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 소장이 14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인근 도로에서 지인들과 사이클을 타고 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주한 미국대사로 일할 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한국의 진면목을 알게 됐다”는 그는 지금도 한국에 오면 지인들과 자전거를 탄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양종구 기자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 소장(70)은 “자전거를 타며 한국의 진면목을 알게 됐다”고 했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는 5세 때부터 뉴멕시코와 애리조나에서 오빠, 남동생과 자전거를 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홍콩에서 공부할 때, 외교관이 된 뒤에는 방문한 나라를 자전거로 구석구석 돌아보며 문화를 직접 느끼고 배웠다. 중국, 유고슬라비아, 한국, 포르투갈, 인도 등을 거치며 외교관으로 일한 그는 “외교관은 그 나라를 잘 알아야 하는데 자전거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평소 테니스도 즐기는 그에게 자전거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자 건강 지킴이였다.
“19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충청남도에 왔을 때도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죠. 시골길이지만 자전거는 저를 어디든 데려다줬어요.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죠.”
1980년대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팀장, 부산 미국영사관 선임영사로 한국에 왔던 그는 대사로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자전거 투어를 많이 했다. 특히 4대강 자전거길이 만들어질 때인 2010년 ‘심은경(스티븐스 소장의 한국 이름) 대사와 달리는 자전거길 600리’ 행사를 주관하는 등 국내 곳곳을 자전거로 누볐다. 그는 “한국의 강변 자전거도로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시설”이라고 했다. 스티븐스 소장은 “큰길과 자전거길도 달렸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면도로를 달리며 한국의 곳곳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봄이면 달래와 냉이, 쑥 등 나물도 볼 수 있고 개나리 진달래 등 꽃도 아름답다. 뭐든 주는 시골 사람들의 정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강원도 오대산 정상에 오르는 등 자전거로 산을 달리며 한국의 자연도 즐겼다.
“낙동강 변을 달릴 때는 6·25전쟁 때 한국과 유엔군이 북한을 치열하게 막았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현장에서 전쟁의 처참함을 다시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재의 낙동강 구간은 매우 아름답고 자연 친화적이었습니다. 먼 옛날 신라와 가야의 싸움터인 가야진을 지날 때도 한국 문화와 역사를 느꼈습니다.”
2017년 스티븐스 소장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미국대사관이 기획한 자전거국토종주단의 일원으로 비무장지대(DMZ)를 달렸다. “강원 철원에 아직 남아 있는 북한 노동당 건물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연을 맺고 있는 그는 “약 50년간 한국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다 지켜봤다. 한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국민은 성실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정도 많다. 교육열도 대단하다. 창의적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에 충분했다”고 회상했다.
미 워싱턴에 살고 있는 스티븐스 소장은 1년에 한두 번 한국을 방문하는데 올 때마다 한국 지인들과 라이딩을 즐긴다. 14일에도 동아사이클대회 챔피언(1982, 1984년) 출신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 마스터스 철인3종 강자 이명숙 씨 등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팔당댐 지나서까지 왕복 58km를 함께 달렸다. 이번엔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지만 가수 김창완 씨와 대한자전거연맹 회장을 지낸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도 라이딩 친구다.
스티븐스 소장은 자전거 덕에 아직 건강하다고 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탓에 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 워싱턴의 모든 도로를 자전거 타고 달렸다. 워싱턴엔 미국 50개 주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 자전거가 있어 다 돌아봤다. 자전거는 교통수단이자 건강의 도구”라고 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