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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트랙터, 지금은 스포츠카… 60년 달려온 람보르기니, 미래를 향한다[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입력 | 2023-05-26 03:00:00

[Luxury Car]
트랙터 사업가 람보르기니, 1963년 스포츠카 공장 설립
‘미우라’ ‘우라코’ ‘쿤타치’ 등 출시… 슈퍼카 시대의 시작 알려
현재 연간 판매량 9000대 넘어… 미래 전략으로 ‘탄소중립’ 선택
하이브리드 모델 내달 공개하고 2028년엔 첫 전기차 출시 예정



회사 설립 60주년을 맞아 본사 건물 앞에 나란히 선 역대 람보르기니 주요 모델들. 람보르기니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의 작은 마을인 산타가타볼로녜세. 특별한 점 없는 시골 마을이지만 전 세계 스포츠카 애호가들에게는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럭셔리 스포츠카로 유명한 람보르기니의 본사와 박물관, 공장이 있기 때문이다. 사업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그곳에 자동차 회사를 세운 것은 60년 전인 1963년 5월 7일의 일이다. 그해 말에 완성된 람보르기니의 공장은 지금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트랙터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람보르기니가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계기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자신이 산 페라리 스포츠카의 문제점을 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에게 전달하려 했지만 뜻밖의 냉대에 분노해 직접 스포츠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모든 성공 신화에는 어느 정도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어서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사이에 실제로 마찰이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페라리에 관한 그의 경험이 또 하나의 특별한 스포츠카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트랙터 사업으로 성공해 60년 전에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의 상징인 투우는 창업자의 취향이 반영됐을 뿐 아니라 근거지인 산타가타볼로녜세의 상징 동물이기도 하다. 설립 초기에 만들어진 일부를 제외하면 람보르기니가 만든 대부분의 모델에 투우나 그와 관련된 이름이 붙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투우가 주는 강인하고 강력한 인상처럼 람보르기니의 시작도 빠르고 저돌적이었다. 페라리에서 명차 250 GTO를 개발했던 조토 비차리니를 비롯해 당대 걸출한 엔지니어들을 영입해 만든 첫 차 350 GTV는 공장 건설과 함께 개발이 진행돼 1963년 10월 토리노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됐다. 시험 제작 개념으로 만들어진 350 GTV는 보완과 개선을 거쳐 이듬해 5월부터 350 GT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설립 60주년 기념 로고와 함께 포즈를 취한 스테판 윙켈만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 회장.

소규모 업체여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람보르기니는 잇따라 새로운 모델을 내놓았다. 1966년에는 엔진을 탑승 공간과 뒤 차축 사이에 가로로 놓은 독특한 설계의 미우라를 출시했다. 이전까지 신생 스포츠카 업체로서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시작했던 람보르기니가 존재감을 크게 키울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미우라였다. 미우라는 천재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하나로 평가받는 마르첼로 간디니의 손에서 나온 아름다운 디자인과 색다른 설계, 강력한 성능이 어우러진 걸작이었다. 평범한 스포츠카의 범주를 뛰어넘는 특별한 차라는 뜻의 ‘슈퍼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도 미우라 덕분이었다.

람보르기니는 1968년 첫 4인승 모델인 이슬레로를, 1970년에는 그보다 조금 더 작은 2+2 모델인 하라마를, 1972년에는 첫 8기통 엔진 모델인 우라코를 내놓으며 제품군 확장에 나섰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런 분위기는 1971년에 콘셉트카로 나와 큰 반향을 일으키고 1974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쿤타치로 바뀌었다. 미우라에서 시작한 람보르기니의 슈퍼카 계보를 잇는 모델로, 쿤타치는 완전히 새로운 설계와 더불어 미래적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쿤타치는 1990년까지 16년 동안 생산됐는데 이는 높은 인기 때문이라기보다 1970년대에 있었던 석유 파동 여파로 회사가 어려웠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이미 1974년에 경영에서 손을 뗐고, 1980년에 스위스의 부호 미므란 형제가 인수해 기사회생하기까지 회사는 사라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미므란 형제가 회사를 이끄는 동안 람보르기니에서는 쿤타치와 엔트리 모델 할파, 브랜드 첫 오프로드 모델인 LM002가 나왔다. 그 뒤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회사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 쿤타치의 후속 모델인 디아블로가 유일한 생산 모델로 회사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됐다.

설립 60주년 기념 행사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람보르기니 트랙 데이.

1998년에 아우디가 람보르기니를 인수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어려움을 겪어온 과거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바탕으로 체질 개선이 시작됐다. 모델 구성도 일신해 디아블로의 뒤를 잇는 V12 엔진 모델인 무르치엘라고와 새로운 입문 모델로 V10 엔진을 얹은 가야르도가 출시됐다. 이후 람보르기니의 성장 속도는 놀랄 만큼 빨라졌다. 2000년에 296대에 불과했던 연간 생산량은 2003년에 1305대로, 2006년에는 2087대로 증가했다. 연구개발 인력을 비롯해 직원 수도 크게 늘었고 2003년에는 자체 디자인 부서인 첸트로 스틸레가 문을 열었다. 2007년에 선보인 레벤톤을 시작으로 특별한 차를 소량 한정 생산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6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람보르기니는 엄청나게 큰 규모로 성장했다. 2022년을 기준으로 직원 수는 2000명이 넘고, 연간 판매량은 9233대에 이르렀다. 판매량의 절반 이상은 2018년에 데뷔한 우루스가 차지하고 있지만 V10 엔진 스포츠카 우라칸과 2022년 말 생산을 중단한 V12 엔진 모델 아벤타도르의 판매도 탄탄하게 성장을 뒷받침했다. 아벤타도르의 혈통을 이어받은 브랜드 이미지 리더 모델인 레부엘토는 설립 6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아 지난 3월에 공개됐다.

전동화 시대를 맞아 V12 엔진 기반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추고 양산되는 람보르기니 레부엘토.

올해 람보르기니는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설립 6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이미 지난 1월 산타가타볼로녜세에서 람보르기니 박물관이 새 단장을 마치고 문을 열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람보르기니 클럽과 소유주, 팬들이 참가하는 모임과 전시회, 축제가 열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5월 셋째 주말에 트랙 데이 행사가 열렸고 6월 23일에는 레부엘토가 우리나라에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를 찾을 레부엘토는 전동화 시대를 맞아 V12 엔진 기반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춘 람보르기니의 첫 양산 모델이다. 또한 ‘디레치오네 코르 타우리’라는 이름의 미래 전략 아래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동화 및 탄소중립화 계획의 첫 결실이기도 하다. 람보르기니는 2024년에는 모든 모델을 하이브리드화하고 2025년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0% 감축하고 2028년에는 첫 순수 전기 모델을 내놓을 예정이다. 60년 동안 이어진 람보르기니 스포츠카의 유전자는 더 깨끗하고 더 강력한 전동화 동력계에 담겨 앞으로도 모는 이들을 흥분케 할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