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다녀간 지역엔 반도체 공장 소문 ‘디리스킹’ 중국에도 외교적 수사 듬뿍
김현수 뉴욕특파원
“머스크에게도 팀 쿡이 있다면….”
일전에 만난 국내 재계 관계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팀 쿡 애플 CEO를 모두 만나봤다”며 “팀 쿡이야말로 스티브 잡스의 비전을 실현해 지금의 애플을 실질적으로 키운 인물”이라고 평했다. ‘비저너리(미래 전망을 제시하는)’ 경영자인 머스크도 쿡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면서 결국 쿡의 능력을 치켜세운 말이었다.
쿡의 대표 업적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효율적 공급망을 건설해 애플을 순이익률 25% 수준의 세계 시가총액 1위(약 2조7600억 달러) 기업으로 키운 것이다. 아이폰 조립은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는 대만에서 구축했다.
반도체 전쟁 한복판에 서 있는 쿡의 행보에서는 세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애플과 미국 정부의 언어가 같아지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TMC) 낸드플래시를 조달하려다 미 의회에서 뭇매를 맞았다. 반면 요즘은 공식적으로 ‘미국산’ 부품을 쓴다고 적극 홍보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만 TSMC 애리조나 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그는 한목소리로 ‘아이폰 공급망 미국 상륙’을 축하했다.
둘째, 쿡이 다녀간 지역에는 TSMC가 새 공장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애플은 세계 1위 반도체 구매자이자 TSMC 매출의 26%를 차지하는 큰손이다. 애플은 중국의 대만해협에 대한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TSMC도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최대 고객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첨단 반도체 공장을 협력업체나 인력 기반도 없는 새로운 곳에 짓기란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애플과 미 행정부의 공급망 전략, 각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재건 야심이 맞아떨어지면서 미 동맹국 일본이나 독일이 첨단 반도체 생산지로 고려되기 시작했다.
셋째, 그럼에도 중국에 외교적 수사를 아끼지 않는다. 올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대규모 포럼을 찾은 쿡은 “중국과 애플의 관계는 상징적”이라고 추어올리며 중국 달래기에 나섰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애플 매출 20%가 중국권 시장에서 나오기에 쿡은 중국 반발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단기간에 중국 및 대만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탈중국 행보를 보이면서도 중국에 외교적 언어로 협력을 강조한 셈이다.
애플이 미국 정부와 해외 정부 그리고 TSMC 같은 협력업체와 적극적으로 중국 디리스킹에 힘을 합치면서도 중국에 대한 외교적 수사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한국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국내 기업도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중요한 플레이어가 됐다. 정부와 한 몸처럼, 때로는 홀로 서서라도 필요한 외교적 수사를 구사하며 공급 및 판매망 재편 전략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
김현수 뉴욕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