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당직자가 5월 17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코인 의혹 속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뉴스1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최근 간만에 다시 ‘핫’합니다. ‘코인 천재’ 김남국 의원이 연이어 윤리특위에 제소되면서죠. 여야 의원 6명씩 총 12명으로 구성되는 윤리특위는,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안이 올라오면 ①공개회의에서의 경고 또는 ②사과 ③30일 이내의 출석 정지(그 기간 수당 절반 삭감) ④의원직 제명 등의 징계 수위를 결정합니다. 제명 안건은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 시 처리됩니다.
하지만 중도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 탓에 윤리특위는 매 국회 때마다 유명무실한 식물기구에 그쳤습니다. 이번에도 김 의원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21대 국회 하반기 윤리특위가 지난해 7월 원 구성 협상 이후 반년이 지난 올해 1월에야 ‘지각 구성’ 됐다는 점, 그리고 21대 국회 들어 심사를 대기 중인 국회의원 징계안만 무려 38건이란 점이 새삼 재조명되고 있죠.
국회법상 징계안은 숙려기간 20일이 지난 뒤 처음 열리는 특위에 자동 상정돼야 하지만, 여야 간 합의가 없을 땐 예외로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습니다. 실제 38건(민주당 19건, 국민의힘 14건, 무소속 5건) 중 소위에 상정된 것은 4건(박덕흠 성일종 윤미향 의원, 이상직 전 의원) 뿐이며, 이마저도 모두 계류 중이라 처리된 징계안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자기들끼리 감싸 안는 지독한 온정주의네요.
어차피 징계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 같지만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훑어보시죠. 논란은 또 다른 논란으로 덮는 여의도에선 다들 금방 잊어버리니까요.
막말
“‘고민정’이란 사람의 바닥을 다시금 확인했다. (중략) 조선시대 후궁이 왕자를 낳았어도 이런 대우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 2021년 1월 26일)
조수진 의원은 페이스북에 민주당 고민정 의원의 총선 승리를 위해 여당이 총동원됐다고 주장하며 고 의원을 ‘조선시대 후궁’에 빗댔다가 ‘여성 비하’ ‘성희롱성 막말’이란 비판 속에 윤리특위에 제소됐습니다. 거센 후폭풍에 조 의원은 “애초 취지와 달리 논란이 돼 유감을 표한다”라며 글을 삭제했습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아래)이 2022년 4월 30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하며 민주당 소속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위)이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처리에 협조한 것을 비판하는 모습. 배 의원은 항의의 뜻으로 이날 박 의장에 대한 인사를 거부했다. 동아일보 DB
“그 앙증맞은 몸으로 국민의힘 의원들 위를 밟고 지나가고 구둣발로 여성들을 걷어차며 국회의장석으로 올라갔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2022년 4월 30일)
배현진 의원은 민주당 소속인 박병석 당시 국회의장이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도왔다며 이같이 말했다가 ‘차별적 발언’, ‘인격모독’이란 비판 속 제소됐습니다. 박 의원의 작은 체구를 비하한 발언이란 지적이죠. 이에 국민의힘은 “민주당 김승원 의원이 박 의장에게 ‘GSGG’라고 한 건 왜 징계 안 하나”라고 맞받았습니다. 김 의원이 앞서 언론중재법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무산되자 페이스북에 ‘박병석 GSGG’라고 썼던 것부터 징계하란 겁니다. GSGG는 욕설의 앞 글자 이니셜로 추정됩니다. 박 의원님이 양쪽에서 고생이 많으셨네요.
“정의당에 있다가, 민주당 정부에 가 있다가, 윤석열 정부 밑에서 일하고, 무슨 뻐꾸기입니까. 나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어요.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 뭣 하러 그런 짓을 합니까.”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 2022년 10월 7일)
권성동 의원은 지난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피감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재단의 김제남 이사장이 19대 국회에서 정의당 의원을 지내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이력을 문제 삼으며 이같이 말했다가 ‘막말’로 제소됐습니다. 권 의원은 “민주당의 ‘선택적 환청’이다. 나였다면 혀 깨물고 죽었을 것이란 취지”라고 반박했다가 또 한 번 전 국민 대상 듣기 평가하느냐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21대 국회 들어 3차례 윤리특위에 제소됐다. 사진은 장 의원이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수사 진행 상황을 지적하는 모습. 동아일보 DB
“법사위원들은 정말 힘들겠다. 저런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어떻게 듣고 있지.”(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 2020년 9월 23일)
“김건희 여사의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 논란이 되고 있다.” (2022년 11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에 도착해 화동 볼에 입을 맞췄다. 미국에서는 아이가 동의하지 않은 경우 입술이나 신체 다른 부분에 키스하는 것은 성적 학대 행위로 간주된다.” (2023년 4월 28일)
장경태 의원은 21대 국회 들어 세 차례나 윤리특위에 제소됐습니다. 21대 국회 개원 직후 한 유튜브 방송에서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의 발언을 ‘개소리’라고 했다가 ‘국회 모욕’으로 제소됐고, 최고위원이 된 뒤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 부부를 향한 논란성 발언들로 6개월 새 두 번이나 윤리특위에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허위 사실 유포 및 각종 논란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정면)이 2021년 10월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날 자신이 제시한 ‘돈다발 사진자료’를 비판하는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을 바라보고 있다. 김 의원은 전날 경기도 국감에서 해당 사진을 제시하며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대표가 조직폭력배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DB
“직접 이재명 지사에게 돈을 전달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돈뭉치 사진을 제시하겠습니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 2021년 10월 18일)
김 의원은 경기도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조폭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돈다발 사진’을 공개했다가 제대로 망신당했죠. 민주당은 김 의원을 윤리특위에 제소하면서 “김 의원이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활용해 정치공작을 했다”라고 주장했고, 이 대표도 당시 몹시 분했는지 대선 후보가 된 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면책특권 폐기’를 공약으로도 제시했습니다. 정작 자신이 국회의원이 된 뒤로는 감감무소식이네요.
국민의힘 태영호(왼쪽)의원과 장동혁 원내대변인이 지난해 11월 16일 국회 의안과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의겸·장경태 의원 징계안을 제출하고 있다. 태 의원도 올해 2월 제주 4·3 사건 관련 망언으로 윤리특위에 제소됐다. 뉴시스
“지난 7월 19∼20일 술자리를 간 기억이 있나. 그 자리에 김앤장 변호사 30명가량 있었고 윤석열 대통령도 합류했다.”(민주당 김의겸 의원, 2022년 10월 24일)
“(페르난데즈 EU 대사가) 윤석열 정부와 북한과의 대화채널이 없어서 대응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이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긴장이 고조돼도 교류를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2022년 11월 8일)
허위 사실 유포 분야에선 김의겸 의원이 단연 압도적이었죠. 김 의원은 법사위 국감장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주장했다가 윤리특위에 제소됐고, 한 장관으로부터는 10억 원짜리 민사소송도 당했습니다. 당시 김 의원이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탓에 설화(舌禍)의 파장은 더 컸죠. 페르난데즈 EU 대사는 자신과 이재명 대표와의 비공개 면담 이후 나온 김 의원의 대변인 브리핑 내용을 두고 “내용이 반대로 오용되고 왜곡된 데에 대해 유감”이라고 강력히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참 다사다난한 21대 국회였습니다
.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아들 50억 원 퇴직금 의혹·2021년 9월 30일) △민주당 민형배 의원(‘위장 탈당’으로 법사위 안건조정위 무력화·2022년 5월 6일) △민주당 출신 박완주 의원(보좌관 성추행 혐의·2022년 5월 17일) △민주당 이재명 의원(방산업체 주식 보유로 이해충돌 방지 의무 위반·2022년 10월 14일) △민주당 신현영 의원(이태원 참사 당시 닥터카 탑승·2022년 12월 23일)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장에서 ‘청담동 술자리’ 발언·2023년 1월 26일)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제주 4·3 사건은 김일성 만행’ 발언·2023년 2월 15일) 등 이미 20일 숙려 기간을 지나도 한참 지난 징계안이 수두룩합니다.
17일 국회에서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 의혹과 관련한 징계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윤리특별위원회가 열렸다. 민주당 소속 변재일 위원장(맨 왼쪽)이 회의를 시작하는 모습. 동아일보 DB
김남국 의원 건도 이달 28일로 숙려기간이 지났습니다. 여야는 30일 오전 윤리특위 전체회의를 열어 김 의원 징계 건을 특위 내 윤리심사자문위원회(자문위)에 회부하기로 했습니다. 국회법상 윤리특위는 심사하기 전 자문위의 의견을 듣고, 존중해야 합니다. 자문위는 한 달 내로 의견 제출 기간을 정해야 하며, 필요시 연장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 절차를 모두 밟을 경우 김 의원에 대한 징계 결정은 늦으면 8월로 미뤄집니다. 국민의힘은 너무 오래 걸리니 여야 지도부가 합의해 김 의원 제명안을 본회의에 직접 상정하자는 입장이고, 민주당은 절차는 제대로 밟아야 한다고 반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또 이러다 제대로 논의도 안 된 채 묻히는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
국회의원들이 내뱉는 폭언과 모욕성 발언은 일반 회사였다면 ‘직장 내 괴롭힘’, ‘갑질’ 등으로 충분히 징계받을 수준입니다. 직장 동료가 나를 ‘후궁’에 빗댄다거나, 상사가 ‘차라리 혀 깨물고 죽어라’라고 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지 않나요. 일반 직장인들은 일터에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모두 조심하죠. 반면 국회의원들은 웬만한 잘못을 해도 처벌받지 않고 자리도 보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저렇게 더 막 나가는 겁니다.
윤리특위는 1991년 국회의원들의 윤리 의식을 제고하기 위해 설치됐습니다.
“코인 투자하는 국민이 600만 명이 넘는데 코인 투자가 비도덕적이냐”(양이원영 의원) “검찰이 사냥감을 정한 후 게임하듯 놀이하듯 수사권을 남용하고 특정 언론과 협잡해 프레임을 짜서 한 사람을 공격한 것”(황운하 의원) “탈당은 정치적 최고 수준의 결단”(장경태 의원) “(김남국은) 거짓말은 안 할 친구”(안민석 의원) 등 여전히 김 의원을 감싸고도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윤리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윤리특위가 이번엔 꼭 제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