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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아우슈비츠에서 마주한 타인의 고통

입력 | 2023-05-27 03:00:00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양재화 지음/296쪽·1만6000원·어떤책




‘죽음공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일컫는 표현으로, 시체를 생산하는 곳이라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출판사 편집자인 저자는 2005년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박물관을 여행차 찾았다. 그곳엔 나치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재현하는 디오라마(모형)도,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극적인 영상도 없었다.

고요하기 그지없는 전시실엔 대신 가스실에서 학살용으로 쓰였던 독가스 치클론B의 빈 깡통, 수용자들의 실제 머리카락, 여행가방, 옷가지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1945년 1월 러시아군이 수용소를 해방할 당시 발견된 머리카락 2만 t, 여행가방 3800개, 신발 11만 짝 중 일부다. 당시 여성의 시체에서 잘라 낸 머리카락은 독일 직물회사에 팔린 뒤 침대 매트리스나 천 등을 짜는 데 쓰였다. 화장터에서 나온 재는 습지대를 메우는 시멘트 대신으로 쓰였다. 나치는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했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만 1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충격을 받은 저자는 이 여행 뒤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이후 12년 동안 세계의 제노사이드(대량 학살) 현장을 찾는 ‘다크투어’를 다녔고, 관련 자료를 공부하며 6년간 집필에 매달렸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보스니아 내전), 캄보디아(킬링필드), 칠레(피노체트의 학살), 아르메니아(아르메니안 대학살), 제주(4·3사건)에서 보고 느낀 바를 담담히 담았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전쟁 등으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저자는 아픈 기억이 담긴 곳을 찾는 것은 이 같은 불행이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제노사이드 현장을 둘러보는 체험은 우리에게 타인의 불행과 재앙이 그리 멀리 있지 않으며, 그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것은 우연과 운뿐이라는 차가운 진실을 일깨운다. 나는 다크투어가 우리 사회에 부족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