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영상 캡처
“‘쾅’ 소리와 함께 비행기 출입문이 갑자기 열리자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테러가 난 줄 알았어요.”
26일 제주발 대구행 아시아나 항공기에 탑승했던 김모 씨(44)는 지상 250m 상공에서 비행기 출입문이 갑자기 열린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 씨는 “출입문 옆 승객들이 고개를 떨구고 울거나 혼절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6일 오전 11시 40분경 제주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OZ8124편 항공기는 착륙 직전인 낮 12시 35분경 지상 250m 상공에서 출입문이 갑자기 열렸다. 출입구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이모 씨(33)가 고의로 연 것이었다. 비행기는 출입문이 열린 채 낮 12시 37분경 대구공항 활주로에 착륙했고, 이어 12시 47분경 완전히 멈췄다. 승객들은 약 12분 동안 공포에 떨어야 했다.
대구경찰청은 출입문을 연 이 씨를 착륙 직후 체포해 범행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제주에서 혼자 탑승한 이 씨는 체포 후 경찰에 “비상구 고리를 당겼다”며 범행을 인정했으나 동기 등에 대해선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술을 마신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한 뒤 항공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매일신문 제공
“영화에서처럼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 같아 너무 무서웠어요. 땅에 내려왔는데도 호흡이 잘 안돼 친구들과 주저앉고 울었어요.”
대구행 아시아나 비행기에 탑승했던 강모 군(13)은 26일 아찔했던 사고 순간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강 군은 27일 울산에서 시작되는 제52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참석을 위해 이날 비행기를 탔다.
● “왜 도착 안 하느냐” 말하며 출입문 열어
탑승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사고가 발생한 건 착륙 약 2분 전이었다. 일부 목격자는 이 씨가 갑자기 “시간이 다 됐는데 왜 도착을 안 하느냐”며 출입문을 열었다고 전했다.이후 기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바람이 기내로 거세게 들이치면서 승객들의 몸이 심하게 흔들렸고, 쾅 소리와 함께 먼지가 발생하며 기내 공기가 뿌옇게 변했다.
승객 A 씨(46)는 “문이 열린 직후 승무원이 ‘안전벨트 하세요’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어 한 남성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려는 듯한 행동을 하자 승무원이 ‘승객 분들 도와 달라’며 주변 남성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제주체육연맹 소속 지도자 황윤미 씨(43)도 “승무원들이 뛰어내리려는 남성을 잡아끌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승객들은 비행기에서 내린 후에도 쉽게 안정을 찾지 못했다. 헛구역질 하며 눈물을 보인 승객도 다수였다. 황 씨는 “비행기 추락과 비슷한 상황을 겪어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크게 남을 것 같다. 일부는 제주로 돌아갈 때 배를 타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 대기표로 비행기 탑승한 피의자
비상문이 개방된 채 대구공항에 착륙한 항공기가 계류장에 대기하고 있다. 2023.5.26. 뉴스1
피의자 이 씨는 비상구 고리를 잡아당겨 출입문을 연 것으로 조사됐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이 씨 자리 바로 맞은편에 승무원 좌석이 없어 이 씨를 제지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비행기의 비상 출입문은 통상 1만 피트(3000m) 이상 상공에선 기내외 압력차로 사람의 힘으로는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상에 근접하면서 기압차가 줄어 문이 열린 것이다. 비상 시 탈출이 원활해야 한다는 이유로 출입구에 따로 잠금장치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씨는 출입구 옆 자리를 항공사에 직접 요구하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비행편은 만석이었는데 막판에 빈자리가 생겨 대기승객이었던 이 씨가 해당 자리에 배정된 것이다. 항공계 관계자는 “범행을 노리고 고의로 해당 자리를 노린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은 제주도 거주자인 이 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범행 동기 등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조사할 예정이다.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엄중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대구=구민기 기자 koo@donga.com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