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 지면에 소화하지 못한 뒷이야기를 동아일보 정치부가 배달합니다. 냉정하고 치열한 외교안보 현안 속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사람 이야기, 알아두면 쏠쏠한 정보들까지. 때론 A컷보다도 눈에 띄는 B컷의 무대로 초대합니다.
퀴즈 하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항공기 가운데 가장 비싼 기종은 무엇일까요. 바로 미국 공군의 B-2 ‘스피릿(Spirit)’ 스텔스 폭격기입니다.
현존 유일의 스텔스 폭격기인 B-2의 대당 가격은 무려 24억 달러에 달합니다. 지금 환율로 계산하면 약 3조 6100억 원이나 됩니다. 대당 1000억~1500억원을 호가하는 F-35A 스텔스 전투기 20~30대를 구매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사고 6개월 만의 ‘조용한 복귀’
B-2 폭격기는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 B-1B 전략폭격기와 함께 미국의 ‘3대 폭격기’로 불립니다. 이들 가운데 B-2와 B-52H 폭격기는 첨단 정밀유도무기 등 재래식 무장은 물론이고 핵무장도 가능합니다. 적의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고 지휘부나 전략 표적에 대한 핵 타격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북한도 B-2의 가공할 위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B-2가 미국의 확장억제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은 이유기도 합니다. 그런데 B-2는 지난해 말 이후 최근까지 하늘을 날지 못하고, 격납고에서 대기 중인 신세였습니다. 지난해 12월 B-2 1대가 비행 중 고장을 일으켜 미주리주 화이트맨 기지에 비상착륙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기체에 화재가 발생하는 등 사건이 대대적으로 알려지자 미 공군과 전략사령부는 B-2 폭격기 20대의 전체 비행을 중단시켰습니다.
1989년부터 비행한 B-2 폭격기는 미국의 대표적인 신년 축제인 ‘로즈 퍼레이드’, ‘로즈 볼 게임’ 행사에도 ‘단골 게스트’로 초청돼 행사장 상공을 비행했는데, 이 사건으로 비행이 금지되면서 B-1B 폭격기가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미 공군은 안전 결함 여부가 확인되는 대로 B-2의 비행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반년 가까이 비행이 불발되면서 B-2의 구조적 결함이 발생한 게 아니냐고 우려도 나왔습니다.
미국 미주리주의 화이트맨 공군 기지에서 22일(현지시간) B-2 스텔스 폭격기가 이륙하고 있다. 출처 미 전략사 트위터
공개된 영상에는 미주리주의 화이트맨 공군 기지 소속 B-2 폭격기가 격납고에서 출격 전 기체 점검을 받은 뒤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미 전략사는 “B-2 폭격기가 계획된 안전 비행 중단과 점검을 거쳐 완벽한 비행 임무로 복귀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영상의 하단에 “우리의 준비 태세는 결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의 장거리 폭격 태세는 항시 대기 중이다”, “우리 대원들은 언제나 핵억지력을 발휘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는 자막까지 달았습니다.
사고 이후 거의 반년 만에 복귀한 B-2가 미국 확장억제력의 ‘주전선수’로 활동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점을 역설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하지만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사고 당시와 비교해서 공식 브리핑이나 성명도 없이 ‘조용한 귀환’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일각에선 B-2의 사고 이력이 재조명될 것을 의식하였기 때문으로 분석합니다. B-2는 2021년 9월에도 유압 시스템 이상으로 랜딩기어가 부서져 비상 착륙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기체가 멈출 때까지 왼쪽 날개가 약 1.6㎞가량 땅에 질질 끌리면서 1000만 달러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복귀 사실을 떠들썩하게 발표해봐야 과거 사고 사례가 다시 거론돼 득보다 실이 크다고 미 공군이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B-2 스텔스 폭격기가 22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 기지의 격납고에서 이륙을 위해 나오고 있다. 출처 미 전략사 트위터
●SSBN 이어 한반도 전개 관측
B-2 폭격기가 복귀하면서 향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맞서 한반도에도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화성-18형 고체연료 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북한의 고강도 도발 때마다 미 본토나 괌 기지에서 B-52H 폭격기와 B-1B 폭격기를 한반도로 번갈아 보내어 한국 공군과 연합훈련을 실시했지요. 미 전략자산의 적시적 전개로 대북 무력시위를 벌인 것입니다. 이어 한미 정상은 4월 말 대북 확장억제 강화를 주내용으로 한 ‘워싱턴 선언’을 발표하면서 42년 만에 전략핵잠수함(SSBN)의 한국 기항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국내 기항이 예고된 전략핵잠수함(SSBN)에 이어 B-2 폭격기가 확장억제 실효성 강화의 다음 주자로 등판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 기지에서 정비 요원들이 B-2 스텔스 폭격기의 이륙 전 기체 점검을 하고 있다. 출처 미 전략사 트위터
당시 경기 평택의 오산 기지 상공에서 거대한 가오리 형태의 B-2가 저공비행하는 사진이 국내 주요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B-2 잇는 최강 스텔스 폭격기가 온다
B-2가 현존 유일의 스텔스폭격기라고는 하지만 ‘연식’이 오래된 만큼 미국은 후계기종을 전력화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지난해 12월 첫 공개한 ‘B-21 레이더(Raider)’가 그 주인공입니다. B-21은 현존하는 스텔스 기술이 총결집된 첨단 폭격기로 B-2보다 2, 3세대는 앞선 것으로 평가됩니다. 극초음속 핵탄두 미사일과 전술핵무기를 탑재해 은밀히 적진 핵심부를 폭격할 수 있습니다. B-21의 별칭 ‘레이더’는 1942년 4월 18일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을 폭격한 미국 ‘둘리틀 특공대(Doolittle Raiders)’에서 따왔습니다.
지난해 12월 2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팜데일의 노스럽 그러먼 공장 격납고에서 공개된 차세대 스텔스 폭격기 B-21 레이더. 출처 미 국방부 홈페이지
오스틴 장관은 “이것은 단지 비행기가 아니다. 지난 50년 스텔스 기술의 집약체”라며 “미국 전력의 지속적인 우위를 보여주는 증거다. 다른 어떤 폭격기도 필적할 수 없다”고 강조했지요. 미 언론들도 B-21의 뛰어난 성능을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무엇보다 적국의 대공 감시망을 무력화할 강력한 스텔스 능력을 갖췄다는 것입니다. 폭 52.4m의 B-2가 레이더에 새 정도의 크기로 탐지된다면 B-21은 골프공 크기여서 들키지 않고 적진에 날아가 핵무기를 투하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또 B-21은 무인 조종이 가능하고 온라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언제든 빠르게 신무기를 탑재할 수 있고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 통합 기술도 적용돼 작전 중 새로 탐지한 목표물에 즉각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개발사인 노스럽그러먼은 “세계 최초의 6세대 항공기이자 디지털 폭격기”라고 밝혔습니다.
B-21의 대당 가격은 약 6억9000만∼7억 달러로 B-2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미 공군은 B-21 을 100대 이상 도입 운용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B-21 확보에) 30년에 걸쳐 최소 2030억 달러(약 267조 원)가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지난해 12월 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팜데일 노스럽 그러먼 공장 격납고에서 미국의 차세대 전략폭격기 B-21 레이더가 처음 공개됐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오른쪽)이 축하 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 미 국방부 홈페이지
AP통신도 “B-21은 중국과의 충돌 우려가 커지는 데 대해 미 국방부가 내놓은 대답”이라고 평가했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B-21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응하는 미국의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특히 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B-21이) 북한의 방공 체계를 무력화할 무기”라고도 했습니다. 올해 첫 비행에 나서는 B-21이 전력화 과정을 거쳐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맞서 한반도 상공에 모습을 드러낼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예상됩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