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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인터뷰

입력 | 2023-05-29 14:18:00


“바이오 업계에도 우주항공청 같은 컨트롤타워가 필요합니다.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에서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거북이의 ‘고속도로’ 같은 역할을 해줄 겁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회장은 22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제약 바이오 강국인 미국과 우리나라와의 경쟁을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에 비유해 말했다. 노 회장이 언급한 컨트롤타워는 국무총리 직속의 ‘디지털·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원회)’다. 정부는 올해 2월 혁신위원회 설치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노 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에 화이자나 모더나가 약 11개월 만에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을 허가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투자, 정책, 규제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해줬기 때문”이라며 “한국형 ‘모더나’가 나오기 위해서는 제약바이오 정책과 산업을 총괄하는 범부처적인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초연구, 임상, 제품화까지 제약바이오의 전주기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산업자원통상부 등 여러 부처가 나눠 지원하기 때문에 속도가 안 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구매력평가지수(PPP)를 적용한 2020년 보건의료 분야 정부연구개발예산은 24억5400만 달러였다. 같은 해 미국은 480억5500만 달러, 일본은 66억5000만 달러였다. GDP 대비 투자 비중은 한국을 포함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6개국 중 4번째다. 노 회장은 “현실적으로 우리나라가 절대적인 투자 양으로 미국과 일본 등 제약 강대국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기술은 혁신위원회 같은 일원화된 조직이 효율적으로 투자해줘야 승산이 있다”고 했다.

노 회장은 정부가 가장 먼저 집중 투자해야 할 기술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개발을 꼽았다. 아직 글로벌 시장을 선점한 나라가 없고, AI로 신약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 회장은 “글로벌 제약사와 우리나라 제약사들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올해 정부가 추진 중인 K-멜로디 사업이 국내 AI 신약개발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K-멜로디는 참여 기업들의 데이터를 모아 AI를 학습시키되, 기업 간 데이터가 유출되지 않도록 보안을 강화한 플랫폼이다. 참여 기업은 기업의 자산인 데이터를 보호하면서 여러 기업들의 데이터를 학습한 AI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2020년 아스트라제네카 등 10개의 제약사가 모여 같은 컨셉의 EU 멜로디 프로젝트를 진행해 각각의 기업이 개발한 AI 보다 4% 가량 성능이 뛰어난 AI를 개발한 바 있다.

노 회장은 “플랫폼이 완성되면 국내 신약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신약뿐 아니라 약물 재창출(리포지셔닝) 등 AI가 강점을 가진 분야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약물 재창출은 이미 허가돼 사용되고 있거나 임상 시험에서 안전성을 인정받은 약물을 다른 적응증으로 새롭게 ‘재활용’하는 신약 개발 방식이다. 최근 미국에서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비만치료제 ‘위고비’는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을 약물 재창출한 사례다.

우리라나는 국내에서 출시된 의약품을 약물 재창출하는 경우 국민건강보험이 책정한 보험약가를 기준으로 약가를 부여받기 때문에 신약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기가 어렵다. 노 회장은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산업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혁신위원회 설치 등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협회에서도 산업계의 목소리를 많이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