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의 거취가 28일(현지시간) 결정된다. 이날 결선투표 결과에 따라 에르도안 대통령의 철권통치가 계속될지 주목된다.
이날 튀르키예에서는 대통령 결선투표가 진행된다. 지난 14일 실시된 대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에 맞서 출사표를 던진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후보가 모두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종 집계 결과 49.51%(약 2710만표)의 득표율을 올렸고,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는 44.88%(약 2460만표)로 뒤를 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총리 재임 시기를 포함해 2003년부터 20년째 집권 중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내각제 국가 튀르키예에서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총리로 지냈고, 2014년 대선을 통해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튀르키예는 2017년 개정된 터키 헌법에 따라 대통령제 국가로 전화됐는데,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8년 재선에 성공했다.
또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면 2028년까지 대통령직을 이어갈 수 있다. 중임 중에 조기 대선을 실시해 승리하면 2033년까지 임기가 연장돼 총 30년의 집권이 가능하다.
당초 선거는 6월로 예정됐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5월14일 조기 대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일각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선거를 연기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는데, 이를 정면 돌파함과 동시에 장기 집권에 도전하는 셈이다.
앞서 2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오는 28일 튀르키예 대선 결선 투표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에르도안 대통령이 승리할 것이라고 가정해 움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안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약 280만표(득표율 5.23%)를 받아 3위를 기록했는데, 에르도안 대통령과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간 득표차는 약 250만표(4.63%p)에 불과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권 연장에 성공할 시 튀르키예의 정책 방향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NYT는 “에르도안은 총리와 대통령 경력을 합해 사실상 20년간 튀르키예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인이었다”며 “그가 재선 성공 후 급격히 노선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또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며 성소수자를 탄압하고 있으며 반미, 반서방 노선을 보여 왔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와 척을 지게 된 러시아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이면서도 여전히 우호적으로 지내고 있으며 이민자 문제를 놓고 강경책을 펼쳐 유럽연합(EU)과 대립해 왔다.
◇에르도안에 맞선 야권 후보는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후보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꺾고 당선될 경우 러시아 입장에서는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커진다.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는 시리아,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에서 약화한 유럽·미국과의 관계를 재건하겠다고 밝힌 데다 러시아가 강하게 반대해 온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도 열린 입장을 취해 왔다.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제동을 걸기 위해 뭉친 6개 야당 연합의 공동 대선 후보로 뽑혔다.
‘경제학자’인 클르츠다로을루는 정계 입문 전 1990년대 대부분 사회보험연구소장을 지냈다.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부패 공무원들을 비판하는 모습으로 ‘CHP의 반청탁 운동가’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인기에 힘입어 2009년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이듬해 전임자의 불법 스캔들로 인한 사임으로 만장일치로 당대표에 선출됐다.
2017년 CHP 부대표 체포 사건 관련해 앙카라에서 이스탄불까지 450㎞ 거리에서 ‘정의를 위한 행진’을 시작하면서 ‘간디 케말’, ‘튀르키예 간디’로 불리기도 했다.
르몽드 기자로 튀르키예 특파원을 지낸 마르크 세모는 “그는 성격과 정치 면에서 에르도안과 완전히 정반대”라고 묘사했다.
◇물가 상승·민주주의가 주요 관심사
유권자들의 주된 관심사이자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건 다름 아닌 솟구치는 물가다. 튀르키예는 지난 2월 대지진 이전에도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튀르키예의 지난해 10월 물가상승률은 80%에 육박했다. 문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글로벌 추세를 거스르고 오히려 기준금리를 수 차례 인하하며 리라화 가치도 폭락했다는 점이다.
이스탄불 싱크탱크 에담(EDAM)의 시난 울젠 대표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것(물가상승)이 근본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라고 지적했다.
지진에 대한 미흡한 대응도 에르도안 대통령을 위협하는 요소로 꼽혔다. 지진 발생 당시 정부 구조 작업이 더디고 인력과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후 돌연 튀르키예에서 트위터 접속이 차단되며, 에르도안 정권이 비판 여론을 의식해 고의로 트위터 접속을 차단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 밖에도 정부가 징수하는 ‘지진세’가 가장 큰 화두로 올랐다. 튀르키예는 1999년부터 지진세로만 총 880억 리라(약 6조520억원)을 걷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만 93억 리라(약 6400억원)를 추징했는데, 대중들은 이 세금이 내진 설계와 같은 지진 대비에 사용됐는지 불분명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유권자들은 지진 발생 시 집권하고 있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건 작업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 한편, ‘트위터 차단’ 등 에르도안 대통령이 민주주의에서 등을 돌린 것 아닌지 우려하며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