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출신 미국 작가 에르난 디아스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 삶을 지배하는 ‘돈’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독자들이 호응했다”고 했다. ©Pascal Perich
반면 앤드루는 시장 붕괴를 주도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공매도를 정확한 시점에 성공한 데엔 ‘주가 조작’ 세력과의 결탁이 있었다는 것이다. 앤드루는 또 1933년 뉴딜 정책 때 공매도를 시도했다가 대중으로부터 비난도 받는다. 나라가 망하는데 투자한 것에 대한 반발 심리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앤드루를 ‘투자의 귀재’와 ‘투기꾼’ 중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그 둘을 구분하는 게 가능은 할까.
장편소설 ‘트러스트’ 표지. 문학동네 제공
에르난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난 경제학자가 아니라 소설가라 SVB 파산이 수상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다”며 “다만 ‘트러스트’를 읽으며 금융권의 신뢰에 대해 생각하게 된 사람이 많다. 소설의 힘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했다.
“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금융 시스템을 완벽히 알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 간극에 대해 알고 싶었죠.”
에르난이 소설 제목을 ‘트러스트’로 정한 건 돈이 곧 신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르난은 “모든 금융 시스템은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돈은 사람들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짜”라고 했다. 에르난은 또 “그동안 우리가 경험한 많은 금융 위기를 생각해 보라”며 “신뢰가 무너진 뒤 우리는 얼마나 비참해졌나. 우리의 삶이 가짜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라고 되물었다.
에르난은 소설에서 ‘투자 귀재’ 앤드루를 다양한 시각으로 다룬다. 예를 들어 1부는 한 소설가의 시선에서 진행되는데, 소설가는 앤드루의 공매도를 ‘장난질’로 규정한다. 반면 앤드루가 쓴 자서전 버전인 2부에선 앤드루가 자신은 투자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스스로 변호한다. 독특한 건 앤드루의 비서가 집필한 버전 3부와 앤드루 아내가 쓴 버전인 4부에서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소설의 끝에 이르렀을 때 우린 앤드루를 단순히 지지 혹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뒤 에르난은 일약 영미 문학의 ‘스타’가 됐다. 소감을 묻자 소박한 답변이 돌아왔다.
“전 그동안 고독하게 혼자 일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계속 작품을 쓰겠습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