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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임금, 대기업의 58%… “日-유럽 격차 줄때 韓은 역주행”

입력 | 2023-05-30 03:00:00

[미래 일터를 찾아서]〈5〉 원-하청 이중구조 해법은
한국 수출주도형 경제의 산물… 대기업-중기 임금격차, 외국보다 커
“원-하청 성과 공유 노력 필요”
정부, 내달 이중구조 해소 대책 발표



23일 LG화학의 CSR(사회적책임)팀 팀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본사 사무실에서 하청업체 지원 현황과 추가 지원 계획에 관해 회의를 하고 있다(위쪽 사진). 이날 LG화학에 화학약품을 납품하는 하청기업 ㈜부승화학의 울산 울주군 공장에서 직원이 LG화학으로부터 지원받은 지게차를 몰고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부승화학 제공


“올 1월 사업 때문에 급히 돈이 필요했는데 은행권은 고금리가 계속되고 있어서 돈을 빌리기가 어려웠어요. 그때 원청이 만든 펀드를 이용해 시중보다 4%포인트 낮은 금리로 대출할 수 있었어요.” 울산 울주군에 있는 화학약품 중소기업 ㈜부승화학 김경민 영업팀 부장은 연초에 위기를 넘긴 상황을 설명했다. 부승화학은 20년 넘게 LG화학에 에탄올 등 화학약품을 납품하고 있는 하청업체다.

원청인 LG화학은 부승화학을 비롯한 하청업체들을 위해 각종 지원사업을 시행해 오고 있다. 하청업체들은 LG화학이 조성한 2061억 원 규모 ‘동반성장펀드’에서 저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각종 안전설비, 납품 관련 장비도 지원받는다. 김 부장은 “지게차, 수분 측정 설비 같은 고가 장비도 원청 지원을 받아 구입했다”고 말했다.

줄잡아 수백 곳인 하청업체 지원은 큰 비용이 들지만 “길게 보면 이득”이라는 게 LG화학 측 설명이다. LG화학 박찬 CSR(사회적책임)팀 선임은 “협력(하청)업체가 열악해 납품 질이 떨어지거나 안전사고가 나면 원청에도 손해”라며 “결국 하나의 생산공동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다 나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처럼 원하청 간 상생 모델을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아일보는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국내 원하청 이중구조의 문제와 해법을 살펴봤다.

● 中企임금, 대기업의 70%대 → 50%대

원하청 이중구조는 한국 수출주도형 경제의 산물이다. 국가 주도로 수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인력, 기술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부품 생산과 중간 공정을 맡고(하청), 대기업이 완제품 조립과 수출을 맡는(원청) 식으로 기능이 분화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생긴 원청과 하청,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불균형이 고착되면서 임금과 처우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기준 통계청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같은 시간을 일하고 받는 임금(시간당 임금총액)이 300인 이상 대기업의 정규직은 3만7783원, 비정규직은 2만4672원이었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정규직이 2만1758원, 비정규직이 1만6520원이었다. 각각 대기업의 57.6%, 43.7%에 불과했다.

이는 해외와 비교해도 격차가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자료를 보면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2002년만 해도 한국 70.4%, 일본 64.2%, 유럽연합(EU) 15개국 평균 74.7%였다. 하지만 16년 뒤인 2018년에는 한국 59.8%, 일본 68.3%, EU 75.7%였다. 일본과 EU는 격차가 다소 줄어든 반면, 한국은 오히려 격차가 벌어진 것.

23일 고용노동부 주최로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토론회에서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에 집중된 처우, 근속 혜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 위원은 “한국은 장기근속이 대기업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길게 근속하는 편이라 불평등 수준이 우리보다 낮다”고 밝혔다.

● “하청의 쇠락은 원청의 손해… 相生해야”

대기업은 임금이 점점 높아지고 근속 기간이 길어지며 근무 환경도 좋아지는 반면, 하청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더 열악하고 궂은일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승인된 48만6754명 중 45만3136명(93.1%)이 300인 미만 중소기업 근로자였다. 이달 1일부터 27일까지 발생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망자 총 19명 중 11명이 하청근로자다.

이처럼 이중구조 문제는 심각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원하청 구조를 당장 없애거나, 정부가 기업의 임금 체계에 직접 개입해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하청은 상생의 관계”라며 “제조업의 경우 원하청 평균 거래 기간이 10년, 비제조업도 7년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하청 간 성과 공유를 활성화하고 상생협력 모델을 발굴하는 등 이해당사자들이 대화, 협의를 통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동수 김앤장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연구소장도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ESG 이행 및 공시에 대한 요구가 늘고있다”며 “하청과의 원활한 관계는 곧 기업의 평판과 평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하청과의 상생협력을 강화하는 게 원청의 수출 차원에서도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 정부, 다음 달 이중구조 대책 발표

실제 LG화학뿐 아니라 현대차, SK하이닉스, 삼성전기 등도 상생펀드를 구축하거나, 우수 하청업체 기술 육성에 도움을 주는 등 자구책 차원에서 협력업체 지원에 나서고 있다.

현재의 경직된 고용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용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선제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엄격한 해고나 파견 규제 등 노동 ‘과잉 보호’가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노동시장을 고착화시키고 기업 규모 간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독일, 프랑스, 일본은 근로자의 업무 성과 부진을 해고 사유로 인정하는 등 기업 간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한 나라로 꼽힌다. 성 위원도 “기본적으로 (일자리 간) 이동이 활발하다면 이중구조는 지금보다 훨씬 덜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정부 또한 차별 시정과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상생협력에 앞장선 기업에는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이에 따라 고용부는 다음 달 원하청 이중구조 해소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원하청 상생 모범 기업에 인센티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