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2%가 ‘수업 못 들을 수준’ 고교 학습량-수능 난도 낮춘 여파
올해 서울대 이공계(자연대, 공대, 의치약학 포함) 신입생을 대상으로 치러진 기초 수학시험에서 40%가 넘는 학생이 1학년 정규 수업을 들을 수 없을 정도의 학력 미달 성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교생 학습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수학 학습량을 줄이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난도를 낮춰온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 반도체 패권 경쟁,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대로 가다간 고급 인재 양성에도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제기된다.
문제는 수학 기초가 부족한 신입생 비율이 최근 급격히 늘었다는 점이다. 기초수학과 미적분학 수강 대상자 비율은 2022학년도에 30.3%였으나 올해 11.5%포인트 늘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A 교수는 “그동안 학습 부담을 경감한다며 수학 학습 범위를 축소시켜 온 데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으로 수학이 선택과목으로 바뀌면서 이공계 학생들도 미적분, 기하 중에 하나만 배우고 대학에 오다 보니 수학 지식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수학 미달’ 서울대 신입생 1년새 12%P 급증… “통합수능 영향”
42%가 ‘수업 못들을 수준’
통합형 수능, 미적분-기하중 택일… ‘수학 부담 덜기’ 고교 학습량도 줄여
“고교학점제 도입에 의대 열풍까지… 이공계 수학 수준 저하 악화 우려”
통합형 수능, 미적분-기하중 택일… ‘수학 부담 덜기’ 고교 학습량도 줄여
“고교학점제 도입에 의대 열풍까지… 이공계 수학 수준 저하 악화 우려”
교육계에서는 수학 기초가 부족한 서울대 이공계 신입생 비율이 급격히 늘어난 원인 중 하나로 2022학년도에 도입된 문이과 통합형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지목된다. ‘미분과 적분’(미적분) ‘기하’ 등은 대학 이공계 학문의 기초를 이루는 분야인데, 통합형 수능이 도입된 뒤로 고교 이과 학생들이 둘 중 하나만 공부하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이어진 ‘수학 학습 부담 경감’ 기조가 수학 학력 저하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 학습 부담 경감-통합수능이 학력 저하로
정부는 고교생의 학습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이유로 20년 넘게 수학 학습 범위를 서서히 줄여왔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초등 1, 2학년부터 적용된 제7차 교육과정은 ‘수학 학습 부담 경감’ 원칙에 따라 수학 과목의 공부량을 줄이고 수준도 낮췄다. 박근혜 정부인 2014년에는 ‘행렬’이 고1 수학 필수 과목에서 제외됐고, 문재인 정부인 2018학년도에는 고교 이과 수학에서 벡터(기하의 한 영역)가 사라졌다.
서울대 이공계열 B 교수는 “기하는 이공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인데 이걸 모르고 오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며 “기하의 기본 개념 중 하나인 벡터는 인공지능(AI)에서도 많이 활용되는데 한숨이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2023학년도 수능에서 기하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은 전체 응시생의 6.4%에 불과했다.
● 수능서 미적분-기하 빠지나… 수학회 반발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의대 열풍’이 장기적으로는 이공계 수학 수준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수능 수학에서 고득점을 하는 것은 맞지만, 심도 깊은 수학 연구는 공대, 자연대 같은 학과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2월과 이달 26일 각각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인재양성 전략회의를 열고 반도체, 디지털, 바이오헬스 등 첨단 분야의 미래 인재를 정부가 키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대에서조차 학생들의 수학 수준이 저하되기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