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월대에서 조선 전기 이전에 만들어진 유물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월대 복원·정비를 위해 실시한 추가 발굴조사 과정에서 고종년간에 축조된 광화문 월대 하부에서 고종년간보다 앞선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유구의 흔적을 일부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고종년간에 월대 축조되기 이전에도 광화문 앞 공간이 활용됐다는 사실을 조선왕조실록 등 기록을 통해서만 확인해 오다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물적 증거까지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추가 발굴한 월대 하부층에 대한 조사 결과, 조선시대 전기부터 현재까지 광화문 앞 공간의 퇴적양상과 활용양상이 확인됐다.
광화문 밖 공간 퇴적층은 자연층에서 14~16세기 조선 전기 문화층, 17세기 이후 조선중·후기 문화층, 19세기 월대 조성층을 거쳐 20세기 근현대도로층의 순으로 형성됐다.
조선전기 문화층은 앞서 2007년 광화문 발굴조사에서도 확인된 층이다. 이번에 발굴된 유구는 고종년간 월대 어도지 서쪽 기초시설 하부 약 120㎝지점에 있는 조선전기 문화층의 최상단에서 확인됐다.
이는 궁중 행사에서 햇빛 가리개로 사용되는 차일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와 유사하다. 경복궁 근정전이나 종묘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양쪽 석렬의 잔존너비는 약 85㎝로, 길이 20~30㎝의 크고 작은 석재가 일정한 너비로 남북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형태다.
문화재청은 “이러한 석렬유구가 동쪽 어도지 하층 탐색구덩이 조사에서도 일부 확인되는 점으로 미뤄 보아, 고종년간 월대 어도지 하층에 전체적으로 유사한 양상의 조선 전기 유구가 분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선 중기~후기 유구는 조선전기 문화층을 일부 파괴하고 조성된 층에서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교란과 파괴가 심하며, 민가의 흔적 등도 확인돼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방치됐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며 “이후 고종대에 이 층을 정리하고 다시 흙을 쌓아서 월대를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앞 공간에서는 고종년간 월대와 같은 건축물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조선 전기부터 바닥에 돌을 깔아 축조하는 방식의 시설들을 갖추고 다양하게 활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 기능이 상실되며 방치된 채 관리되지 못하다가 고종년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월대가 설치됐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발굴조사 자료를 정밀 분석해 경복궁 광화문과 월대 공간과의 연관성, 활용성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뉴시스]