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증오로 변모하고 증오는 고통 낳아 식민지 아픔 뒤로하고 선진국으로 日 대해야 외교무대서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 갖춰야 한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증오는 마음의 독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법정 스님에게 들은 말이라고 한다. 한 전 총리는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으로 1979년 3월에 연행되어 2년 반 동안 옥고를 치렀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뒤 그는 그를 취조하고 고문했던 인사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 험한 시절,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없던 유신 말기에 빨갱이로 체포된 여성이 겪었을 고초를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증오는 그의 정신을 피폐하게 했고 몸의 건강을 해쳤다. 그는 친분이 있던 법정 스님을 찾아 고통을 토로했는데 그때 스님으로부터 “증오는 마음의 독이다”라는 말을 듣고, 그 스스로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서서히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가 뇌물수수 혐의로 다시 옥고를 치르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 일로 그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지만, 그가 총리 후보자로 청문회에서 보여준 태도를 나는 지금도 좋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를 사상 검증하려는 이에게도, 그를 위해 독재정권의 만행을 고발하는 이에게도 “저는 한이 맺히지 않았다”거나 “지난날의 어둠보다는 새로움을 보이기 원한다”는 말로 의연함을 보였다. 그가 그에게 날을 세우는 야당 의원들에게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건넬 수 있었던 것은, 그 바탕에 신앙이나 법정 스님의 조언도 있었겠지만, 달라진 그의 위상 덕도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나는 공교육을 통해 증오를 배웠다. 처음에는 그 대상이 빨갱이였고 그다음에는 ‘쪽발이’였다.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생각한다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북한은 우리가 ‘마지막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야 하는’ 원수였다. 그런데 희한하게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그 증오심이 무디어졌다. 나는 그 이면에 한국의 발전과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 간의 확연한 격차를 확인하면서 북한은 증오가 아니라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
최근 젊은층을 대상으로 다시 북한에 대한 증오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가난한 나라 북한이 핵을 보유한 위험한 나라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공이 중국이 되면서 남북 분단의 원흉이 우리의 이웃이 되었다. 그러나 사드 보복 등을 경험하면서 중국이 언제라도 우리를 해칠 수 있는 거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중국을 향한 혐오가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두려움은 분노를, 분노는 증오를, 증오는 고통을 낳는다.” 제다이의 위대한 스승인 요다가 어린 아나킨에게 한 말이다. 영화 스타워즈 제작진의 통찰력이 빛나는 이 대사 그대로 두려움은 언제라도 증오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증오는 고통을 낳는다. 그래서 우주의 평화와 질서를 지키는 제다이의 스승들은 악을 경계하고 악과 맞서 싸우되 두려움과 증오를 품지 말라고 가르친다.
증오는 어두운 힘(Dark Force)이 제다이를 타락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아나킨은 증오를 억제하지 못해 악마가 되었고, 그의 아들은 증오를 극복함으로써 아버지와 우주를 구한다.
상대가 북한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혹시나 모를 위협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늦추지 말자. 그러나 두려움이나 증오가 아니라 국제 사회의 존재감 있는 일원으로 당당하고 의연하게 그들을 대하자. 지금의 한국은 여러 층에 걸친 혐오와 대립으로 고통받고 있다. 증오를 내려놓고 우리 사회에 쌓인 독을 걷어내자.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