 가치를 이같이 표현했다. 박 전 소장은 역대 유일한 검찰 출신 헌재 소장이었다.2016년 12월 9일 국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자 헌재는 국민적 혼란을 조기에 해소하기 위해 재판에 속도를 냈다. 헌재는 이듬해 3월 10일 파면 결정을 내릴 때까지 매주 1, 2차례 재판을 열었고 총 3회의 변론준비기일과 17회의 변론기일 등 무려 20차례 재판을 열었다. 그 수장이 박 전 소장이었다.
이때만큼 헌재가 국민적인 지지와 박수를 받고 그 역할과 위상이 높았던 때를 찾기 어렵다. 헌법의 최종 수호자인 헌재가 나서서 탄핵 심판을 마무리함으로써 국가적 혼란을 수습하고 대선을 통해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절차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년 만에 높아졌던 헌재의 위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금도 현 유남석 헌재 소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박 전 소장을 기억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 특수·기획 거친 ‘독일 병정’ 검사
2005년 6월 박한철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 수사 중간 발표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그는 검사 시절 특수통이자 기획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평검사 시절 요직인 법무부와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청와대 파견 등을 거쳤다. 막스 플랑크 국제형사법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으로 독일에서 유학을 했고 헌재 파견, 인천지검 특수부장, 대검 기획과장,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삼성 비자금 특별수사·감찰본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대구지검장, 서울동부지검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면서도 별명이 ‘독일 병정’이었다. 워낙 엄하고 철두철미한 업무 스타일 때문이었다. 박 전 소장 밑에서 일했던 검사 출신 A 변호사의 이야기다.
“굉장히 꼼꼼하시고 일을 무지하게 열심히 하시는 분이니까 검사들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재도 워낙 꼼꼼하게 하다 보니 차장 시절에 그 밑에 있던 부장들이 아무도 결재를 안 올리려고 했다. 결재를 할 때 기록에다가 본인이 수정한 부분을 접어놓는데 수십 개가 접혀 있어서 놀라고 그걸 밤늦게까지 부랴부랴 수정한 기억이 있다.”
- 취재 메모 중 -
- 취재 메모 중 -
2023년 2월 15일 박한철 전 소장이 대검찰청에서 검찰 구성원에게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대검 제공
그는 이원석 검찰총장의 초청으로 올해 2월 서울 서초구 대검 청사에서 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후배 검사들에게 공익 실현 기관으로서의 검찰은 정치적 중립이 필수적이며 균형감각 등을 통해 헌법 가치를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중립 의무는 헌법 가치를 실현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검찰 구성원, 총장으로부터 정문을 지키는 청원경찰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지혜를 짜내야 한다. 끊임없이 교감하면서 답을 찾아가야 한다. 검찰이 담당하는 모든 사건은 크고 작은 걸 떠나서 전부 방정식으로 풀어야 한다. 특히 복잡한 사건은 8,9차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데 고차방정식에 있어서는 국민 설득 문제가 가장 앞에 나온다. 국민이라는 건 언론이 가장 많은 부분을 대변하고 있고, 언론을 설득하는 문제,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그걸 풀어나가는 게 검찰의 중요한 숙제다.”
- 2월 대검찰청 강연 중 -
- 2월 대검찰청 강연 중 -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결국 검찰이 치명상을 입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그는 언론 대응을 중시했다고 한다. 공보 역할을 맡을 때는 수사 상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어 선문답을 즐겼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있던 2005년 6월엔 기자단과의 티타임 도중에 “호연(浩然)한 기개 맑고 드높으며 선재(仙才) 뛰어나 속인은 알아보기 어렵네”라며 갑자기 한시를 읊기도 했다. 당시 불거진 ‘행담도 개발비리 의혹’을 둘러싸고 기자들이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이 맡게 되느냐”고 집요하게 묻자 중국 고사를 꺼낸 것이다. 당시 그는 이처럼 대답하기 난처하거나 보안이 필요한 질문에는 역사, 문화에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설명하며 피해 갔다고 한다. 기자들도 원칙을 지키는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2005년 4월 초순이었던 것 같은데 봄이었다. ‘춘래불사춘’, 봄은 왔는데 봄이 온 거 같지가 않구나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엄청난 권력형 비리로 부각이 돼 있고 그게 궁금해하는 사항이니까 수사하는 데 여러분들의 협조를 간곡히 부탁한다. 의혹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기사를 쓰지 말고 검찰 수사와 속도를 맞춰서 보도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략) 언론과는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신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의미에서 말씀드렸다. ”
- 2월 대검찰청 강연 중 -
- 2월 대검찰청 강연 중 -
그는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브리핑 △기자들이 취재해 오는 사항에 대한 확인 △기자들의 전화는 무조건 받을 것 등 기자단과의 약속을 몇 달간 지켰고 그 결과 언론과의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 한다.
● 고검장 승진 고배… ‘전화위복’으로 헌재 재판관 지명
헌재 소장 시절의 박한철 전 소장 모습. 동아일보DB
헌재 파견 근무를 하던 시절 눈에 띄었던 덕분인지 법무부 차관을 지낸 검사 출신 김희옥 재판관 후임으로 2011년 2월 지명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이어 재판관을 하면서도 당시 이강국 헌재 소장으로부터 “소장을 맡아도 될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들을 정도로 그 자질을 인정받았다. 결국 2013년 헌재 소장으로 지명돼 헌법재판의 수장을 맡게 됐다. 또 다른 검찰 출신 B 변호사의 말이다.
“대구지검장 시절에 대구 갓바위를 한 몇 달을 매일 올라가셨어. 불심이 깊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라에 대한 걱정이 많으셔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셨는데 결국 그 기도가 헌재 소장까지 만들어 주신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 취재 메모 중 -
그가 소장이던 시절 헌재는 역사에 남을 만한 결정을 많이 내렸다. 2014년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심판 사건에서 정당 해산 인용 결정을 내렸다. 정당 해산 심판에 대한 최초의 헌재 결정이었다. 당시 헌재는 “통진당이 추구하는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는 조선노동당이 제시하는 정치 노선을 절대적인 선으로 받아들이고 그 정당의 특정한 계급 노선과 결부된 인민민주주의 독재 방식과 수령론에 기초한 1인 독재를 통치의 본질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민주적 기본질서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고 밝혔다. - 취재 메모 중 -
또 2015년에는 간통죄에 대해 “간통 행위를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 더 이상 국민의 인식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게 됐다”며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타율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고 간통죄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박 전 소장은 헌재 재판관 임명 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2013년 인사청문회부터 “9명의 재판관 중 대통령과 국회가 각각 3명씩 지명하는 것은 국민적 대표성이 있으나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하는 것은 국민적 대표성이 없다”며 “대통령과 국회의 합동 행위로 재판관 임명이 이어진다면 (이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소신 발언을 했다. 2016년 3월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선 “솔직히 자존심이 상한다”며 “(선출되지 않고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원장은 국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상태다. 헌재가 이중으로 민주적 정당성이 희석돼 과연 권위를 가질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판사 출신 헌재 소장이었다면 하기 어려운 소신 발언이었다. 박 전 소장과 함께 일했던 한 전직 헌재 재판관은 “검사 출신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았고 바르고 훌륭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2017년 1월 말 은퇴한 뒤에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와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지냈고 지금은 동국대 법대 석좌교수로 지내며 인권법 강의를 학부생에게 가르치고 있다.
● “사법의 정치화로 국민 신뢰 저하되고 헌법시스템 훼손”
박 전 소장은 지난해 9월 발간한 저서 ‘헌법의 자리’에서 헌법재판의 사회 통합 기능도 강조했다. 그는 “헌재는 보다 적극적인 헌법해석을 통해 우리 헌법이 구체적인 갈등 해결의 수단이자 목표로 작동하도록, 단계적 가치판단에 있어 헌법을 준거의 틀로 활용해야 한다”며 “동시에 정치와 권력기관에는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 지속적으로 제시해 밝은 미래를 향한 사회 통합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문제의식도 담았다. 그는 “‘정치의 사법화’는 다시 사법을 특정 세력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거나 그의 숨겨진 정치 행위로 전락시키는 ‘사법의 정치화’로 나타나기도 한다”며 “그 결과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가 저하되고, 헌법 시스템의 약화와 훼손, 국가 공동체의 위기라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라고 썼다.
특히 “정치의 과도한 사법화는 사법기관에 대한 소위 코드 인사와 맞물릴 경우 헌법재판이나 사법이 헌법과 법치주의의 실현을 넘어 재판관 개인 또는 그가 대표하는 정치적, 사회적 세력의 특정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거나 추종하고자 하는 숨겨진 정치 행위로 전락할 위험성이나, 명백한 정치적 판단은 아니라 하더라도 헌법정신과 정치적 의도를 적당히 절충·조정하는 타협적 판결에 이르게 할 가능성을 갖는다”라고 코드 인사를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지금 헌재와 관련된 사법의 정치화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념적 지향성이 같은 재판관을 일방적으로 임명한 것과 무관치 않다.
특히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했던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헌재의 권한쟁의심판 결과를 두고 ‘사법의 정치화’라는 지적이 다시 나오고 있다. 헌재는 국민의힘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청구한 권한쟁의심판을 올해 3월 각하 또는 기각했는데 헌재 판단은 4 대 4로 극명하게 갈렸다. ‘우리법연구회’의 창립 멤버인 유 소장을 포함한 진보 성향 재판관과 중도보수 성향 재판관의 판단이 엇갈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이미선 재판관이 결정권을 쥐게 됐다. 그의 결정에 따라 헌재는 입법 과정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권을 침해했다면서도 무효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렇다 보니 여당에선 “헌재가 아니라 정치재판소 같다”는 날선 반응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1월 퇴임하는 유 소장의 후임을 포함해 임기 중 재판관 3명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예정이고 이번 정부에서 헌재 구성원이 모두 교체된다. 헌재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박 전 소장의 지적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 부인과 사별한 뒤 절에서 기거… ‘아우라’ 있는 법조계 원로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는 2009년 서울 서초구 아파트를 불교재단에 기부한 뒤 당시 전세보증금 2억2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을 내고 그 아파트에 그대로 살았다. 여기에는 불자였던 부인의 뜻이 반영됐다고 한다. 자녀가 없는 그는 2019년 부인과 사별한 뒤 서울 종로구의 한 절에서 기거하며 주말에만 서초구 아파트에서 지낸다고 한다. 공수래공수거다. 검사 출신 A 변호사는 “간혹 대구지검장 시절 멤버들과 골프를 치시는데 그때 보니 가방이나 골프화, 골프채 등이 정말 오래됐다”며 “하나 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골프 가방을 하나 사드렸는데 여전히 안 쓰신다. 요즘 나오는 게 아무래도 화려해서 비교적 점잖은 걸 사드렸는데 또 안 쓰시더라”고 전했다.
또 다른 후배 검사는 “내가 검찰 선배 중에 유일하게 ‘아우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박 전 소장이다. 통상 장관이나 총장을 한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얼굴이 달라진다”며 “하지만 박 전 소장은 그 아우라가 과거나 현재나 여전하다. 그분은 한결같고 사리사욕이 없는 분이라서 늘 존경하게 되고,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뜻의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주변에 자주 한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 때 임재선사가 한 말씀이다. 그는 검사 시절은 검사로서, 헌재 재판관과 소장 시절에는 법관으로서의 역할을, 지금은 교수로서 충실히 후학을 양성하며 만족해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법정모독 시리즈의 근간에는 정치와 법조의 영역이 구분되지 않고 수렴하고 있다는 현상이 담겨 있습니다. 최초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고, 국회의원 등 정치인의 주류 집단은 법조인입니다. 로스쿨 도입 이후 법조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정치와 법조의 화학적 결합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문제는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요한 정치적 결정을 사법의 영역으로 미루는 일도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사법이 정치화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박 전 소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를 법정모독 [19화]의 주인공으로 쓰게 된 이유입니다.
글을 쓰기 전에 그를 직접 만나서절에 가보고 싶었지만 책이 나온 뒤 한 번 인터뷰한 것을 빼곤 모두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며 완곡히 거절하셨습니다. 본인을 내세우는 것도 세상에 근황을 전하는 것도 꺼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대부분 법조인들이 현직에서 떠난 뒤 개업해 전관예우를 받아 부를 축적하는 상황과 달리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속세와 거리를 두며 검소하게 한결같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후배 법조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이유겠지요.
다음 [20화]는 여권의 정치인을 다룰 예정입니다. 수식어가 많습니다. 언론인, 소설가, 야권 출신 중도 성향의 중량감 있는 정치인입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