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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 미사일 공방전이 한국에 주는 교훈

입력 | 2023-05-27 11:20:00

한국형 MD로는 수천 발 ‘섞어 쏘는’ 北 미사일 막기 어려워




미국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 [뉴시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그 어느 때보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5월 20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동남부 요충지 바흐무트를 점령했다고 선언한 후 러시아는 자축 분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러시아 지도부의 심경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올해 러시아군 사상자 규모가 그 전 10개월 동안을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당초 러시아는 바흐무트라는 전략적 거점을 장악한 뒤 여세를 몰아 슬라뱐스크 등 다른 주요 도시로 진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바흐무트에서 예비대 병력을 사실상 모두 상실한 탓에 추가 진격은 고사하고 곧 있을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을 막을 여력조차 없는 상황이 됐다.





미사일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가장 화나게 하는 부분은 이번 전쟁으로 하나 둘 드러나고 있는 러시아 무기체제의 민낯일 것이다. 5월 초 우크라이나가 구형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을 이용해 러시아가 자랑하는 최강 전략 무기 ‘킨잘’을 요격하는 데 성공하면서 푸틴 대통령은 체면을 구겼다. 킨잘은 푸틴 대통령이 2018년 3월 국정연설에서 절반 가까운 시간을 할애해 자랑한 ‘게임 체인저’다. 결과적으로 미국제 패트리엇과 실전 대결에서 패한 꼴이 됐다.

우크라이나가 이번 킨잘 요격에 사용한 패트리엇은 PAC-3 시스템이고, 요격탄은 CRI 모델이다. CRI는 최신 요격탄 MSE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됐지만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춘 염가 버전이다. MSE에 비해 사거리와 요격 고도 모두 절반 수준에 불과하나, 저렴한 가격이 매력이다. 한국군도 PAC-3에서 주력으로 운용하고 있는 모델이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자랑한 러시아의 최신예 게임 체인저가 미국의 염가형 요격무기에 격추된 것이다.

5월 16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상공에서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이 격추됐다. [뉴시스]

킨잘 미사일은 카탈로그 데이터만 놓고 보면 대부분의 방공체제로는 요격이 거의 불가능한 무적의 무기다. 보통 ‘극초음속 무기’로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공중발사탄도미사일(ALBM)’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비행 특성은 극초음속 활공보다 이스칸데르 같은 미사일의 변칙 탄도에 가깝다. 종말 단계에서 1~2차례 솟구치며 비행 궤도를 바꾸는 데다, 마하(음속) 10에 달하는 고속이라서 방어하는 입장에선 대단히 까다로운 표적이다. 러시아는 킨잘을 미국 및 유럽 미사일방어(MD)체제를 격파하기 위해 개발했다. 미국이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지상형 MD 시스템 ‘이지스 어쇼어’를 건설하자 그것에 대응하고자 내놓은 무기다. 이지스 어쇼어에 탑재되는 SM-3 미사일의 사거리는 700~900㎞다. SM-3로는 요격이 불가능한 고도와 거리에서 비행하는 탄도미사일을 쏴 이지스 어쇼어를 제압하겠다는 계산이 담겼다. 러시아가 ‘MD 킬러’라고 자화자찬한 미사일이 미국 MD 시스템에 왜 그리 쉽게 격추됐을까.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PAC-3를 너무 만만한 상대로 여겼다. 러시아는 킨잘 성능을 과신한 나머지 적은 수량으로도 우크라이나 패트리엇 포대 하나쯤은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러시아는 5월 4일 키이우 북쪽에 배치된 패트리엇 포대를 향해 킨잘 2발을 발사했지만 모두 패트리엇에 요격됐다. 5월 16일에는 킨발 6발을 쐈지만 마찬가지로 모두 요격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러시아가 발사한 킨잘 수량이 이처럼 적은 데는 무기 부족도 한몫했을 것이다.





종말 단계 변칙 기동하면 요격 어려워

러시아 전투기에 탑재된 킨잘 미사일. [뉴시스]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PAC-3의 CRI 요격탄 모델은 사거리가 최대 20㎞ 수준에 불과하다. 킨잘 미사일이 6초면 접근할 수 있는 거리다. PAC-3가 킨잘을 상대로 2회 이상 교전 기회를 확보하기 어려운 셈이다. 요격 당시 영상을 보면 우크라이나군은 킨잘을 요격하려고 여러 발의 CRI를 마구 쏘아댄다. 가령 5월 4일 단 2발의 킨잘을 요격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측은 CRI 36발을 발사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요격 확률을 요격탄 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사실 이 같은 방법은 사거리 및 요격 고도가 짧은 종말 단계 하층방어 시스템으로 변칙적인 탄도를 그리는 미사일을 막아내는 사실상 유일한 대응책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킨잘이나 이스칸데르 같은 미사일은 종말 단계에서 ‘정직한 포물선’을 그리면서 하강하지 않고 1~2번 솟구쳤다가 떨어진다. 어디로 떨어질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통상 패트리엇 같은 요격미사일은 초고속으로 낙하하는 표적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 위치를 계산해 발사된다. 표적이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 근처에서 요격미사일은 자체 탐색 레이더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다시 한 번 파악한다. 종말 단계에서 여러 번 코스를 바꾸는 미사일은 위치 재탐색을 통한 요격이 까다롭다. 우크라이나가 단 2발의 킨잘을 요격하는 데 CRI를 36발이나 쏜 것도 이 때문이다. 위치 추정이 어렵기에 일단 예상되는 후보 좌표마다 전부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이 같은 난점에도 우크라이나가 5월 4일과 16일 두 차례 미사일방어에 성공한 이유는 러시아가 쏜 미사일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킨잘 6발 정도는 PAC-3로 전력을 다하면 그나마 방어 가능한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미사일 요격전 끝에 키이우를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 입장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PAC-3, 천궁-2 등 종말 단계 하층방어 요격무기로는 1개 포대 전력이 총력을 기울여도 소량의 탄도탄만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군은 패트리엇 8개 포대와 천궁-2 7개 포대를 도입하고 있다. 패트리엇과 천궁 1개 포대는 각각 6개와 4개의 발사대로 구성된다. 군 당국은 현재 7개 포대 규모인 천궁-2 전력을 향후 20개 포대로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천궁-2를 그만큼 신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천궁 포대를 개량해 천궁-2 요격미사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 전력으로 북한의 위협을 막아낼 수 있을까.

한국군 당국은 철통같은 방어태세를 자신하지만, 현존 미사일 전력으로는 북한의 위협을 충분히 방어하기 어렵다. 앞서 분석했듯이 수십 발의 요격탄을 날려 킨잘 2~6발을 요격한 우크라이나군의 패트리엇은 한국군이 보유한 것과 유사한 사양이다. 천궁-2도 사거리와 요격 고도 면에서 패트리엇과 큰 성능 차이가 없다. 실전에서 패트리엇 1개 포대가 적 미사일 6발을 겨우 막아냈음을 상기하면, 북한이 패트리엇·천궁-2 1개 포대의 방어 구역에 미사일을 6발 이상 쏠 경우 한국군 전력을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이 같은 허점을 노린 전술을 채택한 뒤 여기에 필요한 무기를 대량 도입하고 있다.





각종 미사일 대량 배치 완료한 북한

북한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600㎜ 초대형 방사포. [뉴시스]

가령 북한군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잘 알려진 KN-23 미사일의 차량·철도·수중발사 모델을 각각 선보였다. 미사일 및 발사차량 개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대량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판 에이태큼스(ATACMS)’로 불리는 화성-11 계열 미사일도 다양한 사거리와 탄두 중량의 파생 모델이 대거 배치되고 있다. 발사차량만 100~200대에 달하는 화성 5·6·7 계열 탄도탄도 건재하다. 그뿐 아니라 북한군은 대당 4~12발의 대구경 로켓이 탑재된 다연장로켓 차량도 셀 수 없이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300㎜ 이상 대구경 로켓은 비행 특성이 전술탄도미사일과 유사한 데다, 사거리도 남한 대부분 지역을 타격할 수 있을 정도로 길어 위협적이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31일 30문을 동시에 공개한 600㎜ 초대형 방사포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때 모습을 드러낸 로켓탄은 스커드-B에 필적할 정도로 컸다. 발사차량 1대가 6발을 쏠 수 있으니, 당시 공개된 30문의 600㎜ 방사포만 동원해도 한국군의 패트리엇·천궁-2 1개 포대에 12발의 탄도탄급 로켓탄을 쏟아부을 수 있다. 만약 북한이 대남 군사 공격을 결심한다면 초대형 방사포 한 종류만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사시 북한은 240㎜부터 600㎜에 이르는 모든 구경의 방사포를 대량 발사하고, 여기에 순항미사일과 드론을 섞어 쏘는 방식으로 한국 방공망을 유린할 테다.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최근 몇 년간 계속된 사우디아라비아와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방전에서 이 같은 ‘섞어 쏘기’ 위력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의 현용 미사일 방어망으로는 하이브리드 타격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북한은 2010년대 중반부터 유사시 한국을 하이브리드 타격하기 위한 전력 구축에 나섰다. 그 결과 여러 종류의 탄도미사일과 대구경 방사포를 대량 배치해 한국에 대한 위협 태세를 사실상 완성한 상태다. 북한 수뇌부가 마음만 먹으면 수천 발의 미사일과 로켓탄을 우리 국민 머리 위로 떨어뜨릴 수 있는 상황에서 군이 내놓은 대응책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공군은 PAC-3와 천궁-2를 배치하고, 이와 별개로 육군은 ‘장사정포요격체계-Ⅰ’ ‘장사정포요격체계-Ⅱ’라는 명칭으로 방공망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당장 전력화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개발을 통해 2030년대에나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2010년대 중반 북한의 대구경 방사포 위협이 가시화되자 국내에선 이스라엘판 MD ‘아이언돔’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자 군 당국은 돌연 “아이언돔은 게릴라가 소량씩 발사하는 단거리 로켓 요격용으로 개발돼 대구경 로켓탄을 대량으로 발사하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수 없다”며 한국형 아이언돔, 이른바 LAMD(장사정포 요격체계)를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군 당국의 주장과 달리 이스라엘에서 아이언돔은 지난해 5월과 올해 5월 각각 수백 발씩 쏟아지는 이슬람 무장단체의 단거리·중거리 로켓에 맞서 90% 이상 요격률을 보였다. 실전에서 유용성을 입증한 아이언돔은 지금 주문하면 1~2년 내 전력화가 가능하다. 아이언돔에 쓰이는 요격용 미사일 ‘타미르’도 1발에 11만 달러(약 1억4500만 원)면 도입할 수 있다.




비용·시간 더 드는 ‘자체 개발’ 고집해서야
지금 한국군 당국이 도입하려는 LAMD는 빨라야 2029년 개발이 끝나고, 2030년대 초반 배치할 수 있다. 요격용 미사일의 사거리는 타미르와 비교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예상 가격은 그 7배인 10억 원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LAMD는 1개 포대당 동시에 190발의 로켓탄을 잡을 수 있도록 개발된다고 한다. 단순 계산하면 1개 포대만 일제 사격에 나서도 눈 깜짝할 새 1900억 원이 날아가는 셈이다. 당장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된 가운데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 불확실한 대안을 선택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키이우 요격전은 종말 단계 하층방어 중심의 MD체제가 가지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달리 말하면 LAMD와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체제의 문제점을 확인하는 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국방혁신위원회’라는 조직을 발족했다. 정부의 국방 혁신 의지가 분명하다면,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을 연구하고 국민 안전과 직결된 KAMD·LAMD 계획부터 다시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91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