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조달청장
최근 세계적으로 ‘전략적 조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전략적 조달’은 단순히 공공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에서 벗어나 국내총생산(GDP)의 10∼20%인 공공구매력을 경제 활성화, 환경 보호, 사회문제 해결 등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선진국에선 이미 다양한 전략적 공공조달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미국은 미국산 우선 구매법(Buy American Act)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통해 국내산 제품을 우대한다. 영국은 조달에서 고용 창출, 지역 개발, 환경 보호 등 사회적 가치 창출을 우선시한다. 유럽연합(EU)은 그린조달 지침을 강화하고, 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탄소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국제인권단체와 환경단체 등도 공공 구매력 활용을 권장한다. 유니세프는 아동착취 제품 불매운동을 진행하고,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친환경 제품 구입 캠페인을 벌인다. 세계자연기금(WWF)은 팜유 생산 때 발생하는 환경파괴·노동착취 문제에 대항하기 위해 친환경 인증기구를 운영 중이다.
물론 부작용 우려도 있다. 공공조달을 잘못 활용하면 시장 왜곡과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 부작용을 막으려면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공정·투명한 운영을 통해 공공 이익을 담보해야 한다. 또 명확한 정책 시그널을 주되 시장에서 감내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국내에서도 공공구매력을 취약계층 지원, 환경 보호,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 활용하기 위해 수의계약, 의무구매 등의 조달특례 제도를 운영 중이다. 최근 혁신제품 시범구매 제도도 도입했다. 문제는 종합적 검토 없이 파편적으로 제도를 운영했다는 것이다. 구매목표제나 우선구매제 적용 제품은 중소기업, 여성 기업, 장애인 기업 등 14종에 달하고 사업자 선정 평가 시 가점 항목은 116가지나 된다.
현 정부는 공공구매력의 전략적 활용을 강화하기 위해 크게 세 방향의 공공조달 혁신방안을 수립했다. 첫째, 공공조달 정책 거버넌스 재정립이다. 개별 법에 산재한 조달 규정을 통합하고, 공공조달 원칙과 기본 방향을 규율하는 공공조달기본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조달정책심의위원회 총괄·조정 기능을 강화해 범정부 관리체계도 구축한다. 둘째는 공공구매력의 체계적·효과적 사용이다. 첨단산업,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등 새 지원 분야를 발굴하고, 각종 조달제도 및 조달특례에 대한 평가와 체계적 관리방안도 마련한다. 마지막으로 조달행정의 정책 역량을 강화한다. 나라장터를 디지털 신기술 기반 차세대 시스템으로 개편하고, 공공조달 전문연구기관을 지정해 정책개발 역량을 높일 것이다.
유엔이 나라장터 시스템을 전자조달 분야 최우수 사례로 선정하는 등 한국은 이미 조달 분야 모범국가로 평가받는다. ‘전략적 조달’ 분야에서도 한국 모델이 세계를 선도하길 기대한다.
이종욱 조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