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무한한 생성능력 가졌지만, 가치 평가하고 표현하진 못해 미래 교육, 단순한 지식 전달 아닌 교과서 너머 미지의 영역 발굴해야 ◇AI 빅뱅/김재인 지음/388쪽·2만 원·동아시아
미국 럿거스대 예술과인공지능연구실이 만든 알고리즘 ‘AICAN’이 창작한 그림 6점이다. 15∼20세기 서양미술 작품 약 8만 개를 학습한 이 알고리즘은 기존 예술작품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스타일로 창작하도록 설계됐다. ‘AI 빅뱅’의 저자는 “AICAN이 창작한 그림의 예술성을 평가하는 건 결국 인간”이라며 “비평이야말로 예술에 있어 인간의 마지막 보루로 남을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동아시아 제공
황순원의 단편소설 ‘독 짓는 늙은이’에 등장하는 노인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독은 모조리 깨버린다. 최고의 독을 만들려는 장인의 고집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자신이 생성한 그림을 이 노인처럼 파괴할 수 있을까.
미국 럿거스대 예술과인공지능연구실에서 2019년 발표한 알고리즘 ‘AICAN’은 한꺼번에 수도 없이 많은 그림을 만들 수 있다. 15∼20세기 미술사에 등장했던 화가 1119명이 그린 8만1229점을 학습해 새로운 그림을 내놓는다. 이전 작품들과 유사하면서도 기존 스타일과는 가능한 한 다른 그림을 만들도록 설계됐다.
모방 속에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과정마저 인간 예술가와 다르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AICAN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자기 작품에 대한 송곳 같은 평가다. 이 알고리즘은 ‘독 짓는 늙은이’처럼 스스로 만든 작품을 파괴할 수도, “이게 내 최고작”이라고 선언할 수도 없다.
예술의 완결성을 판단할 수 없는 AI가 과연 예술가인가, 그런 AI가 무작위로 만든 그림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는가. 저자는 “가치를 평가하고 표현하는 일이 예술과 문학의 원천에 있다면, AI는 아주 세련되고 훌륭한 도구 그 이상이 될 수 없다”고 분석한다. 비평이야말로 예술창작에 있어 인간의 마지막 보루로 남을지 모른다는 전망도 담았다.
저자는 교육, 학술 등 일상의 여러 면에서 코앞으로 다가온 AI 시대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AI와의 공생 방법을 찾는다. AI를 잘만 활용하면 인간은 최고의 조력자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독일 기업 ‘딥엘(DeepL)’이 내놓은 AI 번역 서비스에 두꺼운 과학책 문서 파일을 올리면 순식간에 책 한 권이 번역된다. AI가 번역에 걸리는 시간을 단숨에 줄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AI 번역 서비스 덕분에 앞으로는 전 세계 동시 출간도 많이 시도될 것”이라며 “AI가 도움이 되는 측면은 ‘생성’ 자체보다 ‘생산성’에서 더 찾아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가 인간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위기는 AI에서 오는 게 아니다. 위기의 본질은 혁신하지 못하는 타성과 고착에 있다”는 입장이다. 이 지적은 국내 전문가 집단과 교육자들을 겨냥한다. 기존에 전수돼온 지식을 정리하는 것은 AI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어서 머지않아 AI로 대체될지 모른다. 미래의 대학과 교실은 교과서에 정립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발굴하고 창작하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인 AI를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 다시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고민할 자유’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