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방국 벨라루스에 전술핵 이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핵무기의 해외 배치는 32년 만이며 올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를 예고한 지 2개월 여 만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코앞까지 핵무기가 들어서면서 핵위협 수위는 한층 더 높아졌다.
25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이날 “(벨라루스로) 핵무기 이전이 시작됐다”며 푸틴 대통령이 관련 법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는 물론 나토 회원국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매튜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양국의 핵무기 배치) 합의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화학이나 핵무기를 사용하면 심각한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경고했다. 다만 “우리 전략 태세를 바꿀만한 이유나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준비 징후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벨라루스로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 러시아의 전술핵이 옮겨지고 있다는 소식에 유럽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당장 이 전술핵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지만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을 약속한 유럽 국가들로서는 큰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을 방문 중인 푸틴 대통령 최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6일 기자들에게 “현 상황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 정권에 전투기는 물론 심지어 핵무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며 “그럴(핵무기를 제공할) 경우 이는 그들(우크라이나)에게로 핵탄두를 실은 (러시아) 미사일이 날아들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핵 선제 타격을 경고했다.
러시아 보유 전체 핵무기 6300여 기 가운데 전술핵은 약 2000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전술핵을 우크라이나에 사용한다면 이스칸데르 같은 단거리미사일로 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고조되는 핵위협 속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를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25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접경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 모로좁스크가 우크라이나군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사실이라면 서방이 지원한 장거리미사일을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무기는 러시아 본토 공격용이 아니라고 거듭 주장했다. 최근 반(反)푸틴 러시아 민병대의 러시아 서부 벨고로드 공격에 미국산 장갑차가 사용됐다는 주장이 나오자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이날 “미국이 공급한 군용 장비를 러시아 본토 공격에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해왔다”며 “이건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